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 신경전·보이콧에도 교육부·사분위 소극적

해당 대학들 "사립대학 소유권보다 공공성 존중해야"

[한국대학신문 이연희 기자]2014년 새해가 밝았지만 대구대, 상지대 등 사학분쟁의 불씨가 남아있는 대학들의 분위기는 어둡기만 하다. 구재단측 이사와 대학구성원측 이사의 갈등으로 총장 선임과 예산안 의결 등 기본적인 대학 운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난해에는 사학비리 당사자가 재단 정이사로 복귀하면서 이들 대학들은 더욱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10일 대구대에 따르면 학교법인 영광학원 이사회가 열리지 않아 이 대학과 대구사이버대 총장, 특수학교 교장 선임이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홍덕률 전 총장이 재선에 성공했으나, 지난 2013년 11월 구재단측 이사 3명의 불참으로 의결 정족수(4명)를 충족하지 못해 이사회 자체가 무산됐기 때문이다. 결국 선임 기한을 넘겨 홍 전 총장은 일반 교수로 돌아갔으며, 대구대는 부총장 직무대행 체제로 들어갔다.

거듭된 이사회 무산으로 2014년도 예산안 역시 검토되지 못했다. 1월 중순까지는 예산안을 확정해 2월 말까지 교육부에 보고해야만 본예산 편성이 가능한데, 이사회에서 끝내 통과하지 못할 경우 대학의 예산 운용에 막대한 피해와 혼란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특히 대구대는 지난해 교육역량강화사업과 산학협력선도대학 육성사업 등 국가사업으로 170억원 이상의 사업비를 확보했다. 그러나 예산안이 이사회 문턱에서 걸려있는 바람에 집행여부조차 불분명한 상태다.

이 대학 관계자는 “각종 사업비 사용처가 구체적으로 확정돼야 학생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데 지금은 모든 게 교착상태”라며 “사업비를 다 집행하지 못할 경우 내년도 사업이나 평가에서 불이익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매년 거세지는 교육부의 대학구조조정에 따라 모든 대학이 무한경쟁에 내맡겨진 시급한 상황에서 이사회 파행 때문에 발목잡혀 있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갑갑한 심정을 토로했다.

지난 7일 열릴 예정이던 이사회 역시 취소됐다. 보다 못한 교육부는 최근 영광학원측에 대구대 총장과 대구사이버대 총장, 특수학교장 등 산하학교장 선임과 결원 이사 선임 문제 등을 해결해 그 결과를 보고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기한 내에 사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이사 전원에 대한 임원 취임 승인을 취소할 것이라는 내용도 담겼다. 사실상 최후통첩인 셈이다.

영광학원 구재단측 이사 3명이 고의적으로 불참하는 이유로는 ‘개방이사 선임’이 꼽힌다. 지난 2012년 말 황수관 이사가 임기 도중 사망하자 교육부에서는 후임으로 개방이사 선출을 권고했다. 이에 따라 개방이사추천위원회에서 2명의 후보자를 뽑았으나 구재단측 이사 3인은 이미 이사 업무를 수행중인 학교측 추천이사 2명을 개방이사라고 주장하거나 추천위원회의 구성방식, 위헌소지를 문제 삼으며 개방이사 선임을 거부했다.

학교운영 자체가 마비될 지경에 이르자, 대구대 교수협의회와 총학생회, 동문 등으로 이뤄진 영광학원정상화를 위한 범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는 지난해부터 임시이사 파견 등 교육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촉구해왔다. 이번 교육부의 최후통첩으로 대구대 사태가 정상화될 것인지 구성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상지대 역시 총장자리가 오랫동안 공석이다. 지난 2013년 5월부터 구재단측 이사 5명이 이사회 참석을 거부하고 있다. 이사 정수 9명 중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는 이들은 학교측 추천이사인 채영복 이사장 사퇴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사회 파행이 거듭되는 동안 사학진흥재단 지원 공공기숙사 신축 사업은 취소됐고, 교수 충원까지 미뤄지고 있다. 지난해 재정지원제한대학에도 지정돼 이사회 파행의 파장이 곳곳에서 드러나는 형편이다.

그러나 상지대 구성원들의 위기감이 고조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지난 1993년 입시부정과 공금 횡령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됐던 김문기 전 상지학원 이사장이 최근 재단에 복귀하기 위한 움직임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지난해 11월 상지학원이 교육부를 대상으로 제기했던 ‘이사선임취소처분’ 소송에서 ‘정상화 이후 임시이사 파견이 위법하다’며 원고인 구재단측의 손을 들어줬다. 정이사를 선임해야 하는 상황인데다 지난해 세종대 비리 당사자인 주명건 대양학원 이사 선임까지 승인되자, 상지대 구성원들의 우려는 점차 커지고 있다.

실제로 김 전 이사장은 지난해 11월 25일 차남 김길남 상지학원 이사 이름으로 교내 인트라넷에 △한의대·한방병원 활성화 △기숙사·도서관·교수연수동 등 건물 신축 △교원 확충·재정 건전성 확보 △탕평인사 등을 골자로 대학발전계획을 내놓았다. 구성원들은 이를 두고 "복귀 행보가 아니냐"며 우려하고 있다.

이에 대해 상지대 비상대책위원회(교수협의회·직원노동조합·총학생회·총동문회·원주시민범대위원회) 소속 정대화 교수는 “김 전 이사장을 상지학원 설립자로 인정할 수 없을뿐더러 지금 이사로 있는 상지여고에도 기여한 바가 없다고 들었기 때문에 전혀 믿을 수 없는 약속”이라고 일축했다.

정 교수는 “지난 20년 동안 김 전 이사장은 꾸준히 복귀를 시도해왔고, 최근 그 움직임이 더 심해진 것은 사실이다. 복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워낙 비리 정도가 심해 돌아오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지대 법인 이사회 운영이 파국으로 치닫는 가운데 사학분쟁조정위원회(위원장 손기식, 사분위)는 지난달부터 교육부의 상황보고를 받아 검토 중이다. 교육부 사립대학제도과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사학의 자율성 때문에 직접 개입은 힘들지만 상호합의를 위한 조정단계를 밟을 가능성은 있다.

이미 정상화 해 표면적으로 갈등이 드러나지 않는 대학 역시 사학분쟁이 다시 불거질 수 있다. 지금까지 구재단이 복귀한 광운대, 경기대, 덕성여대, 동덕여대, 세종대, 영남대, 조선대 역시 구재단에 힘이 쏠렸거나 양측의 신경전이 팽팽한 상태다. 지난해만 해도 김포대학과 충청대학 등 전문대학 3개교는 사분위 정상화 절차를, 서남대와 제주국제대 등 9개 대학이 임시이사 파견 수순을 밟았다.

사학분쟁을 겪은 4년제 대학의 한 보직교수는 “구재단측 이사들은 대체로 사립학교를 사유재산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며 “교육부와 사분위까지 사립대학의 공공성을 인정하지 않고 설립자 소유권 중심의 정상화에 치중한다면 사학분쟁을 겪는 대학들은 앞으로도 속출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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