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 추진하면서 정시확대 주문 ‘모순’
고교기여대학 사업을 정시확대 수단으로 사용
교육부 주문에 따른 대학들 오히려 난감한 상황

(사진 = 교육부 홈페이지)

[한국대학신문 이하은 기자] “보다 공정한 사회가 구현될 수 있도록 블라인드 채용과 입시에서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4년간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혁신적 포용국가 사회정책의 성과를 사회분야 연구기관장들과 공유하는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 교육부는 달성한 핵심성과로 고교학점제 도입, 대입공정성 강화 등을 꼽았다.

그러나 교육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더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통계청이 발표한 사교육비 통계조사에 따르면 소득수준별 사교육비 지출 격차는 5배가 넘었다. 월평균 소득 800만 원 이상 가구의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50만 4000원인 반면에 200만 원 미만 가구는 9만 9000원에 그쳤다.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하 사걱세)은 “최소소득과 최대소득 구간 사이에 사교육 비용은 5.1배 차이로 교육 양극화 현상이 명확하다”고 설명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역시 “사교육 참여 학생만을 놓고 보면 사교육비가 전년보다 늘었고 월평균 소득이 높을수록 사교육 참여율과 지출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교육 양극화 현상의 원인으로 정책 간의 불일치가 거론된다. 단적으로 고교교육 기여대학 사업만 보더라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사업은 대학의 입시 계획 등을 평가해 예산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서울 주요 대학을 포함한 75개 대학이 참여하고 있어 대입전형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교육부는 2025년까지 고교학점제를 전면 시행한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고교교육 기여대학 사업을 통해 정시 비율을 맞추도록 유도했다. 대입 공정성을 내세워 정시 확대에 초점을 맞춘 사업이 오히려 입시 경쟁을 부추긴 결과를 초래했다. 

교육부도 이를 의식한 듯 올해 3월 발표한 고교교육 기여대학 사업에서 ‘학생부위주 전형을 통해 사회적 양극화 해소에 기여했다’는 내용을 삭제했다. 이전 자료에는 성과로 명시한 부분이다. 

구본창 사걱세 국장은 “고교학점제를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 수능평가가 부합해야 하는데 현재 제도로는 연동되기 어렵다”면서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과목선택권을 보장하고 절대평가를 추진하는 것인데 수능을 확대한다면 시험 대비에 유리한 과목으로 쏠려 취지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수능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것은 고교생에게 문제 풀이만 하라는 시그널을 주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고교교육 기여’인지 의문이 든다”고 꼬집었다. 

올해 지표에서 삭제된 2018년 선정지표 (사진 = 교육부)

고교교육 기여대학 사업 자체의 방향이 학생부종합전형 중심에서 정시전형 확대로 180도 바뀐 점도 비판의 대상이다. 동일한 사업을 두고 과거와 정반대의 지침을 따르라는 것은 ‘자가당착’이라는 것이다. 

2015년부터 교육부는 수능최저학력을 폐지하고 학종을 확대하도록 유도해왔다. 당시 평가지표를 보면 수능최저학력기준을 높일 경우 감점을 줬다. 2018년 사업계획서에도 ‘학교교육 중심 전형 운영’ 항목에 20점이 배정됐으며 이중 ‘학생부위주전형의 공정성 및 운영 내실화’가 17점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와 정반대로 올해 사업 지표에는 ‘학교교육 중심 전형 운영’ 항목이 통째로 빠졌다. 교육부는 수능 위주 비율을 30% 이상 맞춘 대학만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또 학종 비율이 높았던 16개 대학은 2023학년도까지 40% 비율을 충족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건국대(40), 경희대(40.1), 고려대(40), 광운대(40), 동국대(40), 서강대(40.4), 서울대(40.1), 서울시립대(45.9), 서울여대(40), 성균관대(40.1), 숙명여대(40), 숭실대(40), 연세대(40.1), 중앙대(40), 한국외대(42.6), 한양대(40) 등은 모집비율을 발표했다.

한 대학의 입학 관계자는 “그동안 교육부 말에 따라 학종을 충실히 늘린 대학은 이번 사업에서 오히려 불리한 입장에 처했다”면서 “같은 이름의 사업에서 반대 입장을 취한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고 비판했다. 

사걱세는 “교육부의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은 대입에서 수능의 영향력이 확대돼 고교교육 혁신에 제동이 걸리는 것은 물론이고 수능 사교육 시장 팽창 및 사교육 과열지구 부동산값이 폭등할 것이라는 사회적 신호를 줬다”며 “고교교육 정상화 기여를 위해 수시에서 수능최저학력기준을 폐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교육부가 일관되게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한 대학 관계자는 “교육부의 정책이 일관성이 없다고 확인되면 신뢰도 역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장기적 비전없이 언제 바뀔지 모르는 정책을 어떻게 믿고 따르겠는가”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에 교육부는 “정시확대는 학생부종합전형 쏠림 현상이 강한 것에 대한 조치였다”면서 “올해부터 2025년 고교학점제 내용을 2028년 대입제도에 반영할 논의를 시작한다. 정책 지속가능성 확보하도록 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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