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10명 중 7명은 ‘AI 디지털교과서’ 반대…“아이들 스마트 기기 과의존 걱정돼”
일반 교사 대상 별도의 연수·알림 없어…디지털 기기 오류 시 교실 내 혼란도 우려
교육부 관계자 “졸속 추진 아냐…내년에 디지털 기기 전문 인력 1200명 배치할 것”

태블릿PC. (사진=아이클릭아트)
태블릿PC. (사진=아이클릭아트)

[한국대학신문 김소현 기자] 내년부터 전면 도입되는 AI 디지털교과서를 두고 정부의 정책 속도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오는 2025년부터 일부 학년 및 교과에 AI 디지털교과서를 도입하고 2028년까지 적용 대상을 확대할 예정이다. 초 3·4학년, 중1, 고1 등 일부 학생들은 당장 내년부터 교실에서 AI 디지털교과서를 활용하며 수업을 이어갈 전망이다.

이에 대해 학교 현장에서는 확연한 온도차를 보여주고 있다. 7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실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에 찬성하는 학부모는 10명 가운데 3명에 불과했다. 초·중·고교생 자녀를 둔 전국 학부모 1000명(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1%p)을 대상으로 지난달 26~30일 조사한 결과 정책 도입에 찬성하는 비율은 30.7%였다. 학부모들은 특히 디지털 기기 과의존과 문해력 저하를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원들은 더욱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초·중·고교 교원 1만 9667명을 상대로 지난달 23∼31일 진행한 설문에 따르면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에 ‘동의한다’는 대답은 12.1%에 그쳤다. 동의하지 않는 교원 가운데 35.5%는 디지털교과서의 학습 효과성에 의문을 표했다. 충분한 설득과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졸속으로 정책을 추진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집에서도 스마트폰 중독인데”…학부모들, 스마트 기기 과의존 우려 = 지난달 23일 국회에서 열린 ‘AI 디지털교과서, 이대로 괜찮은가?’ 토론회에서 이윤경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장은 청소년의 지나친 스마트 기기 사용과 관련해 우려를 제기했다. 그는 “내부에서 진행한 초중고 학부모 대상 설문조사를 살펴보면 시력 약화, 거북목 유발, 정서발달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스마트 기기 과의존에 대해 우려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며 “학생들이 일상에서도 디지털 기기를 과도하게 사용하는데, 학교에서까지 접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5월 국회 국민동의청원 게시판에는 AI 디지털교과서 도입 유보를 촉구하는 청원이 올라왔다. AI 디지털교과서 도입과 관련해 학부모, 교사, 교육계 전문가들의 우려가 매우 크고 가정 내에서 ‘스마트 기기들과의 위험한 동거’가 진행 중인 가운데 교과서까지 디지털로 해야 하는 이유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해당 청원은 5만 명 이상의 동의를 받으며 교육위원회에 회부됐다.

과도한 디지털 기기 사용이 성장기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연구로도 입증됐다. 지난해 홍콩 교육대 연구팀이 ‘조기 교육과 발달(Early Education and Development)’ 국제학술지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12세 이하 아이들이 디지털 기기를 사용할 경우 전두엽, 두정엽, 측두엽 등에 기능적 변화가 나타나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초기 디지털 경험이 이어지면 어린이의 뇌 구조에 장기적으로 긍적적·부정적 영향을 모두 미친다”며 “뇌 네트워크에 구조적·기능적 변화를 일으키는 만큼 부모와 교사는 이러한 잠재적 영향을 인식하고 어린이에게 디지털 사용에 대한 적절한 지침을 제공하고 중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해외에서는 학교 내에서 디지털 기기 사용을 규제하는 움직임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뉴욕에 이어 미국 내 두 번째로 큰 학구인 로스앤젤레스 통합교육구(LSUSD)는 지난 6월 학생들의 스마트폰 사용을 하루 종일 금지하는 결의안을 승인했다. LA에서는 이미 학생들의 수업 중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해 왔는데, 학교에서 생활하는 자유 시간 중에도 스마트폰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닉 멜보인 LSUSD 이사는 해당 결의안을 제안하며 “아이들이 더 이상 아이로만 남을 기회가 사라지고 있다”고 밝혔다.

학교 내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하는 움직임은 LA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번지는 분위기다. 버지니아주는 학생들의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제한하는 지침을 마련해 내년 1월 발효 예정이다. 인디애나주, 워싱턴주, 플로리다주, 미네소타주 등에서는 이 같은 내용의 법안이 이미 통과됐다. 프랑스에서도 3~15세 아이들의 학교 내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하는 ‘디톡스’ 법안이 지난 2018년 제정돼 규제 중이다. 대만은 2015년 법 개정을 통해 18세 이하 청소년의 ‘합법적이지 않은 시간’ 동안 디지털 기기 사용을 금지했다. 이처럼 스마트 기기를 제한하는 움직임이 지속되자 일각에선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은 전 세계적 흐름을 거스르는 판단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이와 관련해 학습 기기와 스마트폰은 분리해서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권정민 서울교대 교수는 “해외에서 스마트폰은 학습 도구로써 사용되는 게 아니라 금지하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미국은 교실 내 1인 1 컴퓨터 사용이 보편화돼 있고 학교에서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상”이라면서 “컴퓨터(디지털 기기)를 금지하게 되면 우리나라 교육이 뒤처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현재 우려가 제기되는 디지털교과서 이슈는 ‘디지털’이 문제가 아니라 ‘교과서’가 문제”라며 선을 그었다.

■ 내년부터 도입하는데…현직 교사도 모르는 ‘깜깜이 교과서’ = 내년부터 AI 디지털교과서로 아이들을 가르칠 현직 교사들 사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지방에서 초등학교 4학년 교사로 근무 중인 A씨는 “우리도 AI 디지털교과서를 기사로 보고 알고 있다”며 “AI 디지털교과서 연수를 다녀온 교사를 제외하면 일반 학교 선생님에게 별도의 연수나 알림이 제공되진 않는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AI 디지털교과서가 보조 교과서로 쓰이는지, 서책형 교과서가 없어지는지도 선생님들은 전혀 모른다는 게 A교사의 설명이다. 그는 “교사도 모르는데 학부모들은 디지털교과서에 대해 더 모를 것”이라며 답답함을 드러냈다.

교사 A씨는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수업 방식에도 우려를 표했다. 이미 3~4년 전부터 학교에는 3~6학년을 대상으로 보급된 태블릿 PC가 존재하는데, 이를 활용해 수업을 진행할 때마다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이다. A교사는 “태블릿 PC로 수업할 때마다 학생 2~3명은 PC를 못 쓰는 상황이 벌어진다. 태블릿이 인식을 못하거나 스무 명이 넘는 학생이 동시에 접속하면 오류가 나기도 한다”면서 “PC가 안 되면 학생들은 선생님을 찾고, 이를 고치느라 수업이 제대로 진행될지도 우려스럽다”고 전했다.

이에 교육부는 지난 5월 ‘초‧중등 디지털 인프라 개선계획’을 발표하며 AI 디지털교과서 수업을 보조하고 디지털 기기를 관리하는 ‘디지털 튜터’를 양성·배치하겠다고 밝혔다. 학생과 교사는 수업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디지털 기기를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인력을 길러내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디지털 튜터는 교육부에서 예산이 내려오면 학교 측에서 직접 인력을 채용하는 방식으로 운영돼 소규모 도시에서는 전문 인력을 구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한 매체에 따르면 지난해 배치된 디지털 튜터 3명 중 1명은 수도권에서 활동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은 농어촌 학교에서는 전문 인력을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내년까지는 디지털 튜터 1200명을 학교에 배치할 계획이지만 양성된 인력이 모든 학교에 배치되진 않는다”며 “3~6학급이 안 되는 학교가 있는 반면 10학급이 넘는 학교도 있는 만큼 수업이 진행되는 데 물리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는 규모가 큰 학교 위주로 배치할 계획이다. 어느 학교에 배치하는지는 시도 교육청 차원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제도 도입이 졸속으로 이뤄진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AI 디지털교과서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2015년부터 운영되던 디지털교과서 교육의 연장선이 내년에 적용되는 것”이라며 “이전 정부에서부터 차근차근 준비해 오던 제도이고, 내년에는 고교학점제 등 교육 현장에 많은 변화가 생기는 시기여서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 2025년부터 적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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