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베를린 소재의 유서 깊은 홈볼트대가 공산전권에 접수된 후 그 반대급부로 설립된 자유대는 89~90년 동독공산체제 붕괴 이전까지만 해도 서독 최대의 대학으로 달렘지구의 드넓은 캠퍼스는 5만여명의 학생들로 넘쳤다. 그러나 독일이 통일되고 홈볼트대가 현대화 단계에 들어선 최근 수년간 수많은 교수진과 학생들을 빼앗긴 자유대는 '통일의 희생자'로 불투명한 미래에 직면해 있다. 한 게를라흐 자유대 총장은 "지난 91년이후 예산의 3분의 1이나 깎였 다"고 불평했다. 자유대는 또 예산절감 조치의 일환으로 교수진을 현재의 7백명에서 2003년까지 3백68명으로 감원할 예정이다.
분단이후 훔볼트대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의 강요를 피해 서베를린으로 탈출한 교수, 학생 들의 저항정신에 기초를 두고 설립된 자유대는 미국정부와 포드재단 등 민간재력가들의 대 규모 후원아래 전후 독일 고등교육의 선두주자로 급속히 부상했다. 그러나 예산삭감으로 현 재 대학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고 건물들도 초라하기 짝이 없다. 자유대의 역경에 대해서는 동정론도 있으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 개혁을 하지 못한 대학 자체의 실패를 지적하는 비판 론도 있다.
권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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