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10월이 되면 세계의 이목은 스웨덴 한림원으로 집중된다. 최고의 영예와 거액의 상금이 뒤따르는 노벨상 수상자 발표가 있기 때문이다. 노벨평화상은 노르웨이에서 주관하지만 물리, 화학, 생리의학, 문학, 경제 등 나머지 다섯 개 부분의 노벨상은 북유럽의 강소국 스웨덴에서 결정된다.
‘언제쯤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게 될까’는 우리의 주요 관심사 가운데 하나다. 요즘 서울대 황우석 교수팀의 배아복제연구 개가, 마리아생명공학연구소 박세필 박사팀의 줄기세포기술 미국특허취득 등의 낭보들로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점점 커지고 있고, 국제과학계에서 한국의 위상도 격상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남북을 합치면 인구가 7천만에 이르고 국토면적도 영국보다 넓어 우리나라는 그리 작은 나라가 아니며, 남한의 경우 경제규모는 세계에서 11번째 대국이다. 하지만 우리보다 인구나 경제규모도 적고 역사도 일천한 호주는 올해에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를 배출해 우리의 부러움을 샀다.
지난 10월 3일 개천절 저녁에 2005년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가 발표됐다. 노벨 생리의학상을 선정하는 스웨덴 카롤린스카 의대 연구소는 위염과 소화기의 궤양을 일으키는 헬리코박터 파이로리(Helicobacter Pylori)균 연구에 대한 공로로 호주의 배리 마셜 박사와 로빈 워렌 박사를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로 발표했다.
이로써 신생국가 호주는 다시 한 번 과학기술대국임을 입증했다. 더군다나 노벨상 수상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15년 물리학상(브래그경), 1945년 의학상(플로리경), 1963년 의학상(에클레스경과 버넷경), 1975년 화학상(콘포스경), 1996년 의학상(도허티 박사) 수상 등 호주는 이미 십여 명에 이르는 노벨상수상자를 배출한 노벨상강국이다.
대체 호주의 저력은 어디서 오는 걸까. 얼마 전 필자는 호주의 과학문화 인프라를 조사하기 위해 현지출장을 다녀왔다. 호주의 과학문화 인프라와 역사를 둘러본 결과, 필자는 과학기술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호주는 과학과 혁신에서 자신의 미래를 건설하고 있다.” 호주 과학기술연구의 중심기관인 CSIRO(연방과학산업연구소)의 안내책자 첫머리에는 호주의 미래는 과학에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근대국가로서의 역사가 짧은 호주로서는 전통이나 유산보다는 미래의 가능성이 더 중요할 것이다. 미래를 여는 과학문화는 그래서 그들에게 더욱 중요하다.
보통 호주하면 연상되는 것은 캥거루나 코알라, 산호초 같은 대자연이다. 섬나라이자 유럽 전체보다 더 넓은 대륙을 혼자 차지하고 있는 호주는 거대한 자연에 비해 인구는 1천9백만 명에 불과하다. 적은 인구가 대자연속에서 선진문화를 이룩할 수 있었던 힘은 과학기술이었다. 한나라의 과학기술은 과학교육으로 태어나고 연구개발을 통해 성장하며 과학문화를 통해 완성된다. 호주는 과학교육, 연구개발, 과학문화가 삼위일체를 이루고 있다. 이런 유기적인 구조의 과학기술전략 속에 호주의 미래가 있다고 그들은 굳게 믿고 있는 것이다.
지난 8월에 열린 호주과학축제에서 존 스텐호프 캔버라 수도주 총리는 축사에서 “과학이 없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지구가 평평하고 태양이 지구 둘레를 돌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과학에게 엄청난 빚을 지고 있다”고 말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의 이야기는 진솔한 고해성사처럼 들린다. 아마도 호주인들의 과학에 대한 애정과 신념을 집약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