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기 대학 구조개혁 평가에 반대하는 대학생들이 교육부를 규탄하고 있는 모습 (사진=한국대학신문DB)
1주기 대학 구조개혁 평가에 반대하는 대학생들이 교육부를 규탄하고 있는 모습 (사진=한국대학신문DB)

[한국대학신문 김의진 기자] 8월 17일 교육부가 발표한 3주기 대학 기본역량진단에서 ‘선정대학’으로 지정된 대학과 탈락한 대학의 희비가 교차되고 있다. 학령인구가 급감하면서 재정 압박에 시달리는 대학들에 입학정원 감축 등 정부의 체질 개선 압박 강도는 앞으로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정부 주도의 대학 구조조정 정책이 어느덧 ‘3주기’를 맞이했다. 재정지원을 미끼로 대학의 정원 감축을 유도하겠다는 정책 기조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목적은 사라지고 수단만 남겨진 채 대학들이 표류하고 있다.

본지는 특별기획 ‘대학 구조개혁의 변천’에서 정부 주도의 3주기 대학 구조개혁 평가가 어떻게 진행돼 왔는지 돌아보려 한다. <편집자주>

2015년은 국내 대학들에게 잔인한 한 해였다. 학령인구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당장이라도 대학 구조개혁을 시작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처럼 말했던 정부의 말이 무색하게 ‘대학구조개혁 및 평가에 관한 법률’은 여전히 국회에서 계류하고 있었다.

입학정원 감축 등 대학 구조개혁의 후속 조치를 위한 근거가 될 법률안의 국회 통과가 어려워지게 되면서 정원 감축 등 강제적인 법적 조치가 불가능해졌다. 전국 대학들에 깊은 상처만 안겨준 채 ‘대학 스스로가 알아서 정원을 감축할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권고하는 쪽으로 대학 구조개혁을 전환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여러 명분을 가져다 붙였지만 결국 대학 구조개혁 정책은 대학을 길들이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는 것을 정부가 자인한 셈이었다. 불공정한 잣대를 들이댄 정부의 대학 평가와 이 결과에 따라 가해진 불합리한 규제, 재정적 압박으로 대학들은 존립 자체가 흔들리게 됐다. 평가 지표를 맞추기 위해 대학은 취업 기관으로 내몰렸고 학문과 전공은 이미 균형을 잃은 지 오래였다.

하지만 정부는 2주기 대학 구조개혁 정책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입학자원이 줄어들게 돼 대학의 미충원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입학자원이 급감하는 현상은 정부뿐 아니라 대학에서도 함께 노력하지 않으면 쉽게 해결하기 힘든 문제라는 이유가 컸다.

다만 정부는 2주기 평가에서는 ‘대학의 자율적 노력’과 ‘대학별 특성화 경쟁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구조개혁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1주기 평가를 통해 성과가 없진 않았지만 궁극적인 목표였던 ‘국내 대학들의 국제경쟁력을 갖추겠다는 것’엔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1주기 평가를 통해 세계적 수준에 한층 더 가까워지기는커녕 국내 대학들끼리 “등급이 높네, 낮네”, “정원감축이 되네, 안 되네”만 따지는 사회로 정부가 나서서 만든 셈이다.

이와 비슷한 시점에 교육부 장관은 사회부총리를 겸할 수 있도록 법이 바뀌었다. 이에 황우여 장관 후임으로 오게 된 이준식 신임 부총리는 취임 일성으로 대학 구조개혁의 방향 전환을 예고했다.

이 부총리는 “대학 구조개혁 평가는 ‘대학 자율’에 초점을 맞추고 교육부는 대학이 자율적으로 혁신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기본철학을 가지고 있다”며 “1주기 대학 구조개혁 평가는 일반대와 전문대를 나누는 수준에 그쳐 다소 획일적으로 이뤄진 측면이 있었다”고 선언했다.

이 부총리는 이어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교육부가 대학 위에 군림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대학 서열을 세우기보다 학교를 개선할 수 있는 방향으로 대학 스스로가 평가 지표를 설계할 수 있도록 반영하겠다”며 “앞으로 평가에선 대학의 설립목적, 건학이념에 맞는 특성을 고려한 평가 시스템을 가동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1주기 평가와 같은 실책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평가요소’와 ‘방식’에서의 보완이 필요했다. 기존의 정량평가가 중심이었던 때와 비교하면 1주기 때 정성평가가 대폭 반영됐다고 해도 여전히 수도권 대형 대학들에게 유리한 구조라는 비판을 피하기엔 역부족인 평가 체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2주기 평가의 이상적인 모습은 ‘설립형태’, ‘대학규모’, ‘지역 특성’ 등을 동시에 고려하는 합리적인 대학 정원 조정 정책이어야만 했다. 이를 위해서는 전문대와 일반대, 국립대와 사립대, 수도권과 지방대, 대형대학과 소규모 대학 등 모든 면에서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정교한 틀이 필요했다.

이러한 면에서 정부가 당시 추진하고 있던 ‘재정지원사업과 대학 평가’를 연동하는 정원감축 유도 방식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평가를 위한 평가, 대학 간의 소모적인 경쟁만 야기할 뿐 대학의 질적 개선을 유도할 수 있는 요인을 찾기 힘든 구조였기 때문이다.

당시 교육계에선 “재정지원사업이 연계되는 순간 정원감축 취지가 흐려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며 “대학별 특성과 여건에 맞춰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적정 정원이 되도록 계획을 내놔야 하는데 오로지 등급을 잘 받아 재정사업부터 먼저 받고 보자는 식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정지원사업이 연동되는 탓에 구조개혁 자체가 재정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지를 측정하는 평가로 변질된다는 점도 문제로 꼽혔다. 이런 구조에선 지방대와 소규모 사립대들이 서울 대형대학, 국립대들과 동일한 잣대로 경쟁하는 상황이 벌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당시 대학가에선 “교육부가 서울 대형 대학의 헤게모니를 가지고 대학을 바라보기 때문에 정책도 해당 논리에 편승하는 것”이라며 “작은 대학에 교육부가 관심이나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재정지원사업을 받는 대학과 탈락한 학교 간 격차가 갈수록 커진다는 점도 재정지원사업 연동 체제가 가진 한계로 꼽혔다. 학령인구가 줄어드는 만큼 대학들의 정원을 감축해 고등교육의 균형점을 되찾자는 취지와는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재정지원사업이 일부 대학에만 편중되고 그렇지 못한 대학은 갈수록 교육의 질이 떨어져 대학 평가에 따른 정원 감축 압박만 가중되는 결과가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2016년 당시 지방대에서 기획처장으로 있었던 교육계 인사는 “재정지원사업을 받게 돼 기본 지표들을 탄탄하게 만든 대학들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사업에 선정된다”며 “이런 식으로 5년 정도만 시간이 지나도 사업을 따는 학교들만 좋아지고 나머지 대학과의 격차가 심해지는 악순환이 이어지게 된다”고 했다.

모든 대학의 균형 발전을 위한 정책으로 정부가 내놓은 1주기 대학 구조개혁은 원래 취지와는 달리 또 하나의 ‘대학 서열화를 부르는 정책’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 당시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좋은 등급을 받은 대학과 상대적으로 낮은 등급을 받은 학교를 가르는 잣대로서 얻은 것보다 잃은 게 더 많다는 성토가 대학 곳곳에서 들렸다.

전문가들의 여러 의견을 수렴해 정부는 고등교육의 균형 발전을 위한 평가로 2주기 대학 구조개혁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균형 잡힌 대학 생태계를 조성하고자 ‘권역별’, ‘기능별’, ‘분야별’ 등으로 경쟁하는 구조로 보완되는 등 2주기 평가 기본계획의 윤곽이 나왔을 무렵 대한민국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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