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가르친다는 것
[대학로]가르친다는 것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차갑부 명지전문대학 교수
차갑부 교수
차갑부 교수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 1984년 9월이니까 어언 34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돌이켜보면, 그날은 악몽의 날이었다. 석사를 마친 직후에 대학생들을 가르친다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설레기도 했지만, 마음 한구석엔 두려움도 자리 잡고 있었다. 강의실 문 앞에서 심호흡하고 문을 여니 학생들의 수많은 시선이 나를 문밖으로 밀어내고 말았다. 내가 맡은 과목이 사범대학의 교직 과목이라서 두 개 학과가 합반한 관계로 100여 명, 그러니까 200여 개의 ‘레이저 빔’을 맞은 것이다. 마음을 가다듬고 초조하지만 느긋한 척하며 교단에 섰다. 학생들을 바라보는 것이 두려워 그들의 얼굴을 일일이 확인하지 못하고 출석 호명을 할 때 학생들을 쳐다보지 않은 것이다. 호명할 때는 반드시 학생과 눈을 맞춰야 한다. 상대방을 쳐다보지 않고 이름을 부른다면 단순히 출결을 확인하는 것 이외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 눈을 맞춘다는 것은 관심의 표현이다. 출석부에 눈을 두면서 이름을 부르는 교수의 수업에 학생들은 집중할 리 없다. 요즘 학생들은 눈치가 빠르다. 눈치로 치자면 견일지십(見一知十)이다. 하나 보면 열을 안다. ‘척하면 아는’ 수준이다. 천(?)이 떨어지고 말았다. 첫 시간을 위해 수업 내용을 강의 노트에 정리하고 그것을 암기했는데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으니 강사로서 이보다 더 난처한 일이 있을까?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면서 첫 시간이란 명분으로 강의실을 나왔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을 천직으로 알고 사범대학에 입학했건만 초짜 강사의 첫 시간은 그렇게 처참하게 끝났다. 지금 생각하면 그날 나는 몇 가지 오류를 범했다.

첫째는 학생들 앞에서 언 것이다. ‘얼었다’는 것은 자신감을 잃었다는 뜻이다. 자신감을 상실하면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 일본의 고승인 홍천 대사(洪川大師)는 깐깐한 제자가 보는 앞에서 붓으로 글을 쓰다가 ‘얼어서’ 잘 써지지 않아 제자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85번째로 쓴 글이 제자로부터 합격점을 받았다고 한다. 아무리 전문가라고 하더라도 자신감을 상실하면 성사되는 일이 없다. 나 역시 학생들 앞에서 ‘얼어서’ 자신감을 상실한 것이다.

둘째는 출석 호명을 할 때 학생들을 쳐다보지 않은 것이다. 호명할 때는 반드시 학생과 눈을 맞춰야 한다. 

셋째는 수업 준비에 문제가 있었다. 수업 준비를 철저히 한답시고 내용을 암기했던 것이 화(禍)를 부른 것이다. 암기했을 때 어느 한 부분이 기억나지 않으면 그 후의 모든 내용이 기억에서 사라진다. 준비는 철저히 해야 하지만, 내용을 암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암기보다는 전체적인 내용을 항목화한 다음 항목별로 다루어야 할 내용을 좀 더 구체화해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세월이 가고 경력이 쌓이다 보니 이제는 가르치는 것이 두렵지 않다. 오히려 학생들 앞에 서면 기운이 난다. 힘이 솟는다. 젊었을 때 서양의 저명한 학자의 이론을 정리해 그것을 효율적으로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소위 우편배달부식 수업을 하는 것이 유능한 교수라고 생각했으나, 지금은 내 나름대로 내용을 체계화해 수업하니까 학생들 앞에 서는 것이 즐겁기만 하다.

초짜 강사 시절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학생들과 심리적 거리를 좁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세월을 통해 배웠다.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을 학생 개인의 탓으로 돌리고 그 학생을 비난한 적도 있었지만,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 교수 자신의 탓이라는 것도 깨닫게 됐다. 가르침에 관한 한 교수는 ‘내 탓이오’라는 말에 익숙해야 한다.

교수법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나는 지난날의 시행착오에 대해 많은 성찰을 했다. 소는 잃었지만 외양간은 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교수법 관련 서적의 집필과 교수법 특강 강사 및 컨설턴트로서 ‘교수를 가르치는 교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세월이 나에게 준 가치 있는 열매다.

<한국대학신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