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배제’ 등 강력한 제재...이중잣대 논란

“학생들 대부분은 강의평가를 ‘피드백’ 제도로 인식하기보다 성적확인을 위해 거쳐야 하는 귀찮은 절차로 여겨 ‘몰아 찍기’를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대다수 학생들이 심드렁한 태도로, 또는 막연한 감으로 답을 찍은 결과는 대학 교원들 가운데 오로지 비정규직교수의 강의 박탈로 이어진다.”(정규환 한국비정규직교수노조 부위원장) 교수에게 ‘관대’하고 강사에게는 ‘가혹’한 강의평가의 실효성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비정규직교수가 낮은 평가를 받으면 다음 학기 강의 배제로 이어지지만, 똑같이 낮은 평가를 받더라도 전임교수에게는 별다른 제재 조치가 가해지지 않는다. 이러다보니 전임교수에게 강의평가는 요식행위로 전락하고 ‘강의의 질을 높이자’는 원래 취지가 무색해진다는 지적이다. 연세대 수업과 정광수 주임은 “강의평가 결과가 학과장이나 대학장들에게 전달되기 때문에 전임교수에게 심리적인 부담이 된다”면서도 “제도적으로 불이익을 가하는 조치는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교내에서 논의가 없었냐고 묻자 정 주임은 “강의평가가 좋지 않은 전임교수들에 대한 제재조치가 안건으로 나오긴 했지만 별다른 대책은 아직 나오질 않았다”고 밝혔다. 경희대 학사지원과 관계자 역시 “교수들도 나름대로 신경을 쓰고 있는데 일부 교수의 이야기가 크게 부각되는 것 같다”면서도 “강의평가가 낮은 전임교수에 대한 실제적인 제재조치는 없다”고 말했다. 학내 일각에서는 심지어 “강의평가는 만족-불만족만 평가하면 되지 않느냐”는 이야기도 나왔다고 한다. 고려대 학적수업 지원팀 유신열 과장은 “강의 내실보다 인기에 영합할 경우 학생이 현혹할 수도 있는데 평가 결과를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겠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유 과장은 이와 관련 “어떤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평가 결과 자체에 위험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강의평가는 참고자료 정도로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의평가 ‘피드백’ 효과 적어···강사가 교수보다 평가 높기도 이처럼 전임교수에게 강의평가의 원래 기능인 ‘피드백’이 제 구실을 못하는 이유는 승진을 위한 업적평가에서 교육평가 비중이 연구평가 비중에 비해 지나치게 낮기 때문이다. 교육평가 비율은 전체 업적평가의 10~20%에 불과한데다가 실제적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모 대학 관계자는 이 문제와 관련 “전임교수 업적평가에서 교육부문에 ‘강의평가 90점 이상은 몇 점을 가중한다’는 식으로 항목을 정해놨지만, 실제로 강의평가에서 최하위를 받지 않는 한 점수 편차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전임교수들이 교육보다 연구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강의평가가 전임교수에게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다보니 웃지 못 할 결과도 나온다. 서울대 기초교육원이 4만여명의 교양과목 수강생을 대상으로 조사, 발표한 작년도 1학기 학생강의평가 자료에 따르면, 비정규직교수가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반면 전임교수는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것. 5점 만점 평점에서 시간강사 평균은 3.88점이었고 대우강사, 초빙·명예교수, 기금교수가 그 뒤를 이었다. 이에 반해 전임교수는 평균 3.70점으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조교에게 강의를 떠맡기거나 매학기 농담까지 똑같이 하는 전임교수의 행태도 이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하지만, 대학은 전임교수에게 강의평가 결과에 따르는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모 대학 관계자는 “강의평가 결과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중요성은 모든 대학이 공감한다”면서도 “강의평가 점수가 낮은 전임교수에 대한 상벌 문제는 대학으로서는 매우 다루기 어려운 문제”라며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관계자는 “학생들은 계속 강의평가 공개를 요구하지만 전임교수들이 이를 꺼리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고 밝혔다. “실효성 높여라”···인센티브·패널티 부가 등 방법 동원 이런 속에서도 몇몇 대학은 나름대로 강의평가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동국대는 2학기부터 성과평가 항목에 강의평가 점수를 반영하도록 시범 운영한다. 이와 함께 내년부터는 전임교수 성과급에 강의평가 비중을 높인다는 방침을 세워뒀다. 김영수 동국대 교무팀 과장은 “강의평가 점수가 낮은 교수에게 학습센터에서 교수법 강의를 받도록 하는 방안도 학내에서 논의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성신여대는 현재 시행 중인 학기말 강의평가제를 보완한 ‘중간 강의평가제’를 올해 2학기부터 실시한다. 기말고사 후에 시행하는 현행 강의평가는 실제적인 피드백 효과를 주지 못한다는 판단에서다. 중간고사 전·후로 진행하며, 이로 인해 강의평가의 실효성이 높아지리라 보고 있다. 또, 실제 수업 시간에 여성에게 듣기 거북한 성적발언이나 행동을 한 교수의 언행을 자제토록 하기위해 중간 강의평가에 ‘여성의 눈으로 바라보는 강의평가 항목’을 추가키로 했다. 학생이 교수에게 직접 하기 어려운 말들을 서술형으로 기술토록 하고, 익명성을 철저히 보장해 효과를 높인다는 방안이다. 서강대는 내년부터 전임교수가 강의평가에서 일정점수 이하를 받으면 안식년을 보류하는 등 직접적인 패널티를 시행할 예정이다. 서강대 학사지원팀 관계자는 이에 대해 “교수들 반발이 있는 등 분위기가 안 좋은 게 사실”이라면서도 “강의평가의 충실도를 높여야 한다는 압력도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대경대학은 두루뭉술한 강의평가 결과를 보완하기 위해 3년째 교수들에게 매학기마다 ‘강의평가 성적표’를 발송하고 있다. 전임교수를 비롯해 시간강사 전체 260여명의 교수에게 전달되는 이 성적표는 학생들이 제출한 강의평가를 토대로 교수들 사이의 석차는 물론 4.5만점기준의 평점평균까지 표기된다. 교학처 관계자는 성적표 제도에 대해 “시행 당시 교수들의 반발이 생각보다 적었다”면서 “전임교수들이 교수학습센터를 방문해 자신의 강의 모습을 비디오로 촬영하고 문제점을 보안하려는 등 강의에 열중하는 현상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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