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0주년 그때 그리고 지금] 다사다난했던 대학 총학생회의 변천사
[창간 30주년 그때 그리고 지금] 다사다난했던 대학 총학생회의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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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 학생회관 앞에서 총학생회 선거 관계자가 투표를 호소하고 있는 모습. (사진= 한국대학신문 DB)

[한국대학신문 이지희 기자] 늘 대학의 사회·정치 이슈의 핵심에 있었던 총학생회는 30년이 지난 지금 존폐의 위기에 놓여 있다.

민주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던 1980년대 대학 총학생회는 학교 밖의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1988년 서울대 총학생회는 당시 노재봉 서울대 교수를 대통령 정치담당 특보 임명과 관련해 “광주학살 망언자”로 지칭하며 거세게 반발했고, 연세대 총학생회는 올림픽과 관련한 NBC의 편파보도를 비난하며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또 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소속 대학생들은 '6·10 판문점 남북학생회담'을 제안하면서 국내 사회문제뿐 아니라 대외 정치 활동으로도 반경을 넓혔다. 이처럼 당시 총학생회는 학내 여론의 주도층은 물론 정치적인 대안 세력으로 떠올랐다.

실제 ‘운동권’으로 불리던 1980년대 총학생회 출신들은 현실 정치에서 활동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86세대(80년대 학번·60년대 출생) 소장파 인물들이 대표적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출신의 임종석 비서실장, 한병도 정무비서관 등이 청와대 핵심인물로 자리하고 있다.

이처럼 화려했던 총학생회는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점차 그 규모와 영향력이 축소되는 분위기다. 학내 문제는 외면한 채 정치적 투쟁을 일삼는다는 운동권에 대한 냉소, 금융 위기 이후 심화된 취업난 등이 주요인으로 꼽힌다.

수년 전부터 많은 대학의 총학생회 선거는 저조한 투표율을 보이거나 입후보자가 없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운영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올해만 해도 덕성여대·서울여대·연세대·한국외대·한양대 등이 비대위 체제로 운영 중이다.

이를 두고 학생들의 무관심, 학내 민주주의 부재 등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소셜네트워크를 통한 모임이나 조직과 대표 없는 사회운동 같은 새로운 형태의 집단행동이 총학생회의 기능을 대신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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