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 정성민 기자] 대학가가 코로나19로 유례없는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란 말이 있다. 대학가가 코로나19를 계기로 미래교육을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것. 그렇다면 미래교육을 준비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규제 철폐, 재정 건전성(자율화) 실현, 대학기본역량진단 재설계가 최우선 과제로 꼽힌다. 이에 본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는 공동기획을 통해 대학가의 미래교육 준비를 위한 과제와 대안을 모색한다.

<글 싣는 순서>

⓵“규제 공화국 오명, 규제 철폐 없이 미래교육은 ‘그림의 떡’”
⓶“대학 재정 건전성(자율화) 실현이 미래교육 혁신의 원동력”
⓷“대학기본역량진단, 구시대 프레임 벗어나 미래교육 기반으로 재설계”

“한국 같은 규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시장에서의 규제도 없다. 애리조나주립대(Arizona State University·ASU)는 온라인으로 200개 과정을 제공한다. 모든 과정은 온라인으로 수강할 수 있다. 교실 수업과 환경이 동일하다. 온라인 수강 학생들만 지원하는 학생지원센터가 존재한다. 온라인 수업만 듣고, 졸업식만 참석하는 것도 가능하다. 또한 오프라인 수업을 들으면서, 온라인 수업을 들을 수 있다. 교육 체계에 유연성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미누 아이프(Minu Ipe) ASU 총장고문·정책총괄은 본지가 2월 6일 ‘학습 소비자 중심의 글로벌 교육혁신’을 주제로 개최한 ‘2020 신년 UCN CONFERENCE(콘퍼런스)’에서 한 대학 총장이 “미국 정부의 온라인 강의 규제는 어떤 것이 있나”라고 묻자 이처럼 답했다. ASU는 혁신 벤치마킹 1순위,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대학 1위’, ‘유학생들이 선택한 국공립대학 1위’,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학 1%’ 등 수식어가 화려하다. ASU의 성공 비결은 정부의 규제 없이 온라인 기반으로 혁신을 추진한 것이다.

미국, 규제 없으니 혁신 ‘드라이브’ vs 한국, 규제에 혁신 ‘발목’ = ASU의 대표 혁신사례로 GFA(Global Freshman Academy)와 Adaptive Learning(맞춤형 학습)이 꼽힌다. GFA는 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온라인 공개 수업) 기반의 1학년 기초과정 수업이다. ASU 1학년 학생들은 GFA를 통해 전 세계 어디서나 온라인으로 학점을 취득할 수 있다. Adaptive Learning은 ‘적합한 수업(right lesson)’을 ‘적합한 학생(right student)’에게 ‘적합한 시간(right time)’에 맞춰 제공하는 것이다. ASU 학생들은 교실 수업에 들어오기 전 이론을 먼저 습득한 뒤, 교실에서 실험·실습·토론에 참여한다. 특히 ASU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을 활용, 학생을 밀착 관리하고 학습을 지원한다.

ASU의 혁신 성공은 학생 만족도 상승에서도 입증된다. 실제 중도탈락률이 과거 82%에서 14%로 대폭 감소했다. 제니퍼 하이타워(Jennifer Hoghtower) ASU 학생처장은 “ASU는 혁신을 시도하면서 ‘학생관리’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학생 분석’을 통해 개별 서비스를 제공한 것이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이제 우리나라로 눈을 돌려보자. 우리나라 대학가가 ASU처럼 온라인 기반의 혁신을 이뤄냄으로써, 세계적인 혁신대학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까? 아쉽게도 부정적이다. 규제가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원격수업 20% 제한 룰’이 대표적이다. 교육부는 고등교육법 제22조 제2항 신설(2017년 11월 28일 공포)과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14조의 2 신설(2018년 5월 28일)에 따라 2018년 10월 ‘일반대 원격수업운영 기준’을 마련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원격수업(온라인 수업) 교과목은 교수-학습 활동(중간-기말고사 등 평가 활동 제외)의 70% 이상이 온라인 형태로 이뤄지는 것이다. 원격수업 교과 이수 단위는 일반 대면수업과 동일하게 평점과 학점제가 기본이다. 학점 당 이수 시간은 교과목 특성을 반영, 대학이 자율로 정할 수 있다. 하지만 매 학기 최소 15시간 이상으로 정해야 한다.

규제의 하이라이트는 비율 제한. 원격수업 교과목은 총 교과목 학점 수의 100분의 20을 초과할 수 없다. 쉽게 말해 전체 수업의 20%까지만 원격수업이 가능하다. 비율 제한 등 규정을 위반하면 위반 정도에 따라 학생 모집 정지 등 행정처분이 부과된다.

교육부 관계자는 “‘일반대 원격수업운영 기준’은 강의실 수업을 기반으로 설립·운영되는 일반대가 원격수업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최소 원칙을 제시함으로써, 고등교육의 질적 수준 제고를 유도한다”며 “기준에서 직접 정하지 않은 사항에 대해서도 강의실 수업에 준해 질 관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ASU와 비교하면 명백히 대조적이다. ASU는 규제에 얽매이지 않고 온라인 기반으로 혁신에 혁신을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학가는 4차 산업혁명과 미래교육을 주창하면서도, 구시대의 프레임에 갇혀 있다. 물론 교육부가 고등교육의 질적 수준 제고 측면에서 일정 규제를 적용할 수 있다. 그러나 ASU가 규제에 갇혔다면, 지금의 혁신대학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이에 대해 김도연 전 포스텍 총장은 “미국에서는 소위 아이비리그 대학들이 온라인으로 학위를 주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우리는 아직 법령으로 그렇게 할 수 없다. 왜 그래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또한 미네르바스쿨이 ASU와 함께 혁신대학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미네르바스쿨은 ‘無캠퍼스’가 특징. 우리나라에서는 상상조차 불가하다. ‘대학설립·운영 규정’에 따라 △교사(校舍·학교 건물) △교지(校地·학교 부지) △교원(敎員·교사 또는 교수) △수익용기본재산 등이 필수 조건이기 때문이다. 필수 조건을 갖추지 못하면 대학을 설립할 수 없다. 심지어 사이버대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정원 규제, 외국인 유학생 유치 제약 등도 우리나라 대학가의 혁신을 가로막는 규제들이다.

코로나19로 원격수업 ‘도마 위’, 규제 철폐 ‘한 목소리’ =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했다. 급기야 세계보건기구(WHO)는 팬데믹(Pandemic·전염병 대유행)을 선언했다. 그러자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가 원격수업 체제로 전환했다. 교육부가 각국의 한국학교, 한국교육원, 재외공관, 웹사이트 검색 등을 통해 해외 5개국(미국·프랑스·중국·일본·싱가포르)의 원격수업 현황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일부 주), 프랑스, 중국 등은 휴업과 함께 원격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원격수업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하지만 원격수업은 끊임없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콘텐츠 부실’ 논란이 최대 쟁점이다. 하지만 원격수업을 부정하는 여론보다 원격수업을 중심으로 미래교육 준비에 본격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본지는 <코로나19와 대학의 위기 대응을 위한 전국 대학 총장 설문조사>를 모바일과 이메일을 통해 3월 10일부터 20일까지 진행했다. 설문조사에는 4년제 대학 38개, 전문대학 32개에서 총 70명의 총장이 참여했다. “코로나19로 대학뿐만 아니라 교육생태계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중심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는 항목에 대해 대학 총장들의 72.9%가 ‘전적으로 동의하며 온라인교육 시대를 본격적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또한 ‘현재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고 제2, 제3의 코로나19 대응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복수응답)라는 질문에 ‘콘텐츠와 시설 공유 플랫폼 구축’(54개 대학 총장·34.4%), ‘온라인 교육 20% 법정 비율 제한 폐지와 온라인 교육 확대’(44개 대학 총장·28%)의 응답 비율이 높았다.

코로나19로 원격수업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지만 원격수업은 끊임없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하지만 원격수업을 부정하는 여론보다 원격수업을 중심으로 미래교육 준비에 본격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코로나19로 원격수업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지만 원격수업은 끊임없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하지만 원격수업을 부정하는 여론보다 원격수업을 중심으로 미래교육 준비에 본격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원격수업 활성화 시사···규제 철폐 의지가 관건 = 교육부는 코로나19로 원격수업이 대두되면서, 기존 ‘원격수업 20% 제한 룰’을 일시적으로 완화했다. 동시에 교육부는 원격수업의 중요성에 공감대를 보이고 있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코로나19로 학교 공부 방식까지 바뀌어야 하고 감염병 장기화에 대비, 미래교육을 준비해야 하는 지금 교육부 장관으로서 원격교육을 과감하게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시적 완화’는 말 그대로 ‘일시적’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면, 기존의 규제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코로나19 이전 시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 대세다. 결국 코로나19 이후, 즉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 관건은 규제 철폐다. 우리나라 대학가의 혁신, 미래교육을 가로막는 규제들을 면밀히 살피고, ‘원격수업 20% 제한 룰’ 폐지부터 과감한 규제 철폐가 요구된다.

장제국 동서대 총장은 “AC(After Corona) 시대의 대학을 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법과 제도의 정비가 필요하다.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교육당국이 정해 놓은 규정들에 많은 예외를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면, 오프라인 대학의 온라인 교육 상한제 규정”이라면서 “이참에 AC시대 대학으로의 진화를 어렵게 하는 규제를 과감하게 철폐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라고 밝혔다.

장 총장은 “전통적인 대학에서 경쟁은 (우리나라 대학이) 역사가 몇 백 년이 넘는 미국과 영국의 대학을 이기기는 힘들다. 그러나 AC시대의 대학에서는 우리나라 대학들이 앞설 수 있는 조건을 많이 갖추고 있다”며 “뛰어난 인터넷 환경과 변화에 대한 욕구가 넘치는 국민성, 그리고 이미 넘치는 축적된 교육혁신 아이디어 등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대학이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도출해 내어야 할 때임이 틀림없다”고 강조했다.

오세조 연세대 경영학과 명예교수도 “정부는 일반대학의 원격강의 20% 제한 규제와 학교 외부에서 이뤄지는 수업방법 제한 규제를 재검토해야 한다. 이제 학생 입장에서 대면 수업강의와 비대면 원격강의를 선택하고 나아가 양자를 병행, 학생마다 가장 효과적인 학습이 이뤄지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라면서 “이러한 규제 철폐로 대학마다 자율성을 강화, 미국의 미네르바스쿨이나 프랑스 에콜42와 같은 미래지향적 대학을 장려해야 한다. 획일화에서 다양성으로 대학평가 패러다임을 전환, 대학별 특성에 맞는 교육내용과 방법의 차별화를 꾀함으로써 더욱 다양한 형태의 대학을 출현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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