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표 한양여자대학교 교수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지 100여 일이 지났다. 문재인정부의 핵심은 단연 일자리 중심 정책이다. 이와 더불어 고등직업교육정책도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문재인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 및 100대 국정과제’가 발표된 지난 7월 이후 전문대학가에서는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실망스럽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게다가 실패한 것으로 알려진 박근혜정부의 고등직업교육정책보다도 후퇴했다는 혹평도 나오고 있다. 문재인정부의 고등직업교육정책의 방향성은 물론 구체성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고등직업교육의 발전은 대한민국의 미래와 직결된다. 고등직업교육이 탄탄한 뒷받침을 해주지 않는다면 일자리 정책의 선순환 역시 불가능하다. 본지는 일자리 중심 정책의 기반으로 꼽히는 고등직업교육의 발전을 위해 문재인정부의 정책 점검 및 제언을 8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 이전보다 후퇴한 문재인정부의 ‘고등직업교육’ 정책
② 4차 산업혁명 대응 위해 ‘수업연한 다양화’ 필요
③ ‘현장실습체제 강화’로 실무중심 직업교육 다져야
④ 날로 어려워지는 전문대학 ‘재정’…그 해법은?
⑤ ‘기울어진 운동장’ 정부재정지원 배분 방식 개선해야
⑥ 평생교육 ‘따로’ 직업교육 ‘따로’?…컨트롤타워 필요
⑦ 직업교육 활성화? 고등직업교육육성법 제정이 ‘답’
⑧ 전문가 간담회

▲ 이정표 교수

우리나라에서 부처 간, 부서 간 ‘따로 정책’을 추진하는 대표적인 교육정책의 중의 하나가 평생교육과 직업교육이다. 이미 1995년 문민정부가 5.31 교육개혁안을 통해 세계화 및 정보화시대, 무한경쟁시대에 대응해 평생교육과 직업교육의 통합적 접근을 담은 혁신적 안을 제시했지만, 작금의 평생교육과 직업교육 정책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후속 정부들은 미래지향적인 평생교육과 직업교육정책의 철학과 방향을 설정하지 못한 채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정책 후퇴를 보였다.

평생교육과 직업교육의 통합을 기반으로 한 평생직업교육체제 구축이 국가적 책무로 인식된 것은 이미 오래전 이야기이다. 1996년 OECD가 ‘모든 이를 위한 평생학습’(lifelong learning for All) 비전을 천명한 이후 평생교육의 핵심인 직업교육을 모든 국민에게 제공하는 것을 국가의 핵심적 역할로 강조해 왔다. 평생직업교육이 단순히 개인에게 계속 교육기회를 제공하는 차원을 넘어서 21세기 국가 생존 전략 수단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이에 직업교육은 종전 일부 소외된 일부 계층의 일자리 보장에서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한 삶의 보장으로 패러다임이 변화됐다. 세계 각국 정부가 일과 학습의 통합적 실현을 위해 선제적으로 고용노동부와 교육부의 관련 조직을 통합해 평생직업교육 정책 컨트롤타워를 구축한 것은 이런 변화에 대응하고자 함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정책적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여년 전 평생교육과 직업교육의 통합적 청사진을 마련하기 위해 부처 간 통합 논의가 있었다. 그러나 해당 부처의 강한 반발로 인해 대안적으로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라는 국책연구소를 만들어 당시 노동부의 직업훈련, 교육부의 직업교육 기능을 물리적으로 통합했다. 그 결과 연구소를 통해 평생직업교육 정책 연구사업이 발 빠르게 개발 시행되는 성과도 있었지만, 정부 조직 및 직무가 분리되고 있는 상황에서 직업교육과 평생교육 분리에 따른 한계나 문제를 원천적으로 극복하기 어려웠다.

평생교육과 직업교육의 따로 정책의 결과는 혼란스러운 교육서비스 전달체계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이미 문민정부는 지식사회의 도래로 직업교육의 중심축을 고교에서 대학 단계로 전환하고 평생교육을 강조할 것을 천명한 바 있다. 고교단계의 직업교육을 예비·기본교육으로 전환하고 전문대나 기능대의 위상을 강화해 전체 성인인구를 위한 평생직업교육체제로 전환한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전문대학은 지역사회교육기관으로서의 성격을 강화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자격증 취득과정, 학점은행제와 연계한 비(非)학위과정을 개설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같은 전문대학의 평생직업교육 기능 부여는 평생교육 실현과 국가경쟁력을 제고하는 차원에서 고등단계 직업교육기관의 위상 제고와 교육 투자를 강화하고 있는 선진 외국의 개혁 추세를 반영한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부처 간, 부서 간 직업교육, 평생교육, 평생직업능력개발 정책이 분리 시행되는 총체적 난맥상을 보였다. 부처 이기주의나 정책 칸막이를 걷어내지 못한 채 평생교육 따로 직업교육 따로 정책의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직업교육은 이명박 정부에 들어 선취업 후진학이라는 명분으로 직업교육 중심축이 전문대학에서 고교단계로 회귀했다. 정부가 직업교육 정책 에너지를 마이스터고교 및 특성화고교에 투입하면서 전문대학은 정부의 관심과 지원에서 멀어져 갔다. 박근혜 정부도 국정과제의 하나로 전문대학을 고등직업교육의 핵심축으로 제시했지만, 정책의 구체적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평생교육 역시 고용노동부의 평생직업능력개발 정책과 교육부의 평생교육 정책으로 분리 운영됐다. 고용보험금을 담당하는 고용노동부는 산하 기능대학과 민간교육기관을 대상으로 직업교육 중심의 평생교육을 추진함으로써 실질적인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이에 비해 교육부는 평생교육법이 포괄하는 학점 및 학위취득, 취미ㆍ여가 위주의 제한된 평생교육을 관장하고 있다. 교육부가 직업 능력 개발 관련 평생교육 정책을 시도하고 있지만 부처간 사업의 중복 투자 및 예산 부족으로 가시적 성과를 거두기 어려운 상황이다. 또한, 직장인 등 성인학습자에게 고등교육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일반대학에 수백억원을 투입한 평생교육단과대학 사업, 평생교육체제 지원사업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일부 대학의 재학생과 졸업생들이 동 사업 참여에 반발해 사회적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는 교육부가 평생직업교육을 고등교육체제 내에서 어떤 철학과 방향으로 추진해야 하는가에 대한 중장기 계획이나 전략을 갖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 과정에서 평생직업교육의 중심축은 전문대학에서 일반대학으로 전환되고 있다.

▲ 충청대학 특성화사업인 평생직업교육 프로그램으로 개설된 ‘천연조미료를 이용한 저염 장아찌 만들기’ 과정에서 박상혜 강사(왼쪽)가 살명을 하고 있다.

평생교육과 직업교육의 따로 정책 구도 속에서 전문대학은 전문직업인 양성을 설립 목적과 정체성을 갖지 못한 채 직업교육도, 평생교육도 어느 것 하나 정부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 정부가 시험적으로 전문대학을 평생직업교육체제로 재편하기 위해 도입했던 특성화사업 역시 전망이 밝지 않다. 정부가 나서서까지 전문대학 관계자를 만나 사업 신청을 권유하거나 회유했던 사업이다. 입학정원의 대폭적인 감축은 물론 성인학습자 대상 비학위과정 개설 가능성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많은 전문대학이 사업 참여를 꺼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견되었던 바와 같이 사업에 참여한 평생직업교육 대학들은 정부의 따로 정책 속에서 성인 입학자원 미 확보, 예산 부족, 경직된 학사제도, 학력과 학벌의 굴레 속에서 대학생존의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식 정보화 사회를 넘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가 거론되고 있는 상황에서 평생직업교육정책은 여전히 산업화사회의 교육구조에 발목이 잡혀 있다. 일자리 정책을 최우선으로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조차 일자리 창출에만 관심을 가질 뿐, 일자리에 진입할 수 있는 역량 지원 장치로서 평생직업교육체제를 어떻게 구축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현실 진단이나 문제 인식은 보이지 않는다. 구태여 20여년 전 정부가 지향했던 평생직업교육 정책 방향을 재차 거론하는 것은 국가적 수준의 평생직업교육 철학이나 비전, 통합적 접근을 제시하지 못한 지난 정부의 한계를 지적하고 평생직업교육 정책의 컨트롤타워 구축을 위한 정책적 결단을 이번 정부에 기대해 보기 때문이다.

우선, 문재인 정부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평생직업교육을 효과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평생교육(직업능력 개발)과 직업교육 관련 부처 간 기능을 통합해야 한다. 평생직업교육 직무가 부처 간 분리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평생직업교육의 핵심 주체인 고등직업교육기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부처 간 평생직업교육의 중복 투자 및 재정지원 칸막이 형성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만약 부처 간 기능 통합이 어렵다면 평생직업교육 관련 직무 및 기능을 통합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별도의 정부 조직을 구상하는 것도 대안이 될 것이다. 스웨덴이 2009년에 들어 고등직업교육 정책을 전담 수행하는 고등직업교육청(The Swedish National Agency for Higher Vocational Education)을 설치해 고등직업교육 정책개발 및 운영, 평가인증 업무를 수행해 평생직업교육을 활성화해 나가고 있는 것은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둘째, 평생교육과 직업교육을 통합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교육부 내 부서 간 소통 구조 및 기능 통합이 필요하다. 교육부 내에서조차 전문대학 정책 따로, 평생교육 정책 따로, 직업교육 정책이 따로 분리되는 상황에서는 평생직업교육 정책 설계나 효율적인 운영을 기대하기 어렵다. 교육부는 전문대학과 일반대학 간 역할 분담을 명확히 하고 전문대학이 고등직업교육기관으로서 평생직업교육 기능을 핵심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기능을 부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전문대학의 평생직업교육 기능 강화를 위한 부서 간 업무 통합 및 연계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대부분의 외국 정부가 고등교육 개혁을 통해 일반대학은 연구 개발 및 학술 중심의 인재 양성을, 전문대학은 평생직업교육의 기능을 수행하도록 기능을 분담하고 전문대학의 사회적 수요 및 위상 제고를 위해 전문대학의 수업연한 및 학위구조를 일반대학과 대등한 방식으로 설계 운영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셋째, 정부는 고등교육단계에서 평생직업교육이 가능하도록 학사제도 개편은 물론 예산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정규과정과 비정규과정, 학위과정과 비학위과정이 적자와 서자라는 신분제도처럼 분리 운영되는 경직된 고등교육체제에서는 성인 대상의 평생직업교육을 활성화하기 어렵다. 대부분 국가에서 고등직업교육기관을 평생직업교육 체제로 구축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유연하고 개방적인 학사제도를 구축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와 함께 사립대학에서 평생직업교육을 책임지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평생직업교육의 공공성 및 국가 책무성을 감안할 때 내실있고 다양한 평생직업교육 실현을 위해서는 국가의 적극적 투자가 필요하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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