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자치·재정 위기 풀 해법 '국·사립대학법' 제정에 있다

한국법제연구원이 2012년 발간한 『교육 관계 법령의 입법체계 정비방안 연구』에 따르면 현재 국내 교육법체계는 교육기본법을 정점으로 유아교육법과 초·중등교육법, 고등교육법, 평생교육법 등 단계별 학교 교육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있다. 이밖에 교원에 관한 법률과 교육 지원·진흥 관련 법안 등 약 60여개 법률에 180여개 하위법령으로 구성됐다. 다른 법률체계에 비해 방대한데다 현재 급변한 교육환경을 제대로 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늘 따랐던 분야다. 본지는 새해를 맞아 교육법 정비의 필요성을 조명하고 특히 대학 관련 법령들의 문제점을 살펴본다.

[한국대학신문 이재 기자] 위기에 처한 대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법률체계 재정비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대학이 직면한 재정문제와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대학 폐쇄 등을 풀기 위해선 우선 대학의 기능과 사회적 위상을 법률로 명확히 재정비하고 이에 맞춘 정부의 지원책과 진흥책을 유도할 법률 정비가 필수라는 것이다. 일부 대학 전문가들은 사안별로 대응해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우므로 아예 교육의 패러다임부터 점검한 법률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앞서도 교육법학계에선 헌법과 교육기본법, 고등교육법상의 대학교육을 보다 명확히 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특히 국내 국가가 운영하는 국립대의 법률적 지위와 사립대에 치중돼 있는 고등교육 생태계 등에 부합한 법률개정 요구가 많았다. 이 밖에도 교육기본법 등 교육법 체계 전반이 난립돼 있고 체계적인 정비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모두 균일한 입법 취지에 따라 재정비할 필요성도 제기돼왔다.

대표적인 게 국립대학법 제정과 사립학교법 개정이다. 국립대학법 개정은 이미 10여 년 넘게 관련 연구가 진행 중일 정도로 국립대학가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다. 사립학교법은 2007년 재개정되며 설치된 사학분쟁조정위원회 문제와 초·중등 교육기관과 대학이 같은 법에 적용을 받으면서 발생하는 법의 해석을 두고 개정 요구가 많았다. 최근에는 교수들을 중심으로 사립대학법을 사학법에서 독립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 교육 관계 법령의 입법체계 정비방안 연구, 한국법제연구원(2012)

■ 대학가 국립대학법 제정, 시동 걸었다= 최근 가장 활발한 논의가 이뤄지는 것은 국립대학법 제정이다. 전국국공립대교수회연합회(국교련)와 대학정책학회(정책학회)는 지난해 12월부터 국립대학법 입안을 위한 정책포럼을 연이어 개최해 국립대학법 제정 논의에 불을 지피고 있다. 12월 1일 한국방송통신대에서 처음 열린 정책포럼에서 교수들은 국립대 자율성 확보를 위한 대학평의원회 설치 법제화 요구 등 국립대학법 초안 마련을 위한 연구와 토론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임재홍 방송통신대 교수(국교련 정책위원장)는 “국가 교육의 주된 형태는 공적 교육기관이 중심이 된다. 관련 법률이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고등교육법과 국립학교설치령으로 규정을 했는데 그렇게 남겨두기엔 대학의 규모와 형태가 크고 복잡해졌다. 새로운 체계를 재편하는 작업이 필요한 시점이다”고 강조했다.

국교련과 정책학회가 진행하는 7차에 걸친 정책포럼은 대학이 직면한 문제 전반을 포괄하고 있다. 두 단체는 이미 국립대학 자치와 국립대학법, 국립대학 회계와 국립대학법 등 2차례 정책포럼을 개최했고 앞으로도 △국립대학 총장선출과 국립대학법 △국립대학 연합체제와 국립대학법 △국립대학 운영원리와 국립대학법 등 4차례 정책포럼을 예정하고 있다. 각 정책포럼의 주제인 자치와 회계, 총장선출, 연합체제, 운영원리 등은 실상 사립대도 피해갈 수 없는 주제다.

이들이 2차례에 걸쳐 도출한 결론 역시 국립대와 사립대를 가리지 않고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내용이다. 우선 대학 자치 분야다. 당시 주제발표에 나선 최상한 경상대 교수는 “대학자치와 대학자율성을 위해 국립대 의사결정구조로서 대학평의원회 설립이 필요하다. 총장이 학칙에 대한 최종 의사결정권자이며, 심의할 수 있는 기구인 대학평의원회나 교수회가 임의기구로 돼 있어 대학의 자율성과 대학자치에 한계가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발제의 대상을 사립대로 바꿔도 결론은 갖다. 역설적으로 이는 국립대와 사립대가 설립 주체를 제외하면 운영상의 의사결정구조가 동일하게 ‘제왕적 총장’에 기대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재정문제도 마찬가지다. 반상진 전북대 교수는 국립대 제정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고등교육교부금법 제정을 주장했다. 이 법은 내국세의 일부를 고등교육 지원을 위한 별도 재정으로 편성해 일정 기준에 따라 각 대학에 교부하는 내용의 법안이다. 지방교육교부금법을 통해 지방교육청이 일정한 교육재정을 법으로 보장받는 것과 같다. 앞서 지난 19대 국회에도 제출됐던 이 법안은 내용에서 국립대와 사립대를 구분하고 있지 않아 사실상 국·사립대 전반의 재정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법안으로 거론된다.

■ 사학법인 ‘간섭’ 줄이고 ‘공공성’ 높일 사립대학법= 이 때문에 사립대 교수들 역시 국립대학법 제정을 지지하면서 사립대학법 제정을 위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박순준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이사장은 지난달 22일 충남대에서 열린 2차 정책포럼에 참여해 “국공립대와 사립대 공생과 대학경쟁력 강화를 위한 교부금법 제정에 찬성한다”며 “사립대도 사립대학법 제정이 시급하다. 현행 사립학교법은 공공성에 비해 특수성과 자주성이 너무 강조돼 사학법인의 권리만 과보호되고 있다. 또 여건이 크게 다른 초중고등학교와 대학이 하나의 법률에 묶여 있음으로써 법 내용이 복잡하고 동일한 조항을 다르게 해석하는 경우가 발생해 사학법 개정의 어려움으로 작용하고 있다. 주무부처도 교육부와 지방교육청으로 각기 다른만큼 법률적으로도 둘을 구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두 법이 각각 독립적으로 제정되면 거둘 수 있는 효과는 뚜렷하다. 우선 그간 국립대학설치령 수준에 머물러 있던 국립대의 사회적 위상을 법률로 격상시킬 수 있다. 현재 국립대 관련 법률은 국립대학의 회계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 유일하다. 이 법률은 국립대 회계만을 독립적으로 규정한 법률이다. 설치 근거가 법률보다 하위개념인 ‘령’에 머물러 있는데 거꾸로 회계에 관해서는 ‘법률’로 만들어져 있는 모순을 극복할 수 있다. 또 법률을 통해 국립대의 공공성 등을 정확히 적시해 교육부 정책에 좌지우지되는 현재 대학가의 문제를 일소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다.

사립대학법은 법인의 대학 사유화를 제한할 수 있는 근거법률의 성격이 강하다. 사실상 대학을 법인의 ‘사유물’로 파악하는 현재의 국내법 개념에서는 사립대에서 벌어지는 각종 비리와 법인의 독선적인 경영을 개선할 방법이 없다. 앞서 사교련은 수차례 사학법인 평가 등을 강조하며 사립대의 교육 공공성을 강조해온 바 있다. 사립대학법이 제정되면 이 같은 측면에서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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