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영진 대구대 교수회 의장

문재인 대통령의 100대 공약중 하나요, 고등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주요 개혁 과제인 공영형 사립대 육성 정책이 기재부의 예산 전액 삭감으로 무산 위기에 처하게 됐다. 예산 삭감의 당사자가 야당도 아닌 문재인 정부라는 점에서 결국 문재인 정부는 스스로가 약속한 공약을 팽개치고, 교육개혁을 염원하는 국민들의 열망을 짓밟은 꼴이 되고 말았다.

과연 공영형 사립대 육성은 한 푼도 쓰기 아까운 무가치한 사업인가? 단연코 그 반대이다.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대부분을 맡고 있는 사학의 설립 주체는 민간인이지만 그들이 수행하는 교육사업은 엄연히 공공재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정부는 시종일관 이를 사학 경영자에게 일임한 채 방치해왔다. 그러는 동안 많은 사학들이 경쟁적으로 소위 ‘대학 장사’에 나섰고, 캠퍼스를 비리와 횡포로 얼룩지게 만들었다. 이제 학령인구 감소로 더 이상 땅짚고 헤엄치기식 대학 장사가 불가능해지자 속으로 곪은 대학들이 급속히 부실화돼 존폐의 위기에 내몰리면서 커다란 사회문제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 모든 문제는 결국 정부가 공공재인 교육에 대한 책임을 방기해온 결과이다.

공영형 사립대 육성 정책은 바로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바로잡기 위한 것으로, 그 기본 취지는 정부의 고등교육에 대한 책임성을 제고하고, 교육의 공공성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재정이 어려운 사학에 정부 지원을 확대하되, 이를 통해 비리방지 제도 및 민주적 거버넌스를 확보하고, 교육의 질을 높이며, 지역사회 기여를 촉진하는 등 대학을 대학답게 바로 세우자는 것이다. 나아가 공영형 사립대는 상호간, 또는 국립대와의 네트워크를 통해 대학의 서열화를 완화함으로써 살인적인 입시경쟁에 몸살을 앓는 중등교육까지 정상화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개혁을 기치로 내건 정부가 왜 이렇듯 중요한 교육개혁 정책을 시도조차 해보지도 않으려는 것일까? 이는 정부가 겉으로는 개혁을 표방하면서도 실제로는 교육에 대한 뿌리 깊은 오해와 무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 핵심은 봉건적 관습과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결합된 천민자본주의적 사유(私有)의 개념이다.

첫째, 사립대학은 ‘개인의 것’이니 정부가 개입할 필요가 없다거나 개입하면 안된다는 주장은 선진적 자본주의 질서와 전혀 무관한, 지극히 퇴행적인 의식에 불과하다.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르는 하나의 기준은 사적 영역이 얼마나 공공화돼 있느냐이다. 이를 사적 영역에 대한 간섭 내지는 침해로 착각하면 안된다. 사적 영역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도록 공적인 부조와 감시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가정에까지 확장된 공공성의 영역이 유독 사학에는 미치지 못하는 기이한 현상을 우리는 보고 있다. 엄연히 공공의 것인 교육을 사학의 ‘주인’이라 자처하는 무리들이 자기 개인 소유물인 양 주무르며 갖은 비리와 일탈을 자행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기업에서조차 찾아볼 수 없는 봉건적 주종 관계가 강요되는 곳이 사학이다. 결국 ‘사학의 자유’를 부르짖는 것은 인권을 짓밟고 범죄를 저지를 자유를 요구하는 지배자의 타락한 논리일 뿐이다.

둘째, 경쟁력 없는 대학은 세금으로 연명해주기보다는 퇴출시켜야 한다는 논리는 ‘경쟁력’의 의미에 대한 성찰을 결한 무지한 주장이다. 과연 이들이 주장하는 ‘경쟁력’이란 무엇인가? 그동안 우리나라 대학들은 노력보다는 지대추구행위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해왔다. 지방이 아닌 수도권에 자리잡아서, 잘 가르쳐서가 아니라 우수한 학생들이 사회 요직을 점해준 덕분에 ‘좋은 대학’이 되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대학 서열의 고착화로 다시 우수 학생들을 끌어모았다.

결국 대학경쟁력의 논리는 지방 붕괴와 수도권 일극화, 대학서열 고착화와 살인적 입시경쟁을 정당화하는 사이비 논리에 다름 아니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늦었지만 정부와 여당은 국회 예산 심의과정에서 공영형 사립대 예산을 부활시켜야 한다. 대통령이 약속한 중요사업에 돈은 단 한 푼도 들이지 않는다면 이 정부의 개혁의지는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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