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고 직관적인 디지털 세상에 익숙한 세대

‘디지털교과서 도입’ 초중고 교실에 시작된 스마트교육
‘16주’ 대형강의 지고 쿼터제 등 짧은 원격강의 뜬다

[한국대학신문 이재·이재익 기자] 미래학자들은 오는 2030년이 되면 세계 대학의 절반이 사라진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미래학자들의 예측을 통한 미래 대응방안을 연구하고있는 국내의 박영숙 유엔미래포럼 대표도 연일 대학의 의미가 변하고 캠퍼스의 존재 가치가 사라질 것이란 경보를 울리고 있다. 멀지 않은 미래에  대학이  왜 사라진다고 진단하는 것일까.

‘신인류’의 등장이 첫손에 꼽히는 원인이다. 디지털 기기가 보급된 2000년대 이후 태어나 디지털 기기를 온몸으로 체득해온 세대가 신인류인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이다. 이들은 기존의 기관중심 교육체제를 거부하고 상시적인 온라인 교육에 친숙한 세대다. 이들의 등장과 함께 스마트기기 속으로 들어간 교육콘텐츠의 확산은 대학의 본령인 교육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미 와있다.

학령인구의 감소로 대학의 운영능력이 현저히 저하된 가운데 등장한 사내대학은 전통적인 대학체제에 큰 위협으로 다가설 전망이다. 무엇보다 이미 상용화돼 전 세계의 웹(Web)을 누비고 있는 ‘오픈 코스 웨어(Open Course Ware, 온라인공개강좌)’도 대학이 끌어당기던 교육수요를 분산시키는 강력한 경쟁자로 자리잡았다. 향후 15년, 혹은 10년 내에 전통적인 대학은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에서 변화하거나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미래학자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디지털 원주민’이 대학을 점령한다= 신인류는 대학을 어떻게 바꿀까. 변화의 모습은 이미 초중고 교실에 있다. 스마트기기를 이용한 디지털 교육은 교육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사업이다. 최근에는 소프트웨어를 정규과목으로 채택하는 등 교실에 디지털 새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 2011년부터 디지털교과서를 도입하는 등 스마트교육을 강화하기 위한 계획을 가동했다. 출판교과서에만 부여되던 교과서로서의 지위가 디지털교과서에도 부여되고, 교사에게는 스마트교육을 위한 연수를 실시한다. 교사용 태블릿PC도 보급됐다.

모든 변화는 디지털과 스마트 기기에 익숙한 학생들이 입학하면서 시작됐다. 이들은 이미 사교육시장을 통해 다양한 디지털 교육을 경험했다. 모바일 기기를 이용한 인터넷 강의, 인터넷서핑을 통한 수행평가 과제 등은 스마트교육시스템이 도입되기 이전부터 활성화됐다. ‘공부하는 게임’을 자처한 교육용 소프트웨어가 육아시장까지 잠식한 것이 현재의 교육모델이다.

이 같은 교육모델은 ‘홈스쿨링(Home schooling)’의 확대현상으로 나타난다. 홈스쿨링은 학교에 가는 대신 집에서 부모에게 교육을 받는 재택 교육이다. 미국은 150만명 이상의 학생이 홈스쿨링을 하고 있다는 통계가 있으며, 국내에서도 늘고 있는 추세다. 고용노동부 모성보호사업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육아 휴직 사용률은 76.9%로 매년 상승하고 있다. 10명 중 7~8명이 육아 휴직함에 따라 영유아 홈스쿨링 역시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홈스쿨링이 늘면서 올해 18세의 나이로 방송통신대학을 졸업한 차화목 씨처럼 교육과정을 단축시킨 사례도 늘고 있다는 평가다. 이들은 대학교육에 어떤 영향을 줄까.

정종욱 고려사이버대 교수는 이들의 학습습관을 면밀히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격교육에 익숙하고 필요한 지식을 인터넷을 통해 습득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이들 디지털 원주민에게 기존의 대학교육체계는 외면 받게 된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이들의 특징으로 교육 소모 시간이 짧다는 점을 첫손에 꼽았다. 직관적으로 빠른 의사결정을 요구하는 게임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분단위로 의사결정을 내려온 이들에게 15주 정규학기 시스템을 적용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관중심 공장형 대학은 쇠퇴한다= 신인류로 인한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을 것으로 전망되는 분야는 교수법이다. 위키피디아의 등장은 혁명적이다. 학생들은 더 이상 강의실에서 교수의 강의내용을 듣기 위해 기다릴 필요가 없다. 교수가 설명할 콘텐츠는 이미 학생들의 스마트기기에 모두 출력되고 있다. 실시간으로 온라인을 통해 공유되는 업데이트된 지식은 교수가 알고 있는 지식을 ‘옛것’이나 ‘틀린 것’으로 전락시킬 수 있다.

이 때문에 교수의 역할은 새로운 지식을 전달하는 것보다 지식을 엮어내는 논리와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제공하는 역할로 변모할 가능성이 크다. 코치, 멘토의 역할이 더 강조된다는 것이다. 이미 유엔미래포럼은 미래교육의 변화를 예측하며 이 같은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미 해외의 무크(Massive Open Online Course, MOOC) 등은 짧은 동영상 강의와 방대한 자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강의가 진행된다. 정해진 강의실에 모일 필요가 없는 학생들은 제공된 자료를 바탕으로 학습을 하고 동영상을 통해 자료를 해석할 방향을 지도받는 방식이다. 주당 1회씩 제출해야 하는 과제를 통해 학생은 교수와 논쟁을 벌이거나 상담할 수 있고, 상시적인 질문도 가능하다. 1명의 교수 아래 5명 가량의 튜터들이 활동하며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를 검토하고 질문에 대한 답변을 달아준다.

이와 같은 교수법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유동적인 학기제를 등장시킨다. 16주 정규학기 시스템으로는 학생들의 수요도 충족시킬 수 없고, 새롭게 나오는 지식을 전달할 수도 없다. 4~8주 강의 등 짧고 굵은 학기가 대학가 원격교육의 트렌드가 되는 것이다. 학생들이 원하는 지식과 정보를 짧은 시간에 습득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대학의 고정적인 학기제도 변모하는 것이 미래대학의 모습이다. 특정한 강의실과 지식전달자인 교수에 의존한 기존의 대학시스템이 지축부터 뒤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다 아는 학생들’ 고담준론(高談峻論)은 무너진다= 디지털 원주민의 등장과 부상은 대학의 학문체계 자체도 뒤바꿀 전망이다. 특히 인문학, 법학 등 ‘고담준론(고상하고 준엄한 이야기, 高談峻論)’이 쇠퇴할 것이란 예측이 많다. 두 분야는 사회를 이루는 근간이라는 점에서 강한 저항과 다른 전망들이 엇갈리지만, 미래학자들의 목소리에는 힘이 차 있다. 왜일까.

드렉셀대 컴퓨터공학부 학장이자 국제전기전자기술자협회 회장인 모세 캄의 전망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앞으로의 공학교육은 통섭과 프로페셔널리즘, 지속 가능한 사회 구성, 리더십, 원활한 의사소통, 팀워크, 기업가정신을 갖춘 인재를 키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간 하나의 국가나 기업을 위한 기술개발에 치중했던 공학교육의 시야가 넓어진 것이다. 이제 미래대학의 공학도들은 단순한 기술혁신이 아닌 기술의 쓰임새와 환경에 끼치는 영향까지 다채롭게 고민한 기술연구에 나서게 된다.

인간다움의 가치는 모든 학문에 적용되는 것으로 인문학이라는 특수한 학문영역에 국한시킬 수 없는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생명윤리와 결부된 생물학의 발달과 인간의 경계를 허물 휴머노이드(humanoid) 개발 등에서 철학과 역사의 논쟁은 지속될 것이고, 현재의 인문학은 오히려 이들을 포용하지 못한 채 갇힌 학문이 되어간다는 것이 미래학자들의 주장이다.

휴머노이드 논쟁은 특히 법학에 큰 영향을 준다. 법전에 기반한 성문법 체계는 생명윤리와 인간의 휴머노이드화, 로봇이 저지른 범죄 등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없어 가장 먼저 무너질 법 체계다. SF소설가이자 저명한 생화학 교수인 아이작 아시모프(Issac Asimov)의 저작 ‘파운데이션’이 던진 질문처럼 ‘사이보그의 살인’에는 어떤 죄를 적용해야 할까. 이같이 질문 하나가 법학의 체계를 붕괴시켜 대학의 법학 자체를 위축시키는 것이다.

■대학변화, 이제 명문대가 사라진다= 목전에 와있는 대학변화의 종착지는 어딜까. 예측은 힘들지만 조심스레 명문대의 몰락을 점치는 전문가들은 많다. 디지털 원주민으로 인한 교수법의 변화와 원격교육의 보급, 그리고 실용학문의 대두와 전통적인 인문사회계열의 쇠퇴는 곧 이들을 기반으로 했던 명문대학의 ‘브랜드 마케팅’ 실패로 귀결된다.

미국에서는 이미 커뮤니티 칼리지(Community college)와 리버럴 아츠 칼리지(liberal arts college) 등 소규모 직업·기술교육 대학들이 뜨고 있다. 이들 대학의 성공과 원격교육의 결합은 기존의 종합대학(University) 체계를 다시 단과대학 체계로 환원시키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직업의 개념이 평생직업에서 잦은 이직과 전직 등 단기직업 개념으로 옮겨지면서 학위인증시스템에 기반한 명문대학의 위상이 위축될 수 있다. 대학의 초기 모습은 법학과 신학 등 한번 배워서 평생을 사는 직업교육의 형태였다. 최초의 대학인 볼로냐 대학이 그랬다. 19, 20세기에는 학문의 전당으로서의 모습을 확립했다. 그러나 주력학문이던 인문학과 사회학이 쇠퇴하고 전직시기도 짧아지면서 대학에서 배운 학문으로 평생을 사는 모습은 사라졌다.

반면 학생들이 전직과 이직이 필요할 때마다 대학에 다시 들어오는 재교육은 잦아졌다. 대학이 지식의 상아탑에서 다시 직업교육기관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이 되면, 더 이상 막대한 학비를 받아 고준담론을 가르치고 학위 ‘브랜드’를 인증해줬던 명문대는 설 자리가 없다.

■대학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지난 2011년 21명의 대학 총장들은 ‘새로운 대학을 말하다’는 공저를 통해 대학의 미래를 나름대로 진단했다. 이 중 서정돈 성균관대 총장(現 성균관대 이사장)은 “21세기 대학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환경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기술의 눈부신 발달과 새로운 세대의 등장 등은 혁명적인 변화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는 대학의 위기지만 동시에 새로운 기회다”고 말했다.

그는 전통적인 대학과 미래대학의 차이로 △조직형태 △학습주도자 △공간개념 △학생 △상호작용 △시간개념 △학습형태 △졸업생 △동시성을 강조했다<표>. 또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응할 미래 대학의 키워드로 '5C'를 제시했다. 창의성(Creativity), 융복합(Convergence), 사이버(Cyber), 핵심가치(Core), 소통(Communication)이다.

서 이사장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유비쿼터스 교육시스템이 구축되면서 학생들은 언제, 어디서나 학습할 수 있는 새로운 교육환경에 놓이게 됐다. 미래대학의 학생들은 능동적으로 다차원적인 학습을 경험하고, 교수들은 지식전달자가 아닌 학생들의 능동적 학습을 장려하고 동기를 부여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에 기반한 변화가 바로 평생교육기관으로의 재등장이다. 직업의 주기가 짧아지고 수명이 늘어난 미래에는 새로운 직업을 찾기 위해 대학문을 재차 노크하는 재교육 수요가 는다. 이들을 수용해 끊임없이 지식을 재전파하는 과정에서 대학은 지금의 고등교육기관을 넘어 평생교육기관의 모습이 더욱 짙어지는 것이다. 박 대표는 저서 ‘미래교육보고서’를 통해 “교육은 평생교육이어야 하며 지구촌 시민이 되는 과정이나 기술을 알려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대학의 본령은 연구 … 소수 대학은 ‘연구중심대학’으로 분화
3D프린터·원격기술 발달로 집적연구단지 ‘클러스터’ 수요는 희석

절반은 무너지고 절반은 온라인에 발을 디딘 미래대학을 점치는 분석이 많다. 연구는 어떻게 될까. 미래 혁신을 주도할 기술은 계속해서 대학에서 나올까. 서정돈 성균관대 이사장(前 성균관대 총장)은 “연구중심대학을 허브(Hub)로 한 대학-연구 네트워크 모델로 기초연구와 응용연구, 대학과 사회가 하나로 융합돼 대학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여전히 연구의 미래는 대학이라는 것이다.

대학-연구 네트워크 모델은 연구중심대학을 네트워크의 핵심에 두고 연구소와 기업연구센터, 아이디어뱅크 등이 주변부에 위치해 인적 자원을 제공하는 형태다. 대학이 사회의 요구에 유연하게 반응하면서 사회의 과학기술을 선도하는 자연스러운 위치에 놓이는 모델로 평가할 수 있다.

각광 받던 집적연구단지의 조성은 원격기술의 발달로 시들해진다. 3D프린터는 설계와 실험에서 혁명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3D프린터는 사용자가 원하는 물건을 직접 만드는 것이다. 디자인한 제품이 어떤 것이든 3D프린터로 제조가 가능하다. 유엔미래포럼은 3D프린터가 오는 2030년이면 각 가정마다 보급될 것으로 예측했다. 이제 사용자는 ‘설계도’만 가지면 된다.

대학은 원격강의를 통한 직업·기술교육과 연구중심의 대학으로 분화된다. 여전히 미래를 선도하기 위한 대학원 연구는 활성화될 전망이다. 연구중심대학은 학부교육에 뒀던 비중을 과감히 포기하고 대학원에 역량을 집중한 대학이다. 극소수의 대학만이 이 같은 모델을 선택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윤병국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실험과 연구결과를 원격으로 나누고 비교하는 연구과정이 확립된 소수의 연구중심대학이 자리잡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염재호 고려대 교수는 보다 융합된 모델을 제시한다. 염 교수는 “미래대학이 성공하려면 유연하고 연구와 교육을 모두 잘해야 한다. 무크(Massive Online Open Course, MOOC)의 좋은 강의를 학생들에게 소개하고 교수들은 그 내용을 연구하는 등 유연해진 모델이 성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학의 연구가 다른 모습을 띌 것이란 시각도 있다. 소규모 원격교육들이 주류가 되면서 이들이 손을 놓은 대학연구는 기업이나 사설연구소에서 담당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대학의 연구기능 자체가 쇠퇴할 수 있다는 분석으로, 교수가 ‘가르치는 사람’으로 국한되면서 ‘연구하는 사람’의 정체성이 희석된다는 해석을 제시했다.

정종욱 고려사이버대 교수는 “대학이 하는 연구와 기업에 필요한 연구 사이에 불일치가 심하다. 이미 삼성연구소 등 굵직한 기업연구소들이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어 연구가 교육에 종속된 채 대학에 남아있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들 역시 소수의 연구중심대학이 나타난다는 전망에는 동의했다. 정 교수도 “약 7할의 대학은 온라인 직업·기술교육 대학으로 분화하고 3할의 대학은 장기적인 학문적 근간을 위한 순수연구기관으로 존속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