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강행군… 해외거점캠퍼스 발판 다져

“이화대학의 해외거점캠퍼스 구축은 글로벌화의 시대적 조류에 발맞춘 것입니다. 글로벌화는 다양한 문화를 포용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생생한 교육이어야 하거든요. ‘거점’ 캠퍼스를 설립하는 것은 그간의 미국 중심을 벗어나 ‘분산’과 ‘균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이번에 유럽을 직접 방문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2006년 취임 이후 ‘글로벌 이화’ 프로젝트를 앞장서 이끌고 있는 이배용 이화여대 총장. 글로벌화 정책의 핵심인 해외거점캠퍼스 설립을 통해 미국·유럽·아시아 등 세계 20여곳에 거점을 마련, 2010년까지 재학생 60%에게 해외경험 기회를 제공할 계획이다. 지난 1월 영국·프랑스·벨기에 10개 대학을 찾아 교류를 협의하고 돌아온 이 총장을 만났다.

이 총장은 “글로벌화는 후속세대에게 다양한 사람과 문화를 접하고 나눌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가교’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화 또한 교육의 일환이라는 이 총장의 지론과 역사학자로서의 철학이 함께 담겼다.

이 총장의 자부심은 ‘이화대학’이라는 표현에 그대로 묻어났다. 여대 중 최고라는 데 안주하지 않고 일반 대학들과도 당당히 경쟁하겠다는 의미. 이 총장은 “해외에서는 이화대학이 한국 대학 중 더 잘 알려져 있음을 실감한다. 세계 최대 규모의 여대라는 브랜드가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화는 이화대학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 거점캠퍼스 구축을 위해 그간 해외 여러나라를 방문했다고 들었습니다.
“이번 유럽 방문은 열흘 동안 10개 대학을 찾는 강행군이었습니다. 글로벌화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조류입니다. 이메일로 세계가 한 시간 안에 소통할 수 있는 시대 아닙니까. 해외거점캠퍼스는 그런 고민들이 반영된 것이에요. 학생들이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이해하고, 신뢰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줘야 합니다. 대학이 그렇게 해줘야 해요.

거점캠퍼스의 의미는 분산과 균형입니다. 학생들이 집단으로 해외에 나가면 장기적으로 현지적응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10~15명씩 나가도록 할 겁니다. 또 미국 중심을 벗어나서, 국내 다른 대학들에 앞서 유럽의 문화와 전통을 나누자는 취지도 있어요. 최근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EU를 직접 눈으로 보고 체험해야 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외에도 총장이 되고 미국과 중국을 세차례씩 방문했습니다. 미국의 경우 LA, 보스턴, 뉴욕 일대를 갔었는데 여러 대학과 교류협정 뿐 아니라 미국 일대 동문들과도 관계를 다질 수 있었습니다. 동문들은 우리 학생들이 실제로 해외에 나갔을 때 돌봐주고 알선하는 후원자 역할을 톡톡히 할 겁니다.

- 유럽 대학들을 직접 대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요.
“공감대는 ‘융합’에 대한 화두였습니다. 해외 대학들이 한국학에 대한 관심이 커요. 글로벌화도 한국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점을 느꼈습니다. 유럽은 대학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많아요. 국가의 지원이 얼마나 학생들을 자유롭게 성장시킬 수 있는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럽 대학이 역사가 깊잖아요. 학부과정의 역사·문학· 철학 등 교양 커리큘럼은 물론, 대학원에서도 전문적으로 다루는 것은 굉장히 큰 배울 만한 점이었습니다. 대학운영의 체계화나 학문의 깊이는 역사가 오래 된 유럽 대학들의 저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들 뿐 아니라 교수들도 교류하면서 ‘나눔의 글로벌화’를 만들어갈 계획입니다.”

- 단과대학간 국제 교류도 눈에 띕니다.
“총장은 전체적인 방향과 틀을 잡아가는 것이죠. 후속으로 단과대학별, 학과별 교류 프로그램이 좀 더 활성화돼야 합니다. 예술대학이 뉴욕대와 교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고, 경영대학도 교류에 나서고 있어요. 하버드대와 공동진행하는 한국학 서머 프로그램은 올해 들어 3년째인데, 한류 문화를 다루게 될 겁니다. 하버드대가 아시아 대학들과 함께 하는 HACP(하버드 컬리지 인 아시아 프로그램)에도 국내 대학 중 최초로 파트너에 선정되는 등 글로벌화 노력이 하나둘 결실을 맺고 있죠.”

- 대학마다 글로벌화의 방향이 조금씩 다릅니다. 이화여대는 어떤가요?
“인바운드·아웃바운드 국제화를 함께 하는데 현재로선 ‘아웃바운드’의 비중이 높다고 봐야죠. 하지만 인바운드 국제화도 중요합니다. 글로벌 대학의 상징적 의미로 입학식에서 한국인과 외국인 학생 한명씩이 입학 선서를 같이 합니다. 파주 글로벌캠퍼스 설립과 함께 학과별 외국인 교수 1명 이상 확보, 영어강의 30% 이상 달성을 추진 중입니다.

영어강의의 효율성에 대한 지적도 많은데요. 영어강의를 하지 않으면 외국학생들을 불러들일 수 없습니다. 국내 학생들도 영어로 강의받는 것에 익숙해진 후 외국으로 나가야 할 필요도 있구요. 물론 처음엔 원활하지 못하겠지만, 훈련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들과 교수들이 열심히 준비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봐요.”

- 화제를 바꿔볼까요. 여대로선 유일하게 법학전문대학원 예비인가를 받았습니다.
“여대의 한계보다는 여대의 특성을 충분히 활용한 로스쿨을 만들 수 있어요. 이화 로스쿨은 생명의료, 여성 젠더, 인권 등을 다루는 여성 전용 로스쿨이 될 겁니다. 사립대 총장들은 로스쿨 총입학정원이 3200명 정도가 적정하다고 주장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아 예상보다 입학정원이 적어진 아쉬움은 있어요. 새 정부가 들어서면 이 점은 보완되리라 생각합니다.”

- 차기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장으로서 새 정부에 어떤 주문을 할 계획인지요.
“대학자율화 문제가 가장 크지 않습니까. 차기 정부가 대학의 자율을 보장한다 해서 대학들도 기대가 많은데, 당연히 자율에 따른 책임도 같이 져야겠죠. 자율화의 범주는 굉장히 다양합니다. 운영이나 행정, 재정 연구, 학문의 방향 등 많죠. 대학마다 입장이 다를 수 있는데 ‘역지사지’의 입장으로 공감대를 형성해 논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요즘 얘기되는 자율화는 대입에 관심이 쏠려있죠. 신뢰를 줄 수 있는 대입정책 수립과 공교육 정상화가 대전제인데, 정부에서 어떤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때 오히려 이런 부분들이 흔들릴 수 있어요. 학생을 선발하는 기준 자체에 대해서는 대학에 자율적으로 맡기고, 합리적 기준을 벗어났을 때 제어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게 중요합니다.”

- 역사학자로서 숭례문 화재에 남다른 감회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 아쉬움이 큽니다. 우리 사회가 우리 역사의 소중함과 현장 역사교육의 필요성에 너무 무관심하지 않았나 하는 자성이 있어야 합니다. 반성의 상징으로 복원하지 말자는 목소리도 있는데 저는 반댑니다. 중요한 건 시대정신이고, 우리 자존심의 손상이기 때문에 복원을 서두르지는 않더라도, 하나하나 치밀하게 점검하고 복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형태적인 복원이 아니라 ‘정신사적인 복원’이 있어야 하겠죠.”

<대담=이인원 회장, 사진=한명섭 기자, 정리=김봉구 기자>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