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출 쉽지 않아…입후보 없거나 단독 출마
취업난, 코로나19, 무관심…총학 선거 ‘3중고’
학생 권익대변 소통 창구, 학생사회 내 필요성 ‘여전’

전국총학생회협의회는 코로나TF는 코로나19로 인한 학생 학습권 사수와 등록금 환불 문제 해결을 위해 6월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 전국총학생회협의회)
전국총학생회협의회는 코로나TF는 코로나19로 인한 학생 학습권 사수와 등록금 환불 문제 해결을 위해 6월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 전국총학생회협의회)

[한국대학신문 허정윤 기자] 자신을 뽑아달라는 쩌렁쩌렁한 외침을 올해는 캠퍼스에서 듣기 어려울 전망이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좀처럼 잡히지 않는 가운데 많은 대학이 총학생회(총학) 구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경선은 고사하고 입후보자가 없는 대학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그래도 학생사회는 학생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유일한 ‘소통 창구’라며, 총학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학생 자치 컨트롤타워’이기도 한 총학의 부재로 학생들의 권리가 축소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더해진다. 

■총학회장 후보 ‘가뭄’, 출마해도 대다수 ‘단선’ = 올해는 유난히 총학생회 후보자가 없어 선거 자체를 못 치른 대학들이 많다. 복수의 후보가 출마해 경선이 벌어진 대학은 보이지 조차 않는다. 

서울대도 총학 구성에 난항을 겪는 대학 중 하나다. 후보 등록 기간을 연장하는 등 여러 방법을 동원했지만, 끝내 입후보자가 없어 선거가 무산됐다. 중도 사퇴로 인해 총학이 공석이었던 적은 있지만, 후보자가 없어 선거가 무산된 것은 서울대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다. 

현재에도 서울대에는 총학이 없다. 지난해 11월부터 1년째 단과대 학생회장 연석회의가 총학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일종의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체제인 셈이다. 지난해 단독 입후보한 후보자들이 끝내 사퇴를 결정하면서 선거가 무산, 현재와 같은 체제로 1년을 보내야만 했다. 

서울대는 선거시행세칙에 따라 내년 3월 보궐선거를 열 계획이다. 다만 보궐선거를 열어도 후보가 나올지는 미지수다. 단과대 단위에서도 후보자 부재로 선거가 무산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한양대는 한 술 더 뜬다. 4년째 총학 후보가 나오지 않아 올해도 비대위 체제로 운영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외에도 KAIST·국민대·서울시립대·숙명여대·연세대(미래)·포스텍·한국외대 등이 선거 입후보자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대학들은 보궐선거 전까지 비대위나 비대위에 준하는 위원회를 구성해 학생사회를 꾸려나갈 계획이다.

입후보자가 나오는 대학은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이 경우에도 총학 후보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경선이 벌어지는 모습은 보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다. 현재 대부분의 총학 선거는 단일 후보에 대한 ‘찬반’ 여부를 가리는 단선이 대부분이다. 

후보자가 나온다고 해서 걱정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투표율’을 놓고 또 다시 고민을 벌여야 한다. 한 명의 후보만 나온 ‘단선’마저도 투표율을 끌어올리느라 애를 먹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 사례도 있다. 고려대는 후보자가 나왔지만 개표 가능 투표율을 충족하지 못해 선거가 무산됐다. 고려대 총학 선거는 투표율이 33.3%를 넘어야만 개표를 실시하도록 돼 있다. 단선으로 치러진 고려대 총학 선거의 투표율은 25.21%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찾기 힘든 입후보자, 낮은 투표율이란 악조건 속 힘겹게 총학을 구성했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일 때문에 무위로 돌아간 사례도 존재한다. 이화여대는 단선 후보가 당선돼 선거를 마무리 짓나 싶었지만, 지난달 30일 ‘선거 무효’를 선언한 상태다. 이화여대 선관위는 “당선자에 대한 이의제기가 받아들여져서 총학 선거를 무효 처리한다”며 SNS를 통해 선거 무효 사실을 알렸다.

총학생회 선거에 이처럼 찬바람이 부는 것은 유례없는 코로나19 사태와 무관치 않다. 올해 대학들이 대부분 비대면 수업을 지향하고, 교내 공간 사용에 제한을 두다 보니 기껏 나온 후보자들도 유권자들을 직접 대면하기는 쉽지 않다.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가 비대면 SNS 선거운동, 투표 참여 시 추첨을 통한 경품 추첨 등의 이벤트에 열을 올리는 경우도 다반사다. 

서울대 총학생회 선거 역사상 최초로 후보자가 없어 선거가 무산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진 = 서울대 총학생회 페이스북)
서울대 총학생회 선거 역사상 최초로 후보자가 없어 선거가 무산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진 = 서울대 총학생회 페이스북)

■총학 없는 비대위 체제는 괜찮을까? = 총학 선거가 무산됐다고 해서 학생 대표자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총학이 없는 경우 학생들은 그에 상응하는 기구를 구성한다. 보통은 비대위나 단과대 학생회장 연석회의 등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대학 전체가 혼란스러워 학생 대표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했다. 총학이 없는 대학의 비대위 등도 학생들을 대변하기 위해 다사다난한 한 해를 보낸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비대위는 활동범위에 제약이 있는 게 현실이다. 투표를 거치지 않다 보니 대표성은 물론이고 정당성도 부족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준구 전국대학교 학생처장협의회 회장은 “코로나19 이전에는 등록금심의위원회 정도가 학생들의 의견 반영이 필요한 회의였다. 이제는 원격수업 관리위원회를 비롯한 각종 학생 권익 관련 업무에 학생 대표가 꼭 참석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며 “선거로 인정받은 대표자가 아니면 대학본부도 곤란하기는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학생들도 답답함을 느끼기는 마찬가지다. 올해 고려대 비대위를 이끈 신세희 비대위원장은 “(대부분의) 교내 소통 부분에는 무리가 없었지만, 일부 부처와 소통의 어려움을 겪었다”고 답했다.

오종운 숭실대 총학생회장은 “비대위만으로도 대학본부와 협상에 무리가 없다는 인식이 총학 구성을 더 어렵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며 “보통 단과대 회장과 동아리 연합회 회장이 비대위로 활동한다. 각자 집중해야 할 업무가 있어 비대위 체제를 유지해 나가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비대위 체제를 지속하는 대학들을 염려했다.

주요 대학 2020학년도와 2021학년도 총학생위원회 구성 현황 (사진 = 허정윤 기자)
주요 대학 2020학년도와 2021학년도 총학생위원회 구성 현황 (사진 = 허정윤 기자)

■어려운 취업시장에 코로나19까지, 총학 활동 부담 커 = 코로나19 이전에도 학생 자치 활동은 ‘악화 일로’였다. 총학 선거가 무산되지 않더라도 학생들의 자치 활동은 매년 위축됐다. 여기에 코로나19까지 겹쳤기에 내년 총학 구성은 한층 더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얼어붙은 취업 시장도 자치활동 위축과 관계가 있어 보인다. 송다미 국민대 총학생회장은 “총학보다는 취업에 관련된 대외활동을 하는 게 더 본인에게 이득이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많은 것 같다”라며 “취업이 계속 어려워지다 보니 취업 역량을 끌어올리느라 총학에 참여할 여유도 없어 보인다”고 했다. 

학생들의 무관심도 총학이 풀어야 할 숙제다. 김동현 고려대(세종) 총학생회장은 “자신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일이 아니면 학생들의 관심도가 떨어지는 게 아쉽다”며 “등록금 환불 문제나 비대면 수업·시험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다. 역설적으로 그 부분에서만큼은 학생 자치가 성공적으로 이뤄지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강성훈 서울대 자유전공학부·철학과 교수는 코로나19가 ‘연쇄 반응’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예측했다. 강 교수는 “학생들끼리 어울려야 자연스럽게 다음 해 학생회에도 관심을 보일 텐데 대면 활동이 너무 적었다. 학생 자치 활동의 동기부여가 약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당선된 김채수 신임 숭실대 총학생회장이 “앞선 학생회 선배들이 대학을 바꿔나가는 모습을 보고 자극을 받았다. 나도 후배들에게 귀감을 될 수 있는 회장이 되고 싶어 나서게 됐다”며 출마의 변을 밝힌 것만 보더라도 선·후배 간의 ‘연결고리’가 총학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주요 부분이라는 점을 잘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총학은 ‘학생들의 목소리’로 존재해야 = “코로나19 상황에서 대학 본부가 교섭에 응해주는 단체는 총학 말고는 없었다고 본다.”

단선 후보로 선거를 치른 A대학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다. 단선 후보에 대한 호불호가 갈렸던 A대는 투표 여부를 두고 말이 많았지만 결국 해당 후보를 회장으로 선출했다. 선거 무산으로 꾸려질 비대위보다는 선출 대표를 선택한 것이다.

학생 자치 활동의 목표와 성격은 시대 변화에 따라 달라지만 여전히 ‘소통’이라는 중심축은 흔들리지 않는 모양새다. 강 교수는 “총학이 예전처럼 민주화 같은 ‘대의’를 이룩하지 않더라도 다른 층위에서 학생들의 권익을 추구한다는 목표는 변함이 없다”면서 “개인이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창구가 이전보다 많아지긴 했지만 학생들의 의견을 모으는 대표 주체가 없으면 유의미한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역부족일 것”이라고 했다.

학생 자치가 코로나19로 인해 무너지기만 한 것은 아니다. 선거가 무산된 대학은 많았지만, 온라인 강의로 인해 촉발된 ‘등록금 환불’ 문제를 놓고 학생 자치 활동이 다시 불타 오르기도 했다. 전국 대학 총학이 모이는 전국총학생회협의회는 코로나TF를 구성해 국회 교육위 위원들을 두루 만나 학생들의 의견을 전달하고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이러한 학생 자치 활동은 ‘고등교육법’ 일부 개정안이 9월 본회의를 통과할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이 됐다. 개정안은 코로나19와 같은 재난으로 대학 학사운영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경우 대학이 등록금을 면제·감액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올해 총학을 이끌었던 대표들은 대부분 코로나19로 계획했던 많은 일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임기를 마무리해야 했다. 하지만 이들은 코로나19에 유연하게 대응하며, 학생 자치 기구가 위기 대처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줬다. 여전히 학생 자치 활동이 필요한 이유도 증명해냈다. 물론 ‘코로나 시대’와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학생 자치 활동이 이전과 완전히 같을 수 없다는 점은 학생들에게 분명한 숙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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