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희 제주한라대학 교수

나는 타고나기를 얄팍한 귀를 가지고 태어난지라, 남들이 ‘좋더라, 맛있더라, 괜찮더라’ 하는 말에 솔깃해 하는 얄팍한 삶을 산다. 유명 맛집은 ‘언젠간 꼭 가야지’ 하며 기약도 없이 메모해 놓고, 관객이 백만명이 넘은 영화는 ‘검증된 영화군’하며 스포일러 글까지 꼼꼼히 챙겨 읽고 영화관으로 나선다. 서점의 베스트셀러 책들은 꼭 챙겨 읽으려 애쓰고, 미니멀라이프가 대세더라 하면 집안에 버릴 것들을 꼽아보며 두리번거리기도 한다. 이렇듯 따라쟁이적 삶을 사는 내가 꼭 해 보고 싶었던 로망 중 하나가 ‘텃밭 가꾸기’였다.

도시에 사는 이들의 옥상이나 베란다에 가꾸는 텃밭 예찬을 들을 때면, 하물며 제주에 사는 내가 안 해볼 수 없지 하며 꽤 상위권의 버킷리스트 항목으로 적어 두었다. 하지만 현실은 집에 선물로 들어오는 화분은 들어오는 족족 몇 달 만에 누렇게 말라 버려졌고, 농가를 거닐 때면 부추와 쪽파, 양파와 대파를 구분 못하는 족속 중 하나였다. 이러한 내가 동네 생활협동조합에서 텃밭을 무료 분양한다는 문자를 받고는 대책도 없이 그 땅 빼앗길세라 부리나케 신청을 하고 말았다.

다섯 평 남짓 하는 땅을 분양받고선 몇 십 평 농사짓는 사람이나 살만큼의 모종을 설레이는 맘으로 사고, ‘고랑은 뭐고, 이랑은 뭐지?’ 하며 땅을 일궜다. 상추를 너무 띄엄띄엄 심어버린 탓에 그 사이에다 고구마 줄기도 심어보고 호박 모종인지 오이 모종인지 열매가 열려보면 알겠지 하며 뒤섞어 심어 버렸다. 이런 어리숙하고 무책임한 흉내쟁이 농부의 텃밭에 과연 열매가 열릴까 반신반의 하는 맘으로 물을 주었다. 아무런 반응이 없기를 일주일, 이주일.... 바짝바짝 긴장하는 마음으로 얼마를 기다렸을까?

먼저 토마토가 열리기 시작하더니 고추, 오이, 가지 등이 차례차례 자태를 드러냈다. 며칠 만에 가보면 쑥쑥 자라있는 그 파릇파릇한 것들이 얼마나 감격스럽고 감사하던지! 아이를 낳고 느낀 생명의 신비함에 견줄만하겠느냐마는 모든 생명에는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이 내재되어 있는 것에 전율하였다. 작은 하나하나의 생명에도 스토리가 있고 우주가 들어있다. 상추와 같이 여린 것들은 옮겨심기를 잘못하여 일찍 시든 것들도 있고 토마토와 같이 잔가지가 많은 것들은 튼실한 열매를 위하여 일찌감치 가지치기를 당한 것들도 있다. 벌레에게 희생당한 구멍 난 호박 이파리들도 꽤 있고 물을 주던 나의 발에 밟혀 맥을 못 추는 치커리도 있다. 그러나 그 중 살아남은 모종들이 열매 맺기까지 바람과 햇살과 물과 토양과 벌레, 그 모든 것이 자기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유난히 뜨거운 여름 더위와 혹독한 가뭄을 견디어 낸 그 작은 열매들에겐 능동적 강인함이 꽉 차 있었다. 그 무엇이 소중하지 않으랴? 그 무엇을 함부로 대할 수 있으랴? 내 텃밭에 꼬물꼬물 올라온 생명이 소중하다면 옆의 텃밭 생명도 조심조심 다뤄야 하리라.

우리는 생명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면 모두 응당하지 하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지만 여름밤 내 귓가에서 성가시게 앵앵 거리는 모기를 찰싹 잡았을 땐 짜릿한 희열감을 느끼고 음식물 수거함 주변 바퀴벌레에겐 질색팔색을 한다. 아이들은 개미잡기 놀이를 하며 개미 다리를 떼내기도 하고 숲에서 잡아온 장수풍뎅이가 페트병 안에서 죽어가기도 한다. 일상에서 모든 생명을 존중한다는 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기는 하나, 우리의 생활이 얼마나 많은 생명의 희생의 바탕 위에 영위되고 있는지는 되새겨볼 일이다. 그 모든 것들의 위대한 탄생과 숭고한 소멸과 겸손한 희생 덕에 우리의 소중한 하루하루가 지속되는 건 아닌지.... 빨갛고 동글동글한 토마토와 파랗고 길쭉한 오이를 품에 안고 돌아오며 한 차원 달라진 세상을 음미해본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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