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재 동서울대학교 기획처장

끓는 물의 힘으로 시작된 1차 산업혁명을 시작으로, 소품종 다량 생산의 2차 산업혁명을 거쳐, 현생인류의 기술적인 번영은 최근의 IT를 활용한 3차 산업혁명에 다다랐다. 필자가 아직 어렸던 시절에는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들이 너무나 당연히 받아들여지고 공유되고 있다.

하물며 지금은 4차 산업혁명이 태동하고 있다. 아니, 이미 구체적인 모습으로 우리와 만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대표주자 격인 O2O 기반의 다양한 공유 경제는 벌써 우리가 더욱 효율적이고 안락한 삶을 누리게 한다. 물론 이러한 성과의 뒷면에는 언제나 묵묵히 땀 흘리며 새로운 기술을 더 널리 보급하기 위한 많은 이들의 숨은 노력이 있다.

현재 우리나라 기술교육기관은 크게 특성화, 마이스터 고등학교, 기능대학(폴리텍대학), 산업대학, 산업기술대학 그리고 전문대학으로 나눌 수 있다.

얼핏 다 비슷해 보이는 상기 교육기관은 사실 고유의 교육 목표를 가지고 운영되고 있다. 각각의 교육기관의 역할 정의는 특성화고등학교: 직업전문 인재양성, 마이스터 고등학교: 기술명장 양성(도제식 교육), 폴리텍대학: 고급기능인력 양성, 산업대학: 직업기술인력 양성, 산업기술대학: 이론과 현장 체험을 바탕으로 한 고급기술인력 양성, 전문대학: 중견기술인 양성으로 정리해볼 수 있다.

안배(按排)는 완벽하다. 언제나처럼 어려운 건 실천(實踐)이다.

아쉽게도 4차 산업혁명의 변화를 준비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여야 하는 상기 교육기관들은 때아닌 구조개혁 평가로 몸살을 앓고 있다. 혹자는 전문 기술 교육기관 정체성의 상실이라고까지 표현한다. 개혁이 필요하단다.

이런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식 행정 조치는 다양한 원인에서 기인하고 있다. 그중 가장 큰 문제는 미래 변화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일관성 없는 교육정책이다.

현재 한쪽에서는 인원감축, 평생교육대학으로의 전환, 폐교 등의 행정조치를 골자로 하는 대학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그런데 또 한쪽(한국폴리텍대학)에서는 어떤 이유에선지 캠퍼스 신설을 감행하고 있다. 정확한 방향을 바라보지 못한 채 막무가내로 진행되는 외적인 개혁은 누구의 삶도 풍요롭게 할 수 없다.

최근 교육관계자들은 전문대학의 정체성이 없다,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전문대학은 확고하고 분명한 “중견기술인 양성”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왜 그런 말들이 나올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우리가 정체성을 주변 교육기관들로부터 지키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각각의 교육기관들은 최근 급변하는 환경변화(입학 자원의 감소)로부터 생존하기 위해 본연의 교육목표를 변경하면서 다른 교육기관과의 경계를 허물었다. 이때 우리의 것을 지키기 위해 한목소리로 외치고 호소해야 했다.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기술교육기관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일방의 지시에 의해 일거에 개혁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이는 대한민국의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책임지고 있는 모든 고등교육기관 및 교육부·노동부가 대국적인 측면에서 함께 모여 고민해야 할 문제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까지 제대로 된 토론 채널도 하나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기술교육의 일선에 서 있는 한 사람으로서 실로 깊은 안타까움을 느낀다. 조속히 유관 대화 채널이 신설되어 진정한 대한민국의 기술교육 발전을 이끌 수 있는 성숙한 분위기가 자리잡길 바란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상황이다. 더 이상 망설이고 있을 시간 따윈 없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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