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퇴출 및 통·폐합의 방향과 과제’를 주제로 열린 ‘제69회 대학교육 정책포럼’에서 대학 구조개혁 정책 당국자들이 새겨들어야 할 좋은 주장들이 나왔다. 해외 대학 퇴출 및 통폐합 사례를 기반으로 국내 대학의 해산과 합병 문제, 한계대학에 대한 구조조정 방향과 방안을 제시하는 자리였는데 우리나라와 여건이 비슷한 일본 사례가 단연 주목을 끌었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사회구조 변화를 뒤따라간다는 말은 많이 하지만 대학 사정을 보면 가히 판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유사하다. 일본이 먼저 경험한 학령인구 감소 문제, 수도권 집중 문제, 지방대학 위기 문제 등이 그대로 우리나라에서도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대학 구조개혁을 추진해야 하는 점에서는 한국과 일본 입장이 같지만 대학 구조개혁 정책 추진에 있어서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일본은 비교적 이른 시기인 1991년부터 대학 구조개혁의 시동을 걸었다. 대학설치기준 간소화를 통해 대학의 자율성을 확대하고, 입시제도와 교과과정, 교수조직 등에 대한 정부의 간섭을 줄인 것을 시작으로 2018년 ‘2040년을 향한 고등교육의 그랜드 디자인(고등교육의 그랜드 디자인)’이 나올 때까지 끊임없이 교육개혁을 추진했다. 이른바 ‘고등교육의 그랜드 디자인’은 대학 구조개혁의 방향성과 전략을 위한 일종의 지침서 역할을 하고 있다. 

포럼 발제자인 김정호 교수는 일본 대학 구조개혁의 특징으로 일관성, 체계성, 다양성, 명확성을 제시했다. 상대적으로 우리나라 대학 구조개혁 정책의 미흡한 부분이 일본의 구조개혁 정책의 특징이 되고 있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먼저 일관성 측면에서 일본의 대학 구조개혁은 ‘고등교육의 그랜드 디자인’에 기초해서 일관되게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일종의 구조개혁 지침서가 존재하는 것이 일본 대학 구조개혁의 일관성을 담보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에 비해 한국은 정권 변화나 정책 환경 변화에 따라 대학 구조개혁 정책이 춤을 추었고 대학은 정부 정책에 맞추느라 대학 스스로 방향을 설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온 것이 사실이다. 한국의 경우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로드맵이 부족했던 반면, 일본은 20년 정도의 장기적 로드맵을 마련해 실천하고 있다. 

일본은 대학 구조개혁과 관련된 모든 정책의 배경과 목표, 실천 전략과 세부 방안이 매뉴얼화돼 있으며, 매뉴얼은 폭넓은 의견 수렴과 성공·실패 사례를 축적해 발전적으로 개정되고 있는데 반해 한국은 아직 매뉴얼화된 정책이 부재하거나 미흡하다.

일본은 하나의 국립대 법인이 복수의 대학을 운영하거나, 국립·공립·사립 등 설립 형태를 뛰어넘는 ‘대학 간 연대추진 법인제도’, 대학 간 통합 시 ‘학부 단위의 양도’를 가능케 하는 정책을 도입해 다양성을 확보한 데 반해 한국에서는 이런 식의 구조개혁은 생각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일본은 대학 구조개혁을 통해 대학의 경쟁력과 국제화를 강화하고 대학의 다양성과 특성화를 증진하는 성과를 거뒀다고 한다. 그러나 긍정적 평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 대학에서는 구조개혁에 저항하거나 부정적으로 반응하기도 한다. 

특히 사립대학 법인의 책무성과 잔여재산의 국가 귀속 등을 명확히 한 사립학교법 제·개정은 사립대학 법인의 자율성과 공익성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있다. 대학의 시장화와 규제 완화로 인해 대학의 공공성과 사회적 책임이 약화됐고, 국립대학 법인화는 국립대학의 재정난을 해결하지 못하고, 교수들의 노동조건과 학생들의 학비부담만 악화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대학 구조개혁은 한 걸음 뒤늦게 출발한 우리에게 타산지석이 된다. 

먼저 우리도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로드맵을 마련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처럼 정권에 따라 달라지는 대학 구조개혁 정책은 대학 현장의 혼란을 야기할 뿐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더불어 보다 디테일한 접근이 필요하다. 총론과 각론이 유기적으로 연관되고 각론에 따라 실행 매뉴얼이 제시돼 현장에서의 혼란을 최소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제한된 범위에서만 허용됐던 구조개혁 방안들이 보다 더 혁신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경계를 허무는 노력이 필요하다. 글로컬 대학 사업에서 표방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마지막으로 대학 구조개혁은 대학, 지자체, 산업계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협력과 소통 체계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또한 중단 없이 추진돼야 한다. 단순히 대학의 수나 규모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대학의 질과 다양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 본격적으로 시작될 대학 위기의 시대, 정부의 대학 구조개혁 청사진을 제대로 보고 싶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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