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홍 서울미디어대학원대 석좌교수(전 서울디지털대 총장)

김재홍 서울미디어대학원대 석좌교수(전 서울디지털대 총장)
김재홍 서울미디어대학원대 석좌교수(전 서울디지털대 총장)

오늘날 ESG는 글로벌 가치체계의 핵심으로 지구촌의 거의 모든 기업들에 자리매김했다. 한국에서도 기업경영의 뒤질 수 없는 필수 과제로 공유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기업의 ESG’(이하 K-ESG)가 세계 경제대국 10위권 위상에 걸맞은 수준으로 발전했는지는 의문이다. ESG 경영이 기업마다 아직 균질적이지 않고 차이가 많아서다. 한국은 GDP 규모가 아프리카 55개국 GDP를 모두 합한 것과 같다. 인구 5000만 이상으로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인 ‘5030 클럽’ 7대 강국의 일원이며 2023년 올해 국민소득 4만 달러를 달성하면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선진강국 대열에 안착한다. 

그러나 다른한편 유엔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 네트워크’가 2022년 3월 발표한 ‘세계행복보고서’에는 한국이 조사대상 146개국 중 59위로 중후진국에 머물러 있다. 이 연례 보고서에서 최근 5년 동안 50위 후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OECD 국가 중 최하위에 속한다. 실질적 행복의 선진국은 어떤 나라들일까. 순위를 보면 핀란드, 덴마크, 아이슬란드, 스위스,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스웨덴, 노르웨이 등이다. 북유럽의 이른바 지상낙원이라 불리는 강소국들이다. 남북한은 한반도를 군사력 경쟁의 화약고로 몰아가지 말고 이같은 행복 선진국 모델을 따라가야 한다. 더구나 핵 무기 개발과 이에 대한 미국 전술핵 배치 대응은 기껏해야 ‘공포의 균형’이거나 결국 핵 공멸의 길로 들어서는 결과를 야기할 뿐이다. 

경제적 국익과 연계된 ESG, 4차산업혁명과 같은 시대적 조류로 
‘행복’이란 양적인 경제지표뿐 아니라 삶의 질을 나타내는 다양한 지표들에 의해 측정된다. 국민총생산(GDP)과 국민소득(GNP)보다도 국민행복지수(GNH: Gross National Happiness)가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사회적 신뢰와 상부상조, 기대수명, 선택의 자유, 너그러움, 구매력 기준의 국민소득, 빈부격차, 부정부패의 정도 등이 그것이다. 정부와 언론이 우리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임을 언급할 때 많은 국민이 별로 달가워하지 않거나 믿지 않는 이유는 빈부 격차와 경제적 불평등 때문이다. 국민행복지수를 구성하는 삶의 질과 관련된 아이템들은 바로 ESG의 내용과 직결돼 있다. 이제 기업들의 ESG 수준이 그 소속 사회공동체 시민들의 실질적 행복을 좌우하는 것이다. 기업 활동은 실수요자가 시민이기 때문에 그 삶의 질과 행복에 결정적 변수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생각할 일도 아니지만 ESG 개념으로 더욱 확실하게 부각된 셈이다. 기업의 그런 역할과 위상에 대해 “과연 정부가 해 온 역할을 대체할 수 있을까”라고 지적하는 학자도 있다. 잘못하면 ESG가 항구적인 시대사조의 위치에 이르지 못하고 일시적 유행으로 그치지 않을까 하는 유보적인 전망일 것이다.

그러나 현재 ESG 경영의 세계적 발전 추세를 살펴보면 근본적 의미와 확장력에서 디지털 4차산업혁명과 같은 조류를 넘어서는 것으로 평가된다. 글로벌 비즈니스와 국제금융기구에서도 기업의 ESG 평가를 바탕으로 교역과 금융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추세여서 한국 기업들이 이에 제대로 부응하지 않을 경우 여러 불이익에 처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는 대기업뿐만 아니라 그 공급망의 협업 협력사인 중견·중소기업들도 예외가 아니다. ESG가 경제적 국익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다. EU의 경우 대기업이 협력사들의 ESG의무 준수에 대해서도 책임져야 하는 단계까지 도달했으며 한국도 곧 동일한 수준으로 이행할 것이며 이미 부분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다. 

K-ESG를 발전시켜 그로벌 ESG의 주요기준으로 정립한다면 한국은 경제대국으로서 지속가능발전(Sustainable Development, SD) 국가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SD란 미래세대가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기반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현재세대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발전을 뜻한다. 이는 인류가 자연과 공존하면서도 인구 증가와 경제성장 과정에서 파생하는 전 지구적인 문제, 즉 환경파괴의 방지로부터 비롯됐다. 1987년 세계환경개발위원회(World Commission on Environment and Development)에서 제시된 “우리들 공동의 미래(Our Common Future)”(브룬트란트 보고서)를 통해 알려졌다. SD는 국제경제 시장에서 신뢰도와 국가 이미지 제고라는 커다란 비재무적 무형의 가치를 보유할 수 있게 하는 보증수표와도 같은 자산으로서 ESG의 키워드 중 하나다.

K-ESG 발전하려면 ‘ESG평가표준’ 정립 등 정부·국회 정책 뒷받침돼야
K-ESG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기업의 자율경영 원칙과 함께 정부와 국회가 정책적으로 적극 뒷받침해 나가야 한다. K-ESG 수준을 자율적으로 제고하도록 하는 환경 조성에 필요한 것이 한국기업에 내재한 사회봉사와 공공성의 철학을 도출해 공유하는 일이다. 예컨대 한국의 근·현대 기업가 중에 노블리스 오블리쥬와 살신성인적 사회공헌을 실천했던 인물들을 찾아내 재조명하고 K-ESG의 철학과 사상, 정신적 표상으로 삼는 것이다. ESG는 서구에서 시작됐지만 한국 자체내에서 그에 비견하기에 충분한 공공정신을 찾을 수 있다. 이렇게 ‘한국ESG의 뿌리’를 재발견한다면 기업인들에게 자긍심과 함께 자율적 ESG증진으로 나아가게 촉진하는 동력 효과가 크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기업의 자율 외에 정부와 국회가 뒷받침해야 할 역할은 법률과 제도의 개선이다. 새로운 법제적 장치를 기업에 타율적 규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기업 경영에 도움이 되는 SD를 창출하기 위한 방안으로 합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금융기관의 여신 심의와 정부의 정책적 지원에서 객관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ESG평가표준’의 정립이 선행 과제다. 

기업이 자율적으로 ESG를 업그레이드해 가도록 환경 조성하는 방안 중 중요한 것이 ESG 평가지수의 표준화와 정보공개 문화다. 글로벌 신용평가기관인 Moody’s와 S&P, 국내 한국기업지배구조원과 서스틴베스트 등은 ESG 평가 결과를 신용평가에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등급 부여 등 평가방식에 차이가 있다. 글로벌 신용평가기관에 대해서도 ESG 평가 표준화를 요구해야 하며 우선 국내 평가기관의 평가표준화가 반드시 필요한 과제다. 통일된 기준이 정착되지 않으면 평가의 객관성과 그 적용의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환경 지수(E)와 사회공헌도(S)와 기업지배구조 투명성(G)에 대한 평가지표를 표준화해야 한다. 국내 ESG평가지수의 표준화를 위해서는 대한상공회의소, 경영자총연합회,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단체와 (사)한국ESG학회, (사)한국ESG경영원, 그리고 (재)환경재단 등이 공동연구팀을 구성해 경제계와 시민사회의 컨센서스가 이뤄지도록 작업할 것을 제언하고자 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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