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교수·학생·직원 모두 ‘재정지원’ 요구

정부의 재정지원은 국가장학금에 쏠려…대학에서는 경상비 부족에 허덕
수년간 이어진 등록금 동결로 재정난 악화, 학령인구 감소로 재정난 심해질 듯
“국가경쟁력 살리려면 대학경쟁력 높여야”

[한국대학신문 황정일·구무서·김정현·주현지 기자] 2018년이 시작되며 희망에 부푼 새해를 맞이해야 할 시기지만 대학가의 표정은 밝지만은 않다. 갈수록 악화되는 재정난에 올해부터 입학금이 폐지되고 입학전형료가 인하되면서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학 구성원들은 새해 소망으로 '대학의 재정지원'을 한 목소리로 외쳤다.

대학가의 재정난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등록금이 약 10년째 동결되면서 대학을 운영하는 총장, 보직 교수 중심의 대학본부에서는 오래전부터 재정지원을 요구해 왔다. 계속되는 재정난에 교육의 질이 위협을 받자 최근에는 일반 교수, 대학 직원, 학생들까지도 재정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윤지관 한국대학학회장(덕성여대 교수)은 새해 소망으로 “대학정책을 바로 세우는 것을 원한다. 결정적인 건 예산이다. 절대적인 예산 증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입학금 협의체에서 입학금 폐지를 주장했던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이승준 공동의장(고려대 총학생회장)도 “고등교육에 대한 재정지원 확충”을 소망한다고 밝혔다. 시민단체인 참여연대 안진걸 사무총장도 “질 좋은 교육을 위해서는 대학들이 풍부한 재정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충분한 예산 확보를 위해 고등교육 기관에 대한 지원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전했다.

▲ 우리나라 실질고등교육예산 규모(자료 = 한국대학교육협의회)

■ ‘파이’ 작은 고등교육재정, 그나마도 국가장학금에 쏠려 = 대학가에서 새해 소망으로 재정지원을 꼽는 이유는 국내 고등교육 예산은 규모 자체가 적으면서도 그 중 학자금 지원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실질적으로 대학에 지원되는 비용이 적기 때문이다.

지난달 19일 국회교육희망포럼에서 발표된 ‘대학 경쟁력과 공공성 강화를 위한 재정지원 확대 방안’ 자료를 보면 지난해 국내 고등교육 예산은 9조8862억원으로 2010년 5조548억원에 비해 약 4조원 늘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 국가장학금 예산이 4209억원에서 3조9380억원으로 확대되면서 대학에 직접 지원되는 예산 규모는 오히려 줄었다. 2010년 GDP 대비 국가장학금 예산을 제외한 고등교육예산은 0.37%인데 비해 2017년은 0.35%로 하락했다.

▲ 교육부의 고등교육 재정지원 현황(자료 = 한국대학교육협의회)

2012년부터 본격 시행된 국가장학금이 작은 ‘파이’ 속에서 일반지원비를 깎아먹는 형국이다. 2012년부터 5년간 학자금지원사업 재정은 △1조9740억원 △2조8590억원 △3조5497억원 △3조8052억원 △3조8778억원 등으로 해마다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일반지원사업 재정은 △1조6187억원 △1조7813억원 △1조9855억원 △2조2584억원 △2조2585억원에 그쳤다.

국가의 예산으로 운영되는 국립대는 이러한 지원구조 변화의 직격탄을 맞았다. 국립대 운영에 지원되는 예산은 2013년부터 최근 5년간 △2조3506억원 △2조3646억원 △2조3574억원 △2조2826억원 △2조3539억원 수준에 머물렀다. 같은 기간 전체 고등교육예산 대비 국립대 운영 지원비 비중은 42.0%에서 25.4%까지 급락했다.

▲ 국립대 운영지원 규모(자료 =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액 국고지원 돼야 할 대학운영의 필수 경상비인 강사료·공공요금·시설용역비 등의 평균 35~40%를 등록금에서 부담하는 실정이다.

사립대 역시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2016회계연도 기준 사립대학의 국고보조금은 교비회계 총액의 15%지만 국가장학금이 차지하는 10.9%를 제외하면 실질 국고보조금은 4.1%에 불과하다. 반면 우리나라처럼 사립대 비중이 높은 일본도 사립대 재원구조 중 국가보조금 비율이 9%다. 우리나라의 2배를 넘는 수치다. 김상수 사립대노조위원장(영남대)은 “정부가 반값등록금 정책을 시행한다면 대학에 대한 재정지원을 병행해야 하는데 그런 것 없이 통제만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10년간 진행돼왔던 특수목적사업도 대학의 재정난을 가중시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수목적사업은 일반지원사업과 달리 정해진 목적에 의해서만 사업비를 사용할 수 있어 정작 대학에서 필요한 경상비로 사용하는 데 제약이 많다. 홍성학 전국교수노조 위원장은 “기획재정부에서 예산을 편성할 때 특수목적사업 등을 만들어내야 재정지원을 하는 경향이 있는데 기존의 사고를 바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대학가 재정난의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국가장학금Ⅱ유형에 등록금 동결·인하 항목이 포함되면서 대학들은 등록금이 사실상 동결됐고 같은 기간 인건비는 해마다 오르면서 관리운영이나 연구학생경비를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2013년 사립대 교비회계 운영지출에서 연구학생경비는 3조5361억6600만원이었지만 2015년에는 3조4603억2900만원으로 줄었다.

■ 대학의 발전이 국가의 발전, 선진국 진입하려면 고등교육 지원해야 = 경제규모 세계 10위권의 강대국이면서도 선진국 문턱을 넘지 못한 우리나라가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가 절실하다.

▲ 한국 고등교육의 국제경쟁력 순위(자료 =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세계적인 통계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과 대학교육의 경쟁력이 궤를 같이하고 있다. ‘IMD 교육경쟁력 평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은 2011년 22위에서 2017년 29위로 하락했는데 같은 기간 대학교육경쟁력이 39위에서 53위로 떨어졌다. 'WEF 국가경쟁력 평가‘에서도 2011년 24위였던 국가경쟁력이 2017년 26위로 후퇴했으며 ’고등교육 및 훈련‘ 지표는 17위에서 25위까지 밀려났다.

김민희 대구대 교수(교직과)는 “대학의 연구 결과가 실용특허 혹은 자산, 기술 등으로 발전하기 때문에 국가경쟁력을 책정하는 지표에 대학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세계 각국은 고등교육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OECD Education at a Glance(2015)를 보면 미국은 1인당 고등교육 투자비용이 2만6562달러, 영국은 2만4338달러, 일본은 1만6872달러를 투자하는 데 비해 우리나라는 9866달러에 그쳤다. OECD 평균 1만5028달러의 절반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고등교육을 민간에게 맡기는 관행이 여전하다. 같은 자료를 참고하면 OECD 주요국 GDP 대비 공교육비 비율에서 우리나라는 정부부담이 0.8%, 민간부담이 1.5%다. 반면 OECD 평균치는 정부부담이 1.2%, 민간부담이 0.4%로 정부의 부담이 훨씬 높다.

▲ 교육단계별 학생 1인당 공교육비 및 OECD 평균대비 비율(자료 =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초중등교육과 비교하면 이러한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2014년 기준 학생 1인당 공교육비는 OECD의 경우 초등교육 8733달러, 중등교육 1만106달러인데 우리나라는 각각 9565달러, 1만316달러로 오히려 OECD 평균을 상회한다.

반상진 전북대 교수(교육학)는 “구조적으로 초중등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 의해 재원을 확보하는데 대학은 그런 제도가 없다보니 예산이 그때그때 늘었다 줄었다 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결국 안정적으로 재정을 확보하려면 초중등처럼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교부금법은 법에 의해 내국세의 일정 부분을 사용하는 것으로, 이 법이 제정되면 외부요인에 흔들리지 않고 일정 부분의 재정을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대학가는 2018년 새해에는 반드시 고등교육교부금법이 만들어지길 기원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 "OECD 평균 수준으로 GDP대비 정부 지출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고 당시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었던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도 ”대학을 합리적으로 지원하기 위해서 필요한 게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이다. 당연히 추진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관건은 국회다. 국회에서 법을 통과시켜야 실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간 대학가에서는 우리나라 경제규모에 맞게 OECD 평균에 해당하는 교부금 규모를 요구해왔지만 여야 간 입장차로 번번이 무산됐다. 지난해에도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0월에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안을 대표발의했으나 상임위 문턱도 넘지 못했다.

연말연시를 맞아 대학가는 재정지원 확대를 위해 발 벗고 행동에 나섰다.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사총협)에서는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총장과 보직교수들을 시작으로 일반교수, 학생, 시민들로 서명 대상을 확대할 계획이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역시 국회와 스킨십을 늘리며 법 제정이 필요함을 피력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19일 열린 세미나를 국회 교육희망포럼과 총 10회 공동으로 열어 재정지원 확대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장호성 대교협회장은 “대학의 재정상황 문제가 심각하다. 일단 빨리 제정을 하고 좋은 방법이 생기면 점차 고쳐나가는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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