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진 전략 5개 중 제대로 이행된 것 없어

‘학벌 대신 능력중심사회’ 외쳤지만 슬로건에 그쳐

5월 9일 대통령 선거가 확정됐다.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파면된 가운데 한국 사회는 격랑에 휩쓸릴 전망이다. 무엇보다 위기감이 고조되는 것은 국내 상황보다 국외 상황이 더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이른바 ‘스트롱맨(강한 지도자)’ 시대에 접어든 가운데 지난해 1월 클라우스 슈밥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 회장이 강조한 4차 산업혁명이 코앞에 다가왔다. 이번 대선은 그간의 어려움을 일신하면서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할 수 있는 기회이자 위기다. 그러나 정작 4차 산업혁명을 강조하는 대선주자들의 공약에는 핵심인 직업교육이 빠져있다. 교육정책은 여전히 1995년 5·31 교육개혁 이후를 담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강화돼야 할 고등직업교육은 취업복지정책 수준으로 논의하는 정도다. 이에 본지는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와 함께 전문대학에서 4차 산업혁명의 답을 찾는 공동 기획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

1. 박근혜 정부의 실패 그리고 변죽만 울리는 대선공약
2. 4차 산업혁명의 해답은 고등직업교육 현장에 있다
3. ‘학제개편’ ‘직업교육’ 직업교육 답안지는 나왔다

▲ 지난달 20일 열린 고등직업교육 정책토론회

[한국대학신문 천주연 기자] 용두사미(龍頭蛇尾).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약했다. 박근혜 전 정부에서의 전문대학 정책이 그랬다. 박근혜 전 정부 출범 당시 전문대학가가 거는 기대는 높았다. 역대 정부를 통틀어 박근혜 전 정부만큼 전문대학 육성 정책이 국정과제로 대거 반영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권이 끝난 지금, 손에 받아든 정책 이행 성적표는 초라하다.

박근혜 전 정부는 지난 2013년 5월 말 4대 국정기조와 14개의 국정전략, 140개의 국정과제를 확정지었다. 이 가운데에는 전문대학을 고등직업교육 중심으로 집중 육성, 학벌 아닌 능력중심사회 구현 등 전문대학 중심의 정책들이 포진해 있어 전문대학가의 기대를 모았다.

특히 전문대학을 고등직업교육 중심으로 집중 육성하겠다는 국정과제를 이루기 위해서 △특성화 전문대학 100개교 집중 육성 △전문대학 학위과정 및 수업연한 다양화 △전문대학 ‘산업기술명장대학원’ 설치 △평생직업교육대학 육성 △전문대학생의 해외진출 활성화 등 5가지 주요 추진 전략을 내세웠다.

이 가운데 얼마나 이행됐을까. 가장 기대를 모았던 국정과제 ‘전문대학을 고등직업교육 중심으로 집중 육성’과 추진 전략으로 제시됐던 사업 5가지 가운데 제대로 이행된 것은 단 한 개도 없었다. A전문대학 교수는 “박근혜 전 정부는 처음에는 전문대학에 힘을 크게 실어준 것 같이 보였지만 실질적으로 진행된 것을 보면 담보한 정책이 전혀 없다”고 꼬집었다.

우선 특성화 전문대학 100개교 집중 육성이다. 특성화전문대학육성(SCK)사업을 통해 특정산업과 연계한 대학의 강점 분야 특성화로 체제를 개편하고 산업수요 맞춤형 교육과정 운영 및 취업지원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취지다. 2014년 6월 특성화 전문대학 76개교가 첫 선정됐다. 지난해에는 SCK사업 성과가 미흡한 대학을 탈락시키고 신규 대학을 선정하기 위한 중간평가가 실시됐다. 현재 총 83개교가 특성화 전문대학으로 지정돼 지원을 받고 있다. 당초 올해까지 점진적으로 확대해나가 100개교를 채울 계획이었으나 SCK사업비가 300억원 가량 감액되면서 최근 신규 선정이 무산됐다. 이로써 특성화 전문대학을 100개교 선정, 집중 육성하겠다는 계획은 물 건너가게 됐다.

평생직업교육대학 육성 정책도 논란만 가중됐을 뿐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는 평이다. 교육부는 일부 전문대학을 학령기 학생이 아닌 중도퇴직자 등 성인학습자의 재취업·창업을 위한 미래형 고등직업교육기관의 모델인 평생직업교육대학으로 전환, 육성하고자 했다. SCK사업 Ⅳ유형으로 참여대학을 선정, 매년 50억원씩 지원하면서 대학의 체제 개선을 이끌어왔다. 그 결과 현재 평직대학 10개교에서 총 772개 비학위과정을 운영 중이다. 이수자는 1만7428명에 이른다. 그러나 지난해 교육부가 일반대학에도 이와 성격이 유사하면서도 학위수여가 가능한 평생교육단과대학을 만들면서 평직대학의 위치는 애매해졌다.

수도권 소재 B전문대학 교수는 “평직대학의 경우 처음에 교육부에서 많은 비전이 있을 것처럼 얘기하면서 이슈화시켰다. 그러나 교육부는 이후 일반대학을 중심으로 한 평생교육단과대학을 또 만들더라”며 “대학에서는 정부를 믿고 정원을 30% 이상 줄이면서까지 평직대학 사업에 참여했는데 정책적으로 뒷받침이 안 되고 있다. 평직대학 입장에서는 닭 쫓던 개가 지붕 쳐다보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전문대학생의 해외진출을 활성화하겠다며 추진한 ‘세계로 프로젝트’는 어떤가. 2014년 6월, 14개 사업단을 선정해 5년(2+3) 장기사업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유사·중복사업을 통합한다는 정부 방침에 따라 해당 사업이 교육부에서 고용노동부로 이관되면서 중간평가 없이 시행 2년 만에 사업이 종료됐다. 당시 참여대학들은 “국정과제 중 하나로 시작됐음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약속한 것을 중간에 뒤집는 건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성을 깨뜨리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산업기술명장대학원은 진작 좌절됐다. 전문기술·기능 보유자가 고도의 기술연마를 통해 산업분야 명장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이를 특수대학원으로 설치, 운영할 계획이었지만 일반대학의 반발에 막혔다. 학위 장사로 인한 학력 인플레이션 심화가 주된 반대 근거였다.

전문대학의 최대 숙원사업인 수업연한 다양화도 마찬가지다. 전문대학가에서는 그간 산업기술 고도화와 수요자의 요구에 따라 수업연한은 1~4년으로, 학위과정 또한 비학위과정부터 전문학사, 학사학위과정까지 다양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이를 받아들여 국정과제에 포함시켰다. 당시 19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이었던 박창식 새누리당 의원이 ‘고등교육법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해 국회에 제출했다. 이 개정안에는 현재 2~3년인 전문대학의 수업연한을 1~4년으로 다양화하자는 내용이 포함됐었다. 이 또한 일부 국회의원과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등이 전문대학의 일반대학화 등을 문제 삼아 19대 국회에서 계류하다 자동 폐기됐다.

C전문대학 교수는 “산업기술명장대학원이나 수업연한 다양화와 같은 개혁적인 법안들은 정권 초기에 밀어붙여 통과시켰어야 했는데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면서 추진동력을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 축인 ‘학벌 아닌 능력중심사회 구현’을 위해 도입한 NCS는 오히려 전문대학 교육 현장을 멍들게 했다. 재정지원사업과 연계해 실적위주로 성급하게 밀어붙인 까닭이다. NCS가 갖고 있는 기본적인 철학 자체를 부정한다기보다 도입 방식이 잘못됐다는 게 전문대학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 과정에서 도리어 학생이 교육에서 소외되는 병폐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박근혜 정부가 그리도 갈망하던 능력중심사회가 됐을까. 아직 옮겨 가는 중이라면 능력중심사회에 어느 정도 다가갔을까.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설명이다.

영남지역 D전문대학 교수는 “전문대학 육성 정책만으로는 그런 변화를 거의 못 느낀다. 능력중심사회가 구현되기 위해서는 일자리 창출 등 경제 정책이 뒷받침 돼야 한다. 기본적으로 임금 격차가 심한데 이런 상태에서 능력중심으로 어떻게 가겠나”고 반문했다.

또 다른 E전문대학 교수도 “능력중심사회가 안 됐다. 정유라 사태를 통해 여전히 학벌주의 사회라는 게 명확하게 드러났다. 정유라가 전문대학을 가기 위해 권력을 행사한 게 아니다”며 “정부의 능력중심사회는 단지 슬로건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이어 “한계는 있으나 전문대학 관점에서 보면 또 절망할 것도 아니다”라며 “일부 영역에 학벌, 학력보다는 능력중심으로 채용하려는 움직임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대세로 확산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지속적으로 능력중심사회 구현을 위한 정책은 필요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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