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열 안산대학 교수(한국특성화전문대학발전협의회장)

▲ 윤동열 안산대학 교수

올해 추석 명절은 개천절에 이어 한글날까지 겹쳐 연휴 기간이 열흘에 달하는 등 일상의 번잡함으로 고단했을 현대인들에게 길고도 달콤한 휴식을 선물해 주었다. 기쁜 마음으로 즐겼어야 할 추석 명절에도 불편한 뉴스거리는 있었다. 먼저 사상 최대 규모의 여행객이 해외로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추석 당일 하루에만 사상 최대인 586만대의 차량이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등 교통체증이 심각해 운전자들의 마음을 답답하게 했다는 것이다. 귀경길 교통 체증만큼 심란하게 만드는 뉴스거리는 또 있었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에 제출된 자료가 한 언론 지면에 보도됐는데, 30억원 이상 정부 R&D 연구개발 사업에 대한 평가에서 특성화전문대학육성(SCK)사업이 유일하게 '매우 미흡' 평가를 받아 꼴찌를 기록했다는 소식이었다. 이는 SCK사업이 지난 정부에서 전문대학을 위해 신설한 유일한 사업이자, 고등교육기관을 위한 재정지원 사업 중에서 취업률, 입학 충원율뿐만 아니라 정부가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구조조정 실적 등 주요 지표에서 유일하게 성과를 보인 사업이었음을 고려할 때 가히 충격적인 발표였다.

명실상부(名實相符)
먼저, SCK사업을 R&D로 분류 평가한 것은 참으로 부당하다. 모름지기 '이름(名)'과 '실제(實)'가 정확하고 올바르게 부합돼야 한다. '이름'의 의미와 쓰임이 잘못된 경우 결국 그 이름은 생명력을 잃게 되고 내용도 허구화된다. R&D의 사전적 의미는 '신기술을 발견하고 그것을 시장의 요구에 결부시켜 구체적인 제품으로 완성하는 사업' 이다. SCK사업이 대학의 구조 혁신, NCS 교육과정 개편 및 운영, 학생의 질적 수준 향상, 취·창업 지원 등으로 구성돼 있음을 볼 때 '인적 자원의 교육, 훈련, 육성, 역량개발 등'과 관련된 HRD사업으로 분류 평가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런 오류에 의해 작성된 자료가 예산안 심의와 확정권을 지닌 국회의 한 위원회에 제출돼 인용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우려스러운 일이다. 특히 조변석개(朝變夕改)식 재정지원 사업 개편으로 대학가에 큰 혼란을 야기시킨 와중에도 사업의 애초 목적을 초과 달성하고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대학의 중장기 발전 계획을 수립하고 체제 혁신과 학생역량 개발을 통한 경쟁력 강화를 위해 온갖 노력을 하는 전문대학 발전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잘못된 분류와 평가에 의한 결과는 이른 시일 내에 시정돼야 한다. 문재인정부는 젊은이들에게 사회적 사다리를 제공해 주고 평생교육 수요자들에게 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해서 고등직업교육기관인 전문대학에 안정적 재원 확보 및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한다. 예산안 검토를 앞둔 시점에 발표된 이번 자료는 정부의 고등직업교육 정책 기조를 뒤흔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장자는 어부 편에서 (힘 있는)사람은 네 가지 병이 있다고 말한다. 첫째는 멀쩡한 법을 뜯어고쳐 잘난 척하기. 둘째는 혼자 일 처리하기. 셋째는 남의 충고 거부하기. 넷째는 남의 의견 듣겠다고 하고선 제 생각과 같은 것만 듣기이다. 이 네 가지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목표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절차와 방법에 대한 문제이고, 목적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수단에 대한 문제라는 것이다. 정부 기관으로서는 국민의 혈세가 투입된 재정지원 사업을 수시로 평가하고 관리하고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하여 이런 평가를 했겠지만, 평가 대상이나 방법, 수단의 정당성에 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오류에 의한 잘못된 결론은 빠른 시일 내에 바로 잡아줄 것을 요청한다.

반구제기(反求諸己)
대학이 위기라고 한다. 특히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위기는 전문대학이 가장 심각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러한 폭풍전야와 같은 위기 앞에서 남의 탓, 정부의 탓만 하는 우를 반복해서는 안된다. 먼저 스스로 이번 사태의 원인을 되물어보는 반구제기(反求諸己)의 계기가 돼야 한다. 그동안 고등직업교육 발전을 위한 정책 연구는 시의적절하게 진행됐으며 정부와의 정책 협의는 원활하게 해왔는지, 예산안 심의 및 확정권을 지닌 국회에 고등직업교육의 이해를 돕기 위한 노력을 수행해왔는지, 문재인정부가 추진하는 사회적 사다리와 안전망 구축에 부응할 제대로 된 교육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지 등을 자문하고, 이를 통해 전문대학 스스로가 교육의 질을 높이고 경쟁력 확보를 통한 슬기로운 위기 탈출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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