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열 고려대 부장

유신열 고려대 부장
유신열 고려대 부장

직장인이 일을 대하는 관점에 유의미한 변화가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일에서 의미를 찾기보다도 개인에 우선 순위를 두고 단순히 이를 위한 수단으로 여긴다. 직장인 대상의 여러 설문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조직의 목적보다는 근무 여건과 연봉이 직장 선택의 최우선 순위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사정을 잘 모르고 후배 동료에게 하소연하면, “부장님은 요즘 젊은 신입 직원들의 생각과 가치관을 너무 몰라요”라고 핀잔을 준다. 그러면서 신입 직원들이 오리엔테이션에서 당당히 자신의 연봉이 얼마나 되는지 적극적으로 묻는 분위기라고 전해준다. 최근 어느 대학교 행정교육을 담당하는 원장은 ‘요즘 직원들이 조직의 목적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다’고 하면서 어떻게 해야 조직에 책임과 의무감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묻기도 했다.

일을 대하는 이러한 시각의 변화는 실질적으로 경제적 필요에 의해 강요된 현실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지만, 이는 인간의 노동에 대한 근본적 이해와는 거리가 있다. 《가짜 노동》이라는 책에서는 노동은 개인의 도덕성과 자존감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언급하며, 노동이 단순한 생계 수단을 넘어 인간 존재의 본질적 부분임을 강조한다. 헤겔과 마르크스는 노동을 통해 인간이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고, 자아를 실현하는 과정이라고 봤다. 그들에 따르면 노동은 단순히 물질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 자신과 세계와의 관계를 형성하고, 자신의 존재를 확증하는 행위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현대 사회에서 직장인들이 겪는 ‘가짜 노동’은 자아실현의 기회를 박탈하고, 인간 본연의 가치를 퇴색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그렇다면 누군가 ‘가짜 노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을까? 책에서는 “가짜 노동은 명령받은 업무, 급여 받기로 한 업무, 조직에서 요구하는 업무, 노동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노동은 아닌 업무 등이 여기 해당한다. 가짜 노동을 하면 우리는 실질적인 일을 한다고 느끼지 못하면서도 계속 바빠진다. 혹은 우리가 아는 일 중에 무의미하지 않은가 의심되는 업무가 있다면 그게 바로 가짜 노동이다”라고 하고 있다. 실제로 직장에서의 일이 단순히 급여를 얻기 위한 수단이 돼버린다면, 그 일은 인간의 본질적 요구와 동떨어진 것이 된다. 이는 개인의 창조성과 자아실현을 저해하며, 궁극적으로 도덕성과 자존감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직장인이 자신의 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일을 통해 어떻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하는지는 그들의 정신적, 감정적 건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물론 일에서 벗어나라는 《워킹 데드 해방일지》와 같은 책은 일을 다른 관점에서 조명한다. 이 책의 저자는 일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현대 사회의 새로운 현상에 ‘일 중심주의’라는 뜻의 ‘워키즘(Workism)’, 종교가 있는 사람이 신앙에서 의미를 찾듯 일에서 의미를 찾는 사람이라는 뜻의 ‘워키스트(Workist)’라 정의한다. 그리고 번아웃(burn out)에 시달리는 워키스트가 일에서 해방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주장한다. 직장인의 한쪽 귀로는 ‘가짜 노동’을 경계하는 소리가, 다른 한쪽 귀로는 ‘워킹 데드 해방일지’를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양쪽 중 어느 한쪽이 맞고 틀린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어느 경우든 직장인은 일의 한 가운데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직장을 통해 인간의 본질적인 삶을 실현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직장이 단지 돈을 버는 장소가 아니라, 개인의 잠재력을 발휘하고 자신만의 가치를 창출하는 자아실현의 공간으로 인식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래야 비로소 우리는 일의 본래 의미를 회복하고, 직장과 삶의 질을 동시에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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