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수준 위해 발전기금 확보 총력

“미국의 대부분 사립 고등학교는 펀드레이저(Fund-Raiser)만 10여 명에 이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지 못합니다. 현재 여자기숙사를 완공하지 못했는데, 기금을 받은 후 본격적으로 공사를 재개할 겁니다. 종합교육관과 국제 규격의 체육관도 지어야 하고요.”

윤정일 민족사관고등학교(이하 민사고) 교장이 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서울대 사범대학장으로 정년퇴직 후 민사고 교장으로 부임한 지 9개월째다. 취임 후 한 학기 동안 문제점을 점검했고, 우선 학교발전기금을 모으는 데 주력하기로 했다.

민사고 설립부터 자문을 맡았고, 2002년 민사고의 현황과 문제를 철저히 파악해 민사고 장기발전계획을 제시한 것을 토대로 했다. 고등학교에서 발전기금을 모금하는 일은 다소 생소한 게 사실이지만, 그는 민사고의 ‘브랜드’를 믿고 있다. 이를 맡을 펀드레이저도 이미 영입했다.

이런 활동의 이면에는 윤 교장의 고충이 숨어 있다. IMF사태가 터지면서 모기업인 파스퇴르가 부도를 맞았고, 민사고의 지원도 상당수 줄었다. 좋은 학교를 만들려면 많은 돈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 영재 중의 영재들이 모이는 학교다 보니 책임이 더욱 막중하다.

“민사고 학생은 모두 430명, 교사는 70명입니다. 비율로 따지면 6대 1 정도지요. 세계 최고라는 고등학교들도 1대 10이나 1대 12 정도입니다. 교사들의 90%가 석·박사학위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우수합니다. 기숙사 시설이나 여타 교육환경 역시 최고입니다. 이런 교육환경을 유지하려면 무척 힘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자립형 사립고는 주변 고교의 3배 이내 수업료를 받아야 한다. 강원도 횡성 지역 고등학교의 수업료는 대략 80만원 수준이라서 최대 240만원까지밖에 받질 못한다. 기숙사비까지 포함하면 현재 1인당 1500만원 정도를 받고 있다. 여기에다 장학금은 자립형 사립고 기준인 15%를 10% 정도 웃도는 25%를 주고 있다. 이러다 보니 자금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윤 교장의 고민은 자금난에 그치지 않는다. 민사고 자체 문제도 문제거니와 우리나라 교육사정상 ‘엘리트학교’라는 비난을 고스란히 받고 있다. 세계적인 리더 양성이 목적인 민사고 교장으로서 가슴이 답답한 일이다.

“지식사회·정보화사회가 되면서 국제적으로 경쟁이 치열해졌어요. 경쟁력이 있어야 살아남습니다. 민사고는 기본적으로 수월성 교육에 기반을 두는데 밖에선 평등의 개념에 맞추어 비난을 하고 있어요. 교육에서 말하는 ‘기회균등’이란 자신의 능력에 맞는 수업을 받는 겁니다. 이걸 같은 틀에 맞추려는 하향평준화는 안 될 일이죠. 우수한 것은 우수한 대로 인정을 해 주란 이야깁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민사고 학생들이 받는 불이익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올해는 민사고 학생들 중 80여 명이 하버드, 예일 등 해외 명문대에 진학했는데, 그는 이를 두고 “두뇌와 돈이 모두 해외로 유출되는 셈”이라고 안타까워했다.

“한 학년이 150명이고 이걸 또 인문계·자연계로 나누다 보니 1등을 해 봤자 내신이 2·3등급밖에 안 됩니다. 이러니 국내 대학에 갈 수가 없어요. 이게 말이 됩니까? 차라리 외국으로 가자, 국제반이 그래서 생긴 겁니다. 그리고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죠. 미국 명문대학 진학률이 전체 32위, 해외 고등학교 중에선 1위입니다.

이렇게 진학을 하면 박사과정까지 밟는 데 대략 10년 정도 걸립니다. 미국 사립대학 등록금이 5000만원, 생활비 3000만원 정도로 볼 때 한 명이 10년 동안 8억원을 쓰는 셈이에요. 정부에서 이 문제를 깊이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자금난 타개와 함께 세계화를 가속화하는 일도 개혁의 다른 축이다. 이번 2학기 인사보직 개편이 신호탄이다. 대외협력실장을 부장으로 승격시키고 해외 고등학교들과의 교류협력에 힘쓰도록 지시했다.

“민사고는 1996년 설립한 후 지금까지 다른 고등학교와 자매결연이나 MOU를 하지 않았어요. 이번 학기부터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미국 이튼스쿨·싱가포르 레플즈와 함께 교류협약을 맺을 예정입니다. 아울러 미국 유명 고등학교 10여 개교와 자매결연을 해 교사·학생·연구 교류를 할 생각입니다. 조만간 민사고 교정에서 외국인 학생들을 만나보게 될 겁니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