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진학지원센터장

배상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진학지원센터장
배상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진학지원센터장

필자는 매년 100여 회의 특강을 다니는데, 그때마다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학생들의 ‘미래 생존’이다. 학생들이 미래에 생존하기 위해서 제대로 된 진로지도를 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기본 입장이다. 그래서 학생들이 경제적 자립의 길을 찾도록 조언하는 데 방점을 둔다. 충남의 한 농촌 지역의 일반고등학교 초청으로 2~3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도 그렇게 말했다. 그 학교에서 5등급 이하의 성적이라면 전문대학 진학을 고려하라고 했다. 취업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강의 후 한 학생이 질문했다. 내신 성적 6.4등급으로 방사선사가 되고 싶단다. 학교에서는 일반대학에 갈 수 없다고 했고 자신도 그럴 생각이 없단다. 방사선사가 될 수 있는 학교라면 어디든지 가고 싶다고 했다. 필자는 학교 근처의 여러 전문대학을 추천했다. 그 학생도 동의했지만 부모님의 반대가 문제였다. 4년제 일반대학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의 부모님은 4년제 일반대학을 졸업해야 사회에서 더 인정받는다고 믿고 있었다.

내신 6.4등급이면 전문대학 방사선과도 어려운 성적인데 4년제를 고집하다니 한숨이 나왔다.

방사선사만 취득하면 되기에 주변 전문대학 몇 군데를 지원하라고 다시 권했다. 그 전문대학들은 국가고시를 위해 정말 열심히 학생을 지도한다. 학사학위의 경우 전문대학에서 방사선사 자격증을 딴 다음에 전문대학에서 학사학위를 받으면 일반대 학사학위와 같은 학위취득자가 된다. 전문대학에서 운영하는 학사학위 과정은 일-학습 병행제로 하기에 야간 수업으로 운영된다. 낮에는 직장에서 돈을 벌면서 밤에는 학위를 취득하는 학업을 할 수 있다.

30여 년 전에 필자가 담임을 맡은 학생 중에 S군이 떠올랐다. 가정이 넉넉지 않아 4년제 대학에 진학하지 말라고 얘기하면서 인근 전문대학의 방사선과를 추천했다. 담임 선생님이 4년제 대학에 가지 말고 전문대학에 가라고 했을 때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학에서 방사선 공부가 재미있었고, 취업이 잘 된다는 말에 더 즐거웠단다. 덕분에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후에 서울의 가장 큰 종합병원의 방사선사가 됐다. S군은 영문학과에 진학했다면 현재와 같은 삶의 질을 누릴 수 없을 것이라 했다.

방사선사가 되려면 전문대학에 가라고 권하고 싶다. 성적이 뒷받침해준다면 다른 선택도 가능하겠지만 중간 이하의 성적이라면 전문대학에 지원하는 것이 좋다. 방사선사가 되는데 4년제 대학에 진학할 필요는 없다. 전문대학에서 배우는 수준이면 자격증 취득에 부족함이 없다. 전문대학 방사선과의 자격증 취득률이 90% 이상이다.

그 여학생의 성적으로 재수한다 한들 원하는 대학에 가기 힘들 것이다. 설사 간다고 해도, 방사선과 졸업생보다 좋은 취업의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이미 일반대학 졸업자 중 실업자가 100만 명을 넘는 시대가 됐다. 또한 일반대학의 여러 학과가 폐과되고 있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4년제 대학만 졸업하면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일반고등학교에서 성적이 6등급 중반대의 학생에게 일반대학 진학을 종용하는 것은 무리라고 본다. 스스로 공부할 습관은 물론이고 교과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그런 경우에는 자격증을 취득해 사회의 당당한 사회인으로 성장하는 길이 좋다고 본다. 이 사회에서 자기 자신을 생존시킬 능력을 키워야 정상적인 사회인이 될 수 있다. 대학 졸업장을 위해 청년 시절에 빈곤을 자처할 필요가 없다. 청년 시절에 꿈을 추구하는 것은 좋지만 생계를 해결해야 꿈을 추구할 힘이 생기는 것이다.

“선생님, 방사선사가 되고 싶어요”라는 학생의 질문에 필자는 말한다.
“주변의 전문대학 방사선과에 지원해라. 할 수 있으면 많은 전문대학에.”
“엄마가 전문대학은 안된다고 그래요.”
“엄마에게 물어봐. 평생 나를 먹여 살릴 수 있느냐고. 그렇지 않으시다면, 네가 스스로 돈을 벌고 살아갈 수 있는 자격증을 따도록 기다려 달라고 해. 그런 후에 학사 학위를 받겠다고.”

나이가 들면서 부족한 것은 학벌이 아니라, 먹고 사는 능력이 부족한 것이다. 필자와 같이 나이가 든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동의하는 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입이 없는 것만큼 비참한 것도 별로 없다. 청년들은 스스로 ‘미래 생존’을 위한 길을 선택해야 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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