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해 충청대학교 기획처장

김상해 충청대학교 기획처장
김상해 충청대학교 기획처장

시카고대학의 Richard H. 탈러는 넛지이론(Nudge theory)으로 2017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넛지이론은 행동경제학이라 할 수 있으며 넛지란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란 뜻이다. 타인의 의사결정을 강요하거나, 금지하는 것 없이 선택의 조건을 변화시킴으로써 자연스럽게 행동변화를 유도하는 자유주의적 개입을 말한다. 남성화장실 변기에 파리를 그려 넣어 청결을 유도하는 것이나 계단을 오를 때마다 칼로리 소모와 다이어트 효과를 적어 놓는 것이 예다.

새로운 고등직업교육 모델
교육부가 지난해 12월 22일 미래 산업 수요와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전문대학 혁신방안'을 발표했다. 전문대학에서 전문학사뿐만 아니라 학사·석사까지 취득, 고숙련 기술인재로 성장할 수 있는 '마이스터대학'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전문대학의 일부 학과·계열이나 해당 대학 전체가 마이스터대학 모델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직업계고·전문대학 학생들이 일과 학습을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고려, 새롭게 고안된 모델이다.

학벌만능 풍조와 직업교육의 차별
현재 직업계고와 전문대학은 개인의 적성과 재능을 살리기 위해 진학하기보다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이 가는 교육기관임을 부정할 수 없다. 반면 일반고나 특목고의 서열표준은 인서울 대학과 소위 SKY로 분류되는 명문대학의 입학자 수다. 우리 사회에서 학벌은 곧 성공의 증표다. 직업계고나 전문대학을 졸업하면 루저이고, 인서울 대학을 졸업하면 그것 자체로 성공으로 통용된다. 이러한 학벌만능 풍조는 가장 편리한 능력평가의 잣대이며 연고주의와 긴밀하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우리나라의 대학입시와 대학교육은 대표적인 고비용 저효율의 표상이다. 초중고 교육은 진학위주의 주입식 암기와 줄 세우기가 전부다. 학생의 꿈과 끼를 찾고 키워주기보다는 서열화를 위한 변별력을 강조한다. 그러다 보니 고난도 현학수준으로 진화돼 대다수 학생들은 흥미를 잃고, 학부모들은 천문학적 사교육비용으로 신음하고 있다. 최근 불거진 학종 문제는 불공정과 부정의의 어두운 그림자도 숨어 있다.

그렇게 힘들게 들어간 뒤 대학을 다니는 과정에도 엄청난 학비와 부대비용이 투입된다. 지방 학생이 서울 수도권 대학을 다닐 경우 생활비 또한 등록금 이상으로 들어간다. 말 그대로 이 시대 학생들은 부모의 등골 브레이커다. 높은 한국의 교육열은 대학진학률(약 70%)로 나타난다. 이는 대학 교육이 거의 무상인 독일의 약 30%, 프랑스와 여타 유럽 선진국의 40%대보다 꽤 높은 수치다. 대학등록금이 낮은 국가에서 오히려 대학진학률이 낮은 것은 학력 차별이 적기 때문으로 분석되는데, 이 말을 거꾸로 적용하면 한국에서는 ‘차별받지 않기 위해’ 대학에 간다는 뜻이 된다.

고질적 사회해악들과 넛지 마이스터대학
그간 역대 정부들은 저출산, 고령화, 노인빈곤, 수도권 과밀과 부동산 해결을 위해 수백조 이상의 재정과 강력한 규제 중심의 정책으로 관여했다. 그러나 지금 어떠한가. 해결은커녕 문제는 더욱 악화되고 나라의 미래까지도 걱정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필자는 질 좋은 국가책임의 직업교육정책이 어떤 정권도 해결하지 못한 망국병인 가계부채, 저출산, 고령화, 노인빈곤, 수도권 과밀, 부동산 투기 등을 해결할 수 있는 넛지로 작용할 수 있다고 믿는다. 충실하고 미래지향적인 내용을 담았던 '직업교육진흥법안'은 매년 2조원 정도의 직업교육진흥기금을 확보해 국가책임의 직업교육을 진흥시키고자 했던 시도였다. 국가가 직업교육제도의 질과 수준을 고도화시키면서 우량 중소·중견기업으로 사회진출을 돕는다면, 학생들은 재능과 적성을 살리고 학부모는 막대한 가계부담을 줄일 수 있다.

입직연령 또한 현재 28세(유럽의 22세)에서 많이 앞당겨질 수 있다. 빠른 사회진출은 결혼확률을 높이고, 저출산 문제를 완화시키며, 학부모들의 노후안정도 기대할 수 있다. 결혼과 출산은 고령화와 직결됨으로 그 효과가 있고, 각종 연금문제도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각 지역마다 프랑스 에콜41과 같은 명문 마이스터대학을 설치, 운영한다면 가계출혈까지 감행하는 비상식적 인서울 블랙홀도 완화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망국적인 서울 수도권의 과밀과 부동산 투기문제도 분명 진정될 것이다. 물론 지역도 지역인재 유출을 막고 지역특성에 맞는 균형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넛지의 파급효과를 기대하며
현재의 교육과 대학 진학체제는 실로 서로 연결된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다. 그 파급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기에 모두가 불행하고 희생양이 되는 구도다. 그러나 국가책임의 질 좋은 직업교육체제가 완성되면 여러 가지 긍정효과들이 나타날 것이다. 멀리 초중고 교육도 재능과 적성위주의 직업교육으로 전환되고, 천문학적인 사교육 비용을 극적으로 줄일 수 있다. 우리 사회의 학벌 해체와 직업교육에 대한 차별 관행을 시정하는 계기도 될 수 있다. 대학입시 또한 마이스터대학이 확실한 직업교육으로 학생과 기업에 긍정적 신뢰를 심어준다면, 대한민국 사회와 경제에 엄청난 좋은 영향이 있을 것이다.

부디 질 좋은 국가책임의 직업교육모델인 마이스터대학이 넛지로 작용해 여러 우리 사회의 해악들이 스스로(자유주의적으로) 해결되길 간절히 고대한다. 이러기 위해 이 정책은 반드시 전 정부적 국가대정책(state mega policy)으로 추진돼야 하며, 기존 '직업교육진흥법안'에 지방정부의 재정역할도 보완·법제화됨으로써 필수 재원확보가 필요하다. 어려운 시기, 정부가 국가책임 직업교육방안을 발표한 것은 매우 다행스런 일이다. 큰 박수를 보낸다.

<한국대학신문>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