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열 고려대 연구기획팀장

유신열 고려대 연구기획팀장
유신열 고려대 연구기획팀장

과제 참여 연구원의 계약을 위해 교원 담당 부서에 문의하면 “그래서 그 사람은 교수입니까? 직원입니까?”라고 되묻는다. “글쎄요. 교수도 아니고 직원도 아닙니다. 그냥 연구원입니다”라고 하면 “교수는 아니죠?”라고 다시 묻는다. 어쩔 수 없이 우리가 아는 전형적인 교수 그룹에 속하지 않기에 “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직원 담당 부서에 같은 문의를 하면 “직원은 아니죠?”라고 묻는다. 그러면 여기에서도 “네”라고 할 수밖에 없다.

대학알리미의 정보공시 항목에 ‘교수’와 ‘직원’의 현황은 있지만 연구원 현황은 없다. 정책, 인사관리, 예산 등의 분야에서 대학이나 정부는 기본적으로 인적자원을 교수와 직원, 학생으로 구분해 관리한다. 우리는 어떤 사태를 대할 때, 먼저 관료적 관점에서 분류체계를 만들고 본질을 나눠 그 안에 꿰맞추려 한다. 그러다 보니 연구원은 대학 조직에서 교수도 직원도 아닌 제3지대에 위치한 애매한 존재가 된다.

이처럼 애매한 연구자는 대학 내에서 △비전임교원 △시간강사 △과제참여연구원 △학생연구원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근로기준법 제2조는 근로자를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라고 정의하고 있다. 교수와 직원 그리고 연구원은 모두 다 같은 근로자다.

다만 같은 근로자라 하더라도 근로계약의 조건과 관리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피터 드러커가 정의한 지식근로자(Knowledge worker) 유형에 가장 부합하는 대학의 전임교수는 학문 활동이 곧 근로이고, 학문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된다. 이들의 계약은 산업화 이전의 숙련된 장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독립적인 자유 계약자’ 유형에 더 가깝다.

하지만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근로에 대한 계약관계가 크게 바뀌었다. ‘산업화된 국가의 노동자들은 단지 기술을 파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시간을 판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그 시간 동안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를 판다.’(《일의 발견》에서 인용함). 이들을 지식근로자에 상응하는 개념으로 ‘시간근로자’라 한다면, 현재 대부분 근로자는 이 유형에 속한다.

그렇다면 대학과 사회는 제3지대의 연구자에게 지식근로자와 시간근로자 중 어떤 유형의 근로계약서를 제시할까? 십중팔구는 연구자에게 시간근로자 유형의 계약서를 내민다. 그리고 그들에게 지식근로자의 역할을 기대한다.

이 기대와 계약서의 불일치로 인해 출구가 보이지 않은 수많은 노동 문제가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2017년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 시행한 학생연구원 근로계약 의무화 제도는 학생이 연구원인지 근로자인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양날의 검이 되어가고 있다.

2019년 강사법 시행으로 이전에는 독립적인 자유 계약자 신분이었던 강사는 특정한 대학에 소속돼 강의를 제한받게 됐고, 대학도 만족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시간당 최저임금, 주 40시간, 기간제법 등 근로자의 생존권을 보호하겠다는 좋은 취지의 사회적 장치들이 오히려 근로자를 통제하는 수단으로 전환되기도 한다. 이는 지원보다는 통제방식에 익숙한 관료제의 원인이 크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인간의 삶은 완전히 바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근로자는 초기 산업화·기계화 시대의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시간과 공간 속에 묶여있다. 하루빨리 초지능·초연결 시대에 맞는 새로운 근로계약 관계를 찾아야 한다. 제각각의 부분적 이익과 합리성만을 추구하기보다는 사회 모두가 나서서 지혜를 모아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구축해가는 환상적인 세계에서 인간은 오히려 하나의 부품으로 전락하고 점점 더 소외될 것이다. 새로운 시대의 근로계약에 아이디어가 있는 분은 필자에게 연락을 바란다. (seeyou@korea.ac.kr)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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