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설 곳은 어디인가? 이 말은 국내 인문계 교수나 졸업자의 푸념이 아니라 현재 세계 각국 인문계 대학들의 현주소이다. 세계화와 정보화가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현재 돈이 되는 정보와 기술에 비해 인간과 사회에 대한 탐구는 소홀하기 쉬운 것이 사실이다.

미국 캔사스대 철학과 제임스 웰펠 교수는 미 고등교육 잡지 크로니클에 "과학이 인문학을 대체할 수는 없다"는 글을 기고. 이공계 중심의 미 대학사회에 문제점을 제기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인문학보다 공학에 학생들이 몰리는 것이 대세. 미국교육정책협의회는 올초 41년에 비해 공학과 수학 등 이공계 학생이 40% 늘었다고 발표했다. 특히 조사결과 백인과 여학생의 수가 늘어났고 흑인과 히스패닉계의 수는 제자리를 걷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공별로 임금차이 심해]

미국에서 이렇게 자연계 학생이 느는 것은 계열별 임금 격차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미시간 대학이 올초에 5백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97년 채용현황에 의하면 작년보다 취업하기는 쉽지만 아직도 계열별 임금 차이가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임금을 가장 많이 받는 +화공과는 4만2천달러로 가장 적게 받는 신문학과 2만2천달러의 두배이며 인문계열 졸업자의 평균임금은 2만4천달러로 집계됐다. 또 컴퓨터 관련 전공은 지난해에 비해 4.5% 오른 3만7천달러로 가장 많이 임금이 뛰어 이 +분야의 인기를 반영했다. 이렇듯 급여를 많이 받는 이공계에 미국 대학생과 부모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올 1월 미국 리서치회사인 DGY에서 고등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인문학에 대한 이해 정도를 설문조사한 결과, 인문학이 무엇을 연구하고 졸업후 어떤 일을 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었다.

이같은 상황을 반영하듯 지난 6월 미국 북동부의 25개 대학이 인문계열 학생들의 취업을 돕기 위해 마운트 홀요크대에서 만나 취업을 위한 협의체를 구성했다. 이 대학 취업지도과 필 존스씨는 "기업은 +아이비리그나 유명 주립대의 인문계열생만을 선호한다. 이런 관행에 +맞서기 위해 협의체를 만들었다"고 밝힌다. 25개 대학은 정규채용정보는 물론 인턴모집에 관한 정보까지도 교환하고 있으며 인터넷에 독자적인 웹사이트를 구축할 계획이다.

[일본도 인문계출신 지방직으로]

한편 경기가 좋은 미국과 달리 일본은 지금 전후 최악의 취업난을 맞고 있다. 90년이후 해마다 떨어지던 취업률이 올해 65.9%로 종전후 제일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하지만 자동차, 기계, 전자 등 이공계의 취업률은 기복이 없어 일본 고등학생들은 아예 동경대, 와세다대, 게이오대 같은 +명문대를 가지 못할 바엔 전문대학으로 진학, 이 바람에 지난 5년간 27개의대학이 문을 닫았다. 인문계 출신 학생들은 중소기업이나 지방으로 내려가는 것도 불사하며 취업난을 뚫고 있다.

급변하는 동유럽의 경우 인문학이 받는 수모는 더욱 크다. 공대와 달리 서구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인문학은 공산당의 일방적인 지시에 의해 60년간 지속돼 어디서부터 손을 댈지 모르는 형편이다. 각 대학은 우수한 +교원확보와 자금의 문제가 시급하다. 학생들도 개방화된 시장상황에 +걸맞는 지식과 실무를 익히지 못하고 '맨손'으로 사회로 내몰려 불안해하고 있다.

헝가리계 미국인으로 세계 외환시장을 주무르는 조지 소로스가 설립한 부다페스트의 열린사회연구소 대학지원 부문 책임자인 피터 다바스는 +"동유럽 학생들이 받고 있는 교육은 그들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을 지도 모른다"며 동유럽 대학의 어려움을 말한다.

반면 세계교육협회 마크 라자르 동유럽 사무국장은 "지금 동유럽은 많은 인재가 필요해 대학들이 현 동유럽 상황에서 최선의 교육을 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많은 성과를 보여줬다"고 말한다.

인문학은 산업사회를 여는 힘이 됐고 지금도 고유의 영역을 지켜오고 있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근본을 캐는 인문학의 영역이 점점 축소되는 세계적 추세가 씁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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