대학의 신뢰성 회복을 위해서는 입시 공정성·투명성 확보가 필수다. 불투명한 입시 진행이 대학에 대한 사회적 불신을 확산시키는 가장 주된 원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는 각 대학들이 인프라 구축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입학사정관 전형을 대폭 확대키로 결정, 입시 공정성에 대한 논란에 불을 지폈다. 이에 따라 현재 “입학사정관제가 과연 투명하게 운영될 수 있겠느냐”는 의심의 목소리가 사회 곳곳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입학사정관제의 신뢰성·공정성 확보를 위한 방안 모색·마련이 시급하다.

■‘신뢰성’ 확보: 사회 기여하고 입시 결과 공개해야

우리나라의 입학사정관제는 지난 2007년 시범 운영과정을 거쳐 올해로 3년째를 맞았다. 전문가들은 도입 초기,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국민의 의심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사회 통합 기능’ 수행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소외계층·지역 학생들의 대학 진학 기회를 확대해 줌으로써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완화시키는 것은 물론, 사회 융합에까지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양성관 건국대 입학연구실장은 “시행 초기 입학사정관제는 사회적 약자를 위해 운영돼야 한다. 해당 지원자의 점수가 조금 낮더라도 어려운 환경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뒀다고 판단되면 대학 진학 기회를 줘야 한다”며 “이 같은 과정을 통해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총장도 “입학사정관제를 농어촌전형 등 소외계층을 선발하는 데 활용해 우선적으로 제도에 대한 신뢰를 심어 줘야 한다”고 했다.

전형 이후에는 입시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입학사정관 전형을 통해 선발한 학생들의 출신고교·계층·성적 분포 등에 관한 자료를 숨김없이 제시함으로써 제도에 따른 의심·우려를 잠재울 수 있기 때문이다.

양성관 실장은 “제도의 취지를 살려 학생을 선발했다는 증거를 보여 준다면 입학사정관제 운영에 대한 신뢰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며 “각 대학이 입시 이후 합격자들에 관한 자료를 투명하게 제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석훈 청주교대 교수도 “대학은 입학사정관 전형의 공정한 시행을 방해하지 않는 한 학생 선발과정·결과에 관한 자료를 합리적인 절차와 방법에 따라 공개해야 한다”며 “전형 방법에 관한 지원자의 불만·이의제기에 대한 대응방침·절차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믿음을 주기 위해서는 최우선적으로 제도를 시행하는 대학 자체에 대한 신뢰성이 확보돼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대학의 판단·결정을 국민들이 의심 없이 믿는 사회 분위기가 우선적으로 형성되야 한다는 것이다.

김수연 가톨릭대 입학사정관연구실장은 “현재 많은 사람들이 대학의 제도·시스템을 불신하고 있다”며 “대학 자체에 대한 믿음이 생기면 입학사정관제도 신뢰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성’ 확보: 입학사정관의 양·질 높이고 고교 교육과정 개편해야

현재 우리나라의 입학사정관제가 공정성 논란에 휘말리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선발 인원에 비해 입학사정관 수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입학사정관들의 전문성에 대한 의심도 공정성 논란을 가열시키고 있다. 입학사정관 수 확대, 전문성 제고가 절실한 상황인 것이다.

손종현 경북대 입학사정관은 “아직은 도입 초기 단계기 때문에 무엇보다 탄탄한 인프라 구축에 사력을 다해야 한다. 입학사정관 수 확대, 전문성 함양에 최선을 다해야만 입학사정관제의 본래 취지를 충실히 살릴 수 있을 것”이라며 “탄탄한 기반 없이 섣불리 입학사정관제를 실시했을 경우 본래의 목적·취지는 사라지고 또 다른 교육 모순을 낳을 수도 있다”고 전했다.

김정희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선임연구원도 “입학사정관제도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결국 공정성과 관련된 문제다. 합격자 선발에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입학사정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며 “입학사정관의 전문성 확보가 제도의 성공적인 정착에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했다.

고교 교육과정 개편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다. 김수연 실장은 “입학사정관제 공정성 확보를 위해서는 고교·대학 간 연계가 중요하다. 고교들이 입학사정관 전형에 알맞은 형태로 교육과정을 개편해 나갈 필요성이 있다”며 “민사고의 경우 입학사정관제가 활성화돼 있는 외국 대학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공부는 물론, 봉사활동·인성함양 교육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선 입학사정관제 어떻게 운영하나]

윤리강령 만들어 철저히 준수
- UC버클리는 사정관 110명이 4개월 매달려

입학사정관제가 가장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 국가는 미국. 미국은 1920년대 입학사정관제도를 도입한 이후 지난 80년간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제도를 정착시켜 왔다. 이에 따라 현재 미국 대학들은 체계적인 방안들을 마련, 입학사정관제의 신뢰성·공정성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 
    
■상세하고 구체적인 학생평가 방법 마련

미국에서 가장 공정한 입학사정관제를 실시하는 것으로 손꼽히는 대학은 UC버클리대.
UC버클리대는 입시에서 학문·비학문 요소를 각각 75%·25%씩 반영한다. 비학문 요소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위해 가정환경·봉사활동·수상경력·과외활동 증명서, 2종류의 자기 소개서 등 다양한 서류를 요구하고 있다. 또 한 지원자의 서류를 두 명의 입학사정관이 심사, 1점이라도 차이가 나면 선임 입학사정관이 다시 채점토록 해 공정성을 기하고 있다.

앤 드 루카 UC버클리대 입학부처장은 지난해 4월 ‘대학입학사정관제의 정착 방안’을 주제로 건국대에서 열린 국제콘퍼런스에서 “2008학년도 신입생 선발 시 UC버클리 내 110명의 입학사정관이 4개월에 걸쳐 총 4만 8000여 장에 이르는 지원서를 정독했다”며 “입학사정관 간 평가 점수가 1점 이상 차이나는 경우는 고작 5% 미만이었다. 대단히 신뢰성 있고 공정한 심사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하버드대·프린스턴대·컬럼비아대 등도 UC버클리대와 유사한 기준을 수립, 공정한 입학사정관제 운영에 만전을 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킴벌리 존스톤 전미입학사정관협의회장은 콘퍼런스에서 “각 대학이 합격은 물론, 불합격 통지서에도 해당 지원자의 사정을 진행한 사정관의 이름·연락처를 표기할 정도로 투명하고 떳떳하게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며 “미국 대학들의 입학사정 과정이 사회 내에서 과학적 분석을 초월한 예술적 판단이라고 인식될 만큼 큰 신뢰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입학사정관 전문성·공정성 배양

입학사정관들의 전문성·공정성 배양을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미국 대학입학사정관들 중 대다수는 전직 고교 교사·교수 등 교육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다. 고교·대학 환경, 교육에 정통한 전문가들을 사정관으로 초빙해 보다 정확하고 공정한 전형을 진행한다는 취지다.

이에 더해 입학사정관으로서의 전문성·윤리의식 배양을 위해 전미입학사정관협의회 등의 전문기관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대대적인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교육은 △지원서 평가 △대입 전형 파악 등을 위주로 진행된다. 또 전문 사정관에 의해 평점이 매겨진 자료를 평가, 전문가와 자신의 판단을 비교하는 교육도 이뤄진다. 각 대학은 전미입학사정관협의회가 제정한 윤리지침서 ‘NACAC 윤리강령’을 준수, 입학사정관들이 공정한 평가를 진행토록 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 실정 맞춰 적용해야

현재 우리 대학들은 미국의 사례를 벤치마킹해 입학사정관제를 운영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우리 대학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은 미국의 사례가 참고 사항은 될 수 있어도 최선책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대다수 전문가들은 미국의 입학사정관제를 발판 삼아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제도를 정착해 나가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박선형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는 지난 1월 <대학교육>지에 발표한 기고문 ‘해외 대학의 입학사정관제’에서 “우리나라의 고등교육 현실, 즉 △대학교육에 대한 높은 사회적 수요 △고착화된 학벌문화 △교수와 직원의 전문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차이 등을 고려할 때 입학사정관이 학생선발에 대한 독점적 권한을 가지는 미국의 입학사정관제의 국내 정착가능성은 다소 시기상조라고 볼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김소연 인하대 입학사정관도 “미국의 입학사정관제를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며 “우리나라 상황에 맞는 제도로 변형해 정착시켜 가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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