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지난 4월 27일 서울대 아크로폴리스에서 2022년도 정부 출연금 예산요구서에 비정규직 노동자의 인건비를 반영할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한국대학신문 허지은 기자] “국정감사에서도 임시방편으로 거짓말로 모면하고 비정규직 건강장려 휴가 지급이 실제로 지켜지고 있는지는 피드백이 안 됐습니다. 거짓말을 했다면 잡아내야 하는데 말입니다.” (송호현 전국대학노동조합 서울대지부장)

“1000여 명이 넘는 자체직원들은 정식 임금체계도 갖추지 못하고 통계에도 누락된 ‘유령직원’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일반노조 구성원 역시 정규직으로 전환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총액임금제’라는 사슬 속에 발이 묶이고 있습니다.” (김태균 빗소리 of SNU 공동대표)

“실무교섭이 단 17분 만에 끝났습니다… 비정규직은 소모품 취급을 받았습니다. 인력이 필요한 곳에 저임금 노동자인 비정규직을 채용하면서 순식간에 대학 내 비정규직이 500명으로 늘어났습니다.” (황성관 대학노조 고려대2지부장)

대학 비정규직 차별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른 지 수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차별 시정을 요구하고 있다. 형식적 제도 개선만 이뤄졌을 뿐 현실은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다. 2020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오세정 서울대 총장은 비정규직 차별을 고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또한 비정규직에게도 정규직과 차별 없이 ‘건강장려 휴가’를 부여하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한 해가 지난 지금도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4월 21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다시 한 번 서울대가 비정규직 직원들에게 건강장려 휴가를 제대로 부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지적됐다.

서울대 생활협동조합(생협) 소속 비정규직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업무 중 발생한 상해로 휴직을 신청한 직원은 이를 사실상 거절당하고 결국 일터를 떠나야 했다.

송호현 서울대지부장은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지면서 이용객이 급감하고 자연스레 수익이 더 줄게 되자 인력충원은 커녕 인건비도 줄여보고자 계약직원을 계약 해지했다”면서 “기존 직원들이 퇴사해도 충원을 하지 않다 보니 남아 있는 인력들을 쥐어짜서 일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매 학기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아가며 일을 하는 분들이 많다”고 호소했다.

이어 “식당 청소를 하던 중 무릎을 다쳐 인대가 파열돼 수술이 필요했던 직원이 회복기간을 가져야 해 휴직을 신청했는데 다른 곳으로 발령냈다”면서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한 사람이 빠지면 식당 운영조차 안 되니 휴직 신청 조차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서울대뿐만이 아니다. 고려대 비정규직 직원들 역시 현재 차별 시정을 요구하며 3월 4일부터 천막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전국대학노조 측은 “10년 근무한 무기계약 직원의 1년 임금 총액이 겨우 2200만 원, 2300만 원 수준”이라면서 “현재 고려대는 비정규직 직원들이 대학의 행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음에도 불구하고 처우가 매우 열악해 사실상 방치돼 있다”고 전했다.

황성관 고려대2지부장은 “19년 근속한 비정규직 직원 한 명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면서 대졸자 초임 수준의 호봉도 아닌 가장 낮은 호봉을 받았다. 그동안 일한만큼의 연차가 아닌 신규입사자 연차를 받았다”면서 “정규직 전환을 원하는 게 아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으니 이걸 시정해달라는 것이다. 다행히 정규직 직원들도 차별시정 투쟁에 함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학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고된 노동과 저임금, 복리후생 차별을 견디는 동안 사용자인 대학은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서울대와 서울대 생협은 규정과 조항이 있다는 사실만 되풀이할 뿐이다. 규정 사각지대에 있는 비정규직의 실태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대 관계자는 “건강장려 휴가 등 복리후생 사안은 단체교섭으로 근로조건에 포함돼 있다. 자체직원(서울대 비정규직)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며 “건강장려 휴가를 적용받지 못한 사례가 있다면 확인해봐야 할 일”이라고 해명했다. 서울대 생협 관계자 역시 “인사규정상 근로자가 아파서 쉰다면 쉴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기계적인 답변만 내놨다.

고려대 역시 문제 해결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본지 취재에 고려대 관계자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입각해 원만한 대화를 하려고 한다”고 답변했지만, 황성관 2지부장은 “교섭 이후 검토의견을 회신해주겠다더니 검토의견 없이 실무교섭을 하자고 했다. 그러나 그 실무교섭은 17분 만에 끝났다. 민주노총 측에서 총장 면담을 요청하기도 했지만 대학은 자주적으로 해결하겠다며 거절했다”고 황당해했다.

고려대 비정규직들은 정진택 총장이 취임하면서 내건 메시지와 달리 처우 개선이 이뤄지지 않은 점을 지적하고 있다. 고려대 공동투쟁위원회는 “정진택 총장의 ‘휴먼고대’라는 캐치프라이즈, 사람 중심의 고대, 구성원을 소중히 여기는 고대라고 굳게 믿고 교섭한 결과가 참으로 암담하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는 대학 내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 문제는 결국 대학의 재정 문제와 맞닿아 있다는 입장이다. 다시 말해 대학 재정난이 해소되지 않는 한 비정규직 처우 개선 역시 해결책을 모색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노사관계를 전공하고 유명 노동관련 학회 임원을 역임한 A 교수는 “비정규직 처우 개선은 대학 재정 문제와 연결돼 있다. 우리나라 대학 절반 정도가 적자에 허덕이고 있고 등록금 동결로 전반적으로 대학들 재정이 어려운 상황에서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할 재원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큰 상태”라고 답했다.

다만 재정 문제가 아닌 복리후생 등의 처우 문제는 사용자인 대학의 관심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A 교수는 “비금전적인 처우 개선 문제는 가능한 빨리 해결해야 한다”면서 “사용자가 관심을 갖고 해결해야 한다. 법과 제도, 규정이 바뀌어도 현장에서는 바뀌지 않는 것이 많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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