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 이정환 기자] 한림대학교(총장 최양희)는 7일 한림대 국제회의실에서 ‘위대한 책들을 가르치는 학교’(Great Books School)로 국내외에 널리 알려진 세인트존스 대학의 전문가를 초청해 ‘세인트존스 대학 Great Books 프로그램 춘천포럼’을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생성형 AI 분야의 기술혁신이 급속도로 발전하는 21세기에 이전보다도 더욱 중요해진 문해력과 비판적 사고능력 및 협업 능력을 길러주고 인간 고유의 가치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제기하는 교육을 실천함에 있어 고전ㆍ명저 토의 교육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인식하에 마련됐다.

이를 위해 지역 내외의 여러 대학과 도서관, 각급 학교 및 화천 교육지원청 등 유관 기관의 교육 관계 전문가들이 모여 세인트존스 대학 교육 프로그램을 교육특구 사업과 연계해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에 적합한 방식으로 발전시켜 나갈 방안을 모색해봤다.

기조강연자인 랭스턴 교수(세인트존스 대학 총장 선임고문)는‘어린아이를 자유로운 성인으로 만들기: 전인교육에 관하여(Creating Free Adults out of Children: An Examination of the Wholistic Education)’라는 주제로 세인트존스 대학의 전인교육의 이상과 현실적 도전에 관한 강연을 했다.

세인트존스 대학 Great Books 프로그램 춘천포럼.

세인트존스 대학(St. John’College)은 학부에 별도의 전공 과정이나 학과를 두지 않고 전교생 모두가 15명 내외의 토의 기반 소규모 수업에서 4년 동안 고전 100권을 읽고 탐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1696년에 설립되어 미국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대학인 세인트존스 대학은 1937년에 당시의 기술혁신 교육 물결에 도태되며 학생 수가 급감하는 가운데 폐교의 위기를 맞았는데 위기를 타개하고자 과격하고 근본적인 실험을 단행했고 놀라운 역발상을 통해 ‘위대한 책들’(Great Books)을 읽고 토의하는 ‘새로운 프로그램’(the New Program)을 도입했다.

현재 이 대학은 각종 언론의 평가에 따르면 ‘미국에서 가장 의도적으로 다른 길을 가는 대학’이면서도 ‘가장 앞을 내다보고 미래에서 경쟁력을 갖춘 대학’으로 평가된다.

세인트존스대학은 인문학 분야의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졸업생의 비율이 졸업생 100명 기준으로 미국 대학 가운데 1위이고, 자연 과학 분야에서도 상위 4%, 다른 범주의 박사학위 분야에서 상위 10% 안에 위치한다.

이 대학이 이러한 놀라운 성과를 거둘 수 있게 된 이유로는 ‘새로운 프로그램’의 세 가지 실험적 요소를 들 수 있다.

첫째, 전공 및 학과 단위 편제의 세분화가 야기할 수 있는 파편화(fragmentation) 현상을 극복하고자 하는 전인교육의 이상이 있다. 둘째, 특정분야의 전문 지식이 압축되고 정리된 교과서나 현대의 저술 대신 오랜 시간을 거쳐 검증된 서양 전통의 ‘위대한 책들’을 직접 접하며 깊은 사유를 하며 학문에 대한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셋째, 소규모 토의 기반 수업과 교수자의 역할을 들 수 있는데, ‘튜터(tutor)’라고 불리는 이들은 특정 학문 분야의 전문가로서의 권위를 내려놓고 학생들과 함께 토의에 참가해 학생들이 질문을 제기하고 다듬는 작업을 돕고 학문적 탐구 진행 방향에 대해 제안을 하기도 한다.

기조 강연 다음에는 이용화 교수(인천대 영문과)가 ‘Great Books, Great Students: 세인트존스 대학의 고전교육 프로그램의 인천대 적용사례와 확산방안’이라는 제목의 주제 발표에서 한국 독서토의교육 현실의 문제점에 대한 논의와 함께 지난 2019년부터 인천대 Great Books(이하 GB) 센터에서 대학의 교과 및 비교과 과정을 운영하고 이를 지역의 고등학교에 확산시켜 온 과정을 공유했다.

다음으로 안종화 교수(강원대 공학교육혁신센터장)가 ‘초중등교육 및 시민교육 확산방안’에 대한 주제 발표를 했는데, 2022년부터 한림대 및 강원대의 일부 교수진들이 인천대 GB 센터와 협업으로 춘천지역의 대학생들과 중고생, 시민, 일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GB 토의식 교육을 확산시켜 온 과정을 설명했다. 또한 프로그램 개발, 교재 개발, 교사 연수 과정 등을 포함한 고교학점제와 연계된 매우 구체적인 강원형 고등학교 GB 프로그램 도입 제안도 이어졌다.

이후 2시간 가까이 이어진 전문가 패널 토론과 청중들의 질의응답 시간이 있었다. 패널로 참석한 안동규 교수(강원특별자치도 자치분권협의회장)는 “최근 정부에서 발표하고 춘천시에서 추진 중인 교육발전특구 구상의 핵심 내용에는 대학만이 아니라 초중고 및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혁신 안이 담겨야 하는데 GB 프로그램이 하나의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총평했다.

또한 “향후 업무협약 체결을 통해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독창적이고 우수한 교육 내용과 방식으로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세인트존스 대학의 교육프로그램과 인적 자원 등을 춘천 교육특구 발전 방안에 담아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한림대 김민호 교수(인문대학장)는 AI 시대에 세인트존스의 프로그램이 갖는 의미와 중요성을 짚은 후에 이와 같은 프로그램이 예산과 행정적인 지원 문제를 고려가 우선할 수밖에 없는 한국의 대학교육에도 적용가능한 지에 대한 질문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안종화 교수는 “춘천 지역에서 글로컬대학 사업에 선정된 한림대와 강원대가 자체의 글로컬대학 아젠다를 수행하면서도 대학교육 전반의 질적 향상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며 “시설투자비 등이 거의 투입될 필요가 없는 GB 프로그램을 활용한 독서와 토의, 그리고 글쓰기 교육 교과목과 각종 캠프나 경연대회 등을 포함한 다양한 비교과 과정을 운영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할 뿐더러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또 다른 패널인 춘천여고 이지현 교사는 “이런 프로그램이 고등학교 교육현장에 도입되기 위해서는 고시 외 교과목 승인 과정을 거치거나 2023년 1학기 춘천여고 <인문학적 상상여행> 교과목에서 시범적으로 운영해 보았던 것처럼 GB 프로그램을 고교학점제 교과목 내에 부분적으로 연계하는 교과과정 접목 방안과 다양한 비교과 과정 운영 방식을 고려해볼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포럼에 참가한 춘천시청의 김상희 과장(교육도시과)은 “최근 정부가 발표한 교육발전특구의 모델 안에 GB 프로그램을 어떻게 안착시켜서 잘 실행시킬 수 있을까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특히 춘천 지역에서는 글로컬 대학과 지자체 그리고 지역 사회가 협업하는 모델이 가장 바람직하고 효과적이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을 대학에서 어떻게 잘 접목해서 우리의 공교육, 특히 초중등교육과 어떻게 같이 갈 수 있을지를 두 대학과 함께 고민해나가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포럼 종료 후 한림대와 세인트존스 대학 측은 향후 단계적으로 다양한 방식의 교류-협력 프로그램을 추진하기 위한 의사를 담은 상호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행사는 춘천시와 한림대 그리고 인천대가 공동으로 주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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