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석 한국뉴욕주립대 팀장

김규석 한국뉴욕주립대 팀장
김규석 한국뉴욕주립대 팀장

지난 6월 말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KAIST 등 전국 52개 주요 대학이 내년부터 영국 QS 세계대학평가에 불참하기로 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며 대학가에 파동이 일었다. 2023년 QS는 세계대학평가 시행 20주년을 맞아 평가 체계를 개편한다고 발표했는데, 변경된 기준이 이른바 서구권 대학에 유리하게 만들어져 있음을 국내 대학이 지적하며 집단으로 반발한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지난 20년 가까이 랭킹이라는 족쇄에 얽매였던 수많은 대학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QS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결기 있는 행동처럼 보이기도 했다.

6월 25일 QS가 받은 ‘최후통첩’의 요지는 △QS가 새로 도입한 평가 시스템에는 결함이 있으므로 세계대학랭킹 발표를 미뤄야 한다는 것 △만약 랭킹이 그대로 발표된다면 이는 무효이고 △앞으로 한국 대학은 QS에 자료를 제공하지 많을 것이며 △QS 세계대학랭킹으로부터 영원히 탈퇴(permanently withdraw)하겠다는 것이다.

52개 한국 대학의 총장이 아닌 기획처장(또는 부총장)이 만든 임의 결사체가 어떤 정도의 대표성과 영향력을 가졌는지는 차치하고서라도 QS라는 영국의 민간 기관에 자신들의 주장이 관철될 때까지 결과 발표를 중지하라는 요구가 실효적인지, 그들이 발표한 결과가 유효하지 않다는 해석에 동조할 대상이 얼마나 될지 생각해볼 문제다. 이를 잘 아는 듯 QS의 핵심 관계자는 한편으로 한국 대학 달래기에 나서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대학이 자료를 제공하지 않더라도 평가할 방법이 있다며 자신 있는 태도를 보였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52개 대학이 QS에 보낸 공동 성명서를 통한 주장의 핵심은, 일부 언론의 보도대로 QS 대학평가 거부라기보다는 “방법론(methodology)이 우리에게 불리하니 바꾸어 달라”는 일종의 호소문이다. 결국 이번 일을 통해 QS의 강력한 힘이 오히려 증명된 셈이다.

한국 대학들로서는 억울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고등교육 시장 개방과 세계화 흐름을 타고 등장한 영국의 한 회사가 자신들이 만든 잣대를 들이대면서 “우리가 앞으로 너희들을 평가할 거야”라고 선언한 뒤로 뜻하지 않은 상황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먼저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바다 건너에서 별안간 평가자가 나타나 내 순위를 매기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은 비록 소수의 국내 대학이 세계 무대에서도 이름을 내세우고 있으나, 2000년 초중반까지 국제 고등교육 분야의 변방이면서도 고등교육 수요가 급증하는 일종의 내수 시장 호황기라는 온실에서 살던 대한민국의 수많은 대학, 특히 명문대로 일컬어지던 일부 대학은 위와 같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에 속수무책으로 주도권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글로벌 대학 랭킹과 관련한 대학가의 소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17년 C대학에서 발생한 랭킹 조작이 발각되면서 사회적 파문과 함께 교수협의회와 동문회 등의 거센 비판에 직면하였던 사건이 대표적이다. “담당 직원의 과욕”이었다는 다소 허무한 결론으로 일단락되었지만 글로벌 랭킹의 영향력과 이에 지배받는 국내 대학의 현실을 바로 보여주었다.

2012년에는 랭킹이 하락했던 비수도권 P대학에 모 평가기관이 컨설팅 비용으로 무려 3억 원을 요구했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기도 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S대학도 최고위 리더십이 모 세계대학평가 기관 본사로 직접 날아가 이른바 ‘잘 보이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등, 국내 대학이 랭킹이라는 매력적인 수단을 활용해서 어떻게든 세계 무대에 이름을 효율적으로 알리려고 노력해온 지난 약 20년의 역사는 눈물겨운 현실이다.

OECD, IMF, 세계은행 등이 공적 영역의 권위 있는 초국가적(supranational) 기구로서 국내 대학에 직‧간접적 영향력을 미친다면, QS와 THE로 대표되는 몇몇 기업은 민간 영역에서 그들이 창조한 기제를 활용해 글로벌 고등교육 질서를 주도한다. U.S. News & World Report 랭킹의 성공에서 영감을 받은 국내 주요 일간지가 이들과 협력하거나, 또는 독립적으로 대학 평가 시스템을 만들어 한동안 “쏠쏠한 재미”를 보기도 했다.

랭킹의 변신은 무궁무진하다. 평판과 브랜드를 중심으로 대학의 경쟁력에 관한 인식을 조사하는 단순한 유형으로부터 발전해 연구력, 졸업생 평판, 산업계 관점 등으로 기준을 다양화하기도 하고 지역에 따라 아시아, 북미, 중남미 등으로 구분하기도 하며 개교 50년이 지났는지에 따라 구분해 따로 순위를 매기기도 한다.

기존 세계대학평가의 문제를 지적하며 “Real Impact”를 측정한다는 랭킹도 2020년 신설되었다. THE가 UN 지속가능개발목표(SDGs)를 차용해 만들어낸 ‘Impact Ranking’으로 대학의 순위를 매긴다거나 가끔 정부 또는 국회에서 QS, THE, IMD 등을 인용해 우리나라 대학 경쟁력이 높고 낮음을 논하는 광경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야말로 대학을 향한 국내외를 넘나드는 공공과 민간의 합동 전술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2022년 하버드, 예일, UC 버클리 로스쿨이 U.S. News & World Report의 평가를 거부한 것은 오랜 기간 대학가를 쥐고 흔들었던 랭킹에 저항하는 움직임이 확산하는 계기가 됐다. 올해 초에는 다수의 미국 의대가 같은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작년 5월 중국의 란주(Lanzhou), 난징(Nanging), 인민(Renmin) 대학교가 ‘교육 주권’과 ‘중국의 특성에 맞는 대학’을 표방하며 모든 세계대학평가에서 탈퇴하겠다고 발표한 것에 이어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가 공동으로 자체 대학 랭킹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올해 9월 뉴스도 눈여겨볼 만하다.

“중앙일보 대학 평가를 거부한다”는 고려대 학생들의 외침이 있었던 2014년으로부터 지난 10년 동안 대학 사회는 어떻게 흘러왔는지 돌아본다. 그리고 고등교육 헤게모니를 차지하려는 국제 무대의 투쟁은 여전히 치열하다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QS가 한때 내세웠던 슬로건, “Who Rules?”. 이제 우리는 어떤 답을 준비해야 하는가.

<한국대학신문>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