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배근 본지 논설위원,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붕괴 가능성과 더불어 인플레ㆍ실업률 고공행진에 시달리는 유로존, ‘제2의 일본’(비즈니스위크)과 ‘잃어버린 10년’(파이낸셜타임즈)의 이야기가 나오는 미국 경제와 영국 경제, 9년 3개월만에 다시 신용이 강등된 일본 경제 등에서 보듯 선진국 경제가 장기 저성장 국면에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중국 제조업까지 침체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 한국 경제의 수출증가율 둔화와 기업 실적 악화를 일시적 현상으로 볼 수 없는 이유다.

주지하듯이 한국 경제는 외환위기 이후 성장률이 크게 하락하였다. 가장 커다란 요인은 내수의 약화 때문이다. 민간소비 증가율이 외환위기 전(1989~97년)과 후(1999~2007년)에 연평균 8.0%에서 5.6%로, 그리고 총투자율이 연평균 37.1%에서 29.7%로 하락하였다. 외환위기 이후 금융자유화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경제시스템의 전환에 실패한 결과다.

내수 약화가 심화되는 가운데 수출에 의존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러나 내수의 취약성이 지속되는 한 수출 주도의 성장은 세계경제 환경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가 물가를 포기하면서까지 성장률에 집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성장률(2008~10년간 연평균)이 2.9%로 하락한 이유다.

이 기간 동안 민간소비 증가율과 총투자율은 각각 연평균 1.8%와 28.8%로 더욱 하락하였듯이 내수가 더욱 약화되었다. 수출에 목을 매는 ‘천수답 경제구조’가 되었다. 외환위기 이후 경상수지의 흑자 구조가 정착되었지만, 국민총소득 대비 수출의 비중이 2001년부터 2010년 사이에 37%에서 54%로 증가한 이유다.

 그런데 이런 성장 방식이 한계 상황에 도달하고 있다. 선진국 경제의 성장 둔화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주요 국가들에서의 경기부양 효과가 소멸되고 성장이 둔화되며 시작된 한국의 수출증가율 둔화 역시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성장의 둔화가 불가피한 것이다. 여기에 가계부채 압력의 증대는 내수의 약화를 가속화시킬 것이다.

그런데 불길한 점은 인구구조의 변화가 중요한 분기점에 도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활동인구가 2018년에 정점에 도달한다. 경제활동인구의 하락은 성장 둔화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핵심노동력(25-49세)은 이미 2009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한국은 고령화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 결과 비노동인구 일인당 노동인구(15~60세)의 규모가 2010년 약 2.6명을 기록한 후 하락세로 전환했다.

고령화는 자산가격 침체의 압력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고, 부채 상환의 어려움을 증대시킨다. 즉 청년층 및 중년층은 자산 구입을 통해 노후를 위해 저축하거나 차입하는 반면, 노령층은 은퇴 후 지출을 위해 자산을 매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연령인구가 상승하면 자산가격은 수요 증가로 상승하지만, 베이비부머들이 은퇴할 시점에 도달하면 자산가격은 반대 상황에 직면한다. 특히 국경 간 자본흐름에 영향 받을 가능성이 낮은 주택가격이 고령화나 인구구조 변화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즉 인구 상승과 경제성장은 실질 주택가격을 상승시키는 반면, 노령인구를 부양할 노동인구 비율의 하락은 주택가격을 하락시킨다. ‘유엔의 세계인구전망' 자료를 토대로 인구구조 변화와 고령화가 주택가격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연구들은 주요 22개국 중에서 한국이 향후 40년(2010~2050년)간 주택가격이 가장 크게 하락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 나라는 세계 최고의 고령화 및 세계 최저의 출산율, 핵심노동력의 감소 혹은 비노동인구 일인당 노동인구 규모의 하락세 전환 속에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 시작 등이 모두 맞물린 시점에 직면해 있다. 여기에 가계부채는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상황까지 이르렀다. 주택가격 상승률이 저하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이 조만간 하락세로 전환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문제는 대외환경의 구조적 변화로 성장세가 둔화되는 상황에서 주택자산 가격의 하락세 전환은 가계와 기업 등 민간부문의 자산구조, 이른바 대차대조표 조정을 불가피하게 만들고, 이는 다시 성장세 둔화의 장기 지속성 요인으로 작용하며 부정적 피드백루프를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 외환위기 이후에는 ‘인구 보너스(bonus)’의 덕택으로 위기를 조기에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 한국 경제는 ‘인구 오너스(onus)'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괜찮은 청년층 일자리 만들기에 성공하지 못하는 한 한국 경제는 장기 침몰 국면으로 진입할 수밖에 없다. 한국 경제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남은 시간은 길어야 5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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