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전 어느 철학교수는 "머리만 크고 손발은 없는 기형아 쯤으로 폄시 당하고 있다"는 개 탄조의 말로 인문학이 처한 실상을 토로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인문학의 미래는 암담하기 만 했다.

이처럼 고사 직전의 위기에 내몰렸던 인문학이 벤처기업을 통한 활로 모색에 나서고 있다. 도서출판 한길사가 1억원을 출자한 '네트로폴리스'(대표 황인욱)는 지난달 28일 철학, 사회 학, 문학 등 22개 인문학 강좌를 인터넷 상에서 운영하는 네트로폴리탄유니버시티(네튜니·www.netuni.net)를 개설했다.

또한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원장 윤사순) 기계번역연구단이 지난 1월 초에 세운 'AI-트랜 스'와 김영정 서울대 교수(철학)가 대학원생들과 함께 지난해 12월에 법인등록한 '오란디 프'(Orandif) 등도 인문학은 순수해야 한다는 기존 학계의 편견을 깨고 새로운 가능성을 제 시하고 있다.

'AI-트랜스'는 외국어 번역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회사로 2년 안에 영한번역 프로그램을 출 시한다는 계획이며 '오란디프'는 논리학과 게임, 교육과 놀이를 접목한 '에듀테인먼 트'(Edutainment) 개념을 기반으로 한 프로그램 출시를 계획하고 있다.

박경하 중앙대 교수(사학)도 지난달 지구촌 각국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문화전문 포털 사이트인 '잠치'(www.zamchi.com)를 개설, 세계의 문화와 역사를 강의하는 사이버대학으로운영하고 있다.

이밖에 이 근 서울대 교수(경제학) 등 20여명의 교수들이 참여해 만든 인터넷신문 '이슈 투 데이'(www.issuetoday.com), 박노열 계명대 교수가 주축이 된 '커리어리서치 코리아' 등이인문학 벤처기업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렇다면 위기의 인문학은 모든 일을 가능케 할 것만 같은 벤처기업을 통한 활로 모색에 성 공할 수 있을까.

물론 이에 대해서는 기대와 우려의 시선이 교차하는 실정이지만 현재 인문학 벤처기업을 운영하는 당사자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인터넷 상에 문예전문 웹진인 '한반도 문학'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신상성 용인대 교수(국 문)는 "인문학 전공 교수와 학생들간의 논문교류 및 정보교환 수단으로 인터넷은 최상의 조 건을 갖추고 있다"며 "콘텐츠만 확보된다면 사업성도 무궁무진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네튜니의 경우 자체 운영하는 각 강좌의 수강료는 5∼10만원 선인데 그 대부분이 정 원을 채우는 등 원활한 현금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회사측 관계자는 설명한다.

하지만 인문학 벤처가 본격적인 부흥기를 맞기까지는 해결해야 할 난제가 산적해 있다는 게관계자들의 지적이다.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것이 '엔젤'로 불리는 벤처투자가나 벤처캐피탈 등 투자자들이 인 문학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정부 지원도 마찬가지이다.

네튜니의 한 관계자는 "정부나 투자가들 사이에 인문학은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며 "단기수익에 급급해 하거나 투자를 주식투기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전주들의 투 자행태가 인문학 벤처기업의 미래에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가운데 인문학 종사자들 사이에서는 변화하는 경제흐름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 음을 자책하는 목소리가 흘러 나오고 있다. 콘텐츠 및 운영시스템 개발 노력이 미비해 사이 버 시장에 분명히 존재하는 인문학 수요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성론이 대두되는 것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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