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주의’ 겨냥, 지역 거점국립대 9곳 모두 ‘국립 서울대학’으로, 서울대만큼 예산 투자해야
지역사회 소멸 대안 질문엔 “지역 산업 살리는 필요조건은 지역에 세계적 대학 육성해야”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한국대학 생태계 살릴 돌파구…사립대에도 좋은 기회 될 것”
오세정 서울대 총장, 정종철 교육부 차관 정도로 대학을 치열하게 공부하고 고민하는 노력 필요

김종영 경희대 교수는 지역의 거점국립대 9곳을 모두 ‘국립 서울대학’으로 이름하고, 서울대만큼의 예산을 투자해 그 지역의 서울대로 만들자고 제안해 주목을 받고 있다. (사진 = 김종영 교수 제공) 
김종영 경희대 교수는 지역의 거점국립대 9곳을 모두 ‘국립 서울대학’으로 이름하고, 서울대만큼의 예산을 투자해 그 지역의 서울대로 만들자고 제안해 주목을 받고 있다. (사진 = 김종영 교수 제공) 

[한국대학신문 허지은 기자] ‘학벌주의’를 ‘학벌 자본주의’, ‘학벌권력’으로 규정하며 그 민낯을 고발해온 학자가 있다. 이제는 지역의 거점국립대 9곳을 모두 ‘국립 서울대학’으로 이름하고, 서울대만큼의 예산을 투자해 그 지역의 서울대로 만들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 방법으로 몇몇 대학이 지위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병목현상’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지난해 말 출간된 <서울대 10개 만들기>에는 이러한 김종영 경희대 교수의 견해가 고스란히 담겼다.

출판 이후 이 책은 한 인터넷 서점의 인기 도서 순위에서 ‘교육사/교육철학’ 분야 서적 중 주간 29위, 3주간 ‘대학교재/전문서적’ 분야 도서 100위 안에 드는 등 적잖은 관심을 받았다. 여러 국립대에서도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내용을 공유하기 위해 그를 초청했다. 어떤 구상이기에 이처럼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인지, 진정 서울대 10개를 만든다는 방안에 한국 대학의 새로운 활로가 숨어있는지 들어보기 위해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그 어느 때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김 교수를 만났다.

- 지난해 말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책을 펴냈다. 9개 지방 거점국립대를 서울대 수준으로 육성하자는 이야기를 담은 것으로 안다.
“이 책은 ‘왜 한국만 교육지옥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탐구이고 그 대안으로 10개를 전국에 만들자고 정책적으로 제안하는 책이다. 한국의 교육지옥은 서울대‧고려대‧연세대(SKY)로 향한 교육 고속도로가 단 하나밖에 없어서 생기는 병목현상 때문에 발생한다. 미국과 유럽대학들은 전국에 우수한 대학들이 골고루 퍼져 있어 이런 병목현상을 겪지 않는다.”

- 사실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이야기 하기에 앞서, 오랫동안 학벌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해왔다. 대한민국 학벌사회의 실상을 사회에 알리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온 것으로 안다.
“지방대를 서울대 수준의 대학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주장은 처음이다. 이제까지 지방대를 서울대 수준의 대학으로 육성해야 된다고 주장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기존의 ‘대학통합네트워크론’은 서울대 학위의 공유(공동학위제)를 주장했지 지방대를 서울대 수준의 대학으로 키우자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기존의 방안들은 대학의 역사와 구조, 대학의 국제비교, 창조권력으로서의 대학의 개념이 없었다. 따라서 극심한 혼란에 빠졌고 너무 많은 부분들을 개혁하려는 최대주의자 입장을 취해서 진전이 없었다.”

- 학벌주의 타파라는 큰 기치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문제가 쉽게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 문제를 ‘교육 난제’로 취급하고 최대한 겸손하게 접근해야 한다. 페르마 정리 같은 것은 ‘수학 난제’로 여겨졌고 수백 년 동안 수학자들이 열심히 최선을 다해 풀었다. 대학서열이라는 문제는 교육학이나 사회학에서 가르쳐 주지 않기 때문에 소위 ‘영혼을 끌어 모아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 대학사회학에서 지적하는 부분은 사람들이 대부분 대학을 경험해 보았기 때문에 대학을 잘 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대학사회학의 창시자 버턴 클라크(버클리 사회학과 교수, 작고)는 대학체제의 국제비교를 통해서 대학을 낯설게 보게 만들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대학의 역사와 구조, 대학체제의 국제비교, 창조권력과 지위권력으로서의 합으로서의 대학 등 많은 지식과 이론들이 필요하고 창조적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 대학서열 타파를 위해 대단히 치열한 공부, 고민, 노력이 필요하지만 이제까지 한국의 지식인들은 그렇지 못했다. 대학에 대해 매우 잘 아는 사람들은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읽고 단박에 깨닫는다. 예를 들어 오세정 서울대 총장(스탠퍼드 박사)은 책을 읽고 곧바로 수긍한다. 정종철 교육부 차관도 이제까지 나온 대학개혁안 중에서 가장 실현성이 높은 정책이라고 동의한다. 일반인들은 공부를 열심히 해야만 깨달을 수 있는 문제다. 학벌주의 타파를 ‘교육 난제’로 먼저 인정을 하고 겸손하게 최대한 성실히 끝까지 문제를 파고들어야만 한다.”

 - 대학의 위기가 현실이 된 요즘이다. 이를 지켜보며 어떤 생각이 드는지 듣고 싶다.
“OECD 통계에서도 잘 나와 있듯이 2018년 기준 한국 대학의 1인당 공교육비는 1만 1290달러로, 한국 초등학교 1인당 공교육비(1만 2535달러)보다 못하다. 한국 고등학교 1인당 공교육비는 1만 6024달러다. 이렇게 대학 공교육비가 고등학교와 차이가 크게 나는 OECD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OECD 평균 대학 공교육비는 1만 7065달러이며 미국은 3만 4036달러다. 교육부, 청와대, 교육계가 대학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4차 산업혁명을 초등학교에서 하나? 4차 산업혁명을 고등학교에서 하나? 지식경제의 핵심은 대학인데 모두 입시와 초중등교육에만 관심을 가진다. 교육 정치에서도 교사들의 힘이 막강해서 교수들은 실제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언론도 입시에만 관심을 가지기 때문에 대학 문제에 별로 관심이 없다. 책에서 표현했듯이 한국 대학은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 서울대 10개를 만들면 지방 거점국립대뿐 아니라 지방대학, 나아가 지역사회 소멸을 막을 수 있을까.
“막을 수 있다. 에드워드 글레이저나 리처드 플로리다와 같은 도시학의 대가들은 도시를 살릴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세계적인 대학을 세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미국의 많은 연구중심대학은 소도시나 시골에 있지만 교육을 위해 전국에서 학생들이 몰려든다. 강원도에 있는 민사고나 전주에 있는 상산고도 전국에서 인재들이 몰려들지 않나. 세계적 수준의 대학을 만들면 전국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국가들에서 인재들이 몰려든다. 19세기 독일대학이 가장 우수했기 때문에 미국에서 1만 명이나 유학을 갔다. 지금은 우수한 인재들이 미국대학에 유학을 간다. 지역 산업을 살리는 ‘필요조건’은 지역에 세계적인 대학을 세우는 것이다. 스탠퍼드, 버클리, MIT, 텍사스-오스틴, UC 샌디에고와 같은 곳이 있기 때문에 샌프란시스코, 보스턴, 오스틴, 샌디에고의 지역경제가 번영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스탠퍼드, 칼텍, UC 샌디에고는 지방의 무명대였다. 역사적 사례를 본다면 지방대도 서울대 수준의 대학이 충분히 될 수 있다.”

- 지방 소규모 국립대, 사립대를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사립대와 다른 국립대도 적극 찬성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좋다. 왜냐하면 서울대 10개만 정부가 지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OECD 평균 예산에 맞추기 위해서는 한국대학에 연 10조 정도 예산을 증액해야 한다. 대략 3조는 서울대 10개 만들기에, 7조는 다른 사립대와 국립대에 투자해야 한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한국대학의 생태계를 살리기 위한 돌파구이기 때문에 사립대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국립대 경쟁력만이 아닌, 한국 대학 전체가 경쟁력 강화가 시급하다는 의견이 많다.
“대학의 기능분화가 이뤄져야 한다. 대학은 크게 연구중심대학, 교육중심대학, 직업중심대학으로 나눌 수 있고 각자의 기능과 미션에 맞는 경쟁력 강화가 시급하다. 캘리포니 대학체제는 연구중심대학은 10개, 교육중심대학은 23개, 커뮤니티 칼리지는 116개로 이뤄져 있다. 커뮤니티 칼리지 2년을 졸업하고 연구중심대학으로 편입을 대규모로 설계해 놓았기 때문에 이 세 가지 대학 간의 병목을 최대한 제거했다. 학문을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다면 연구중심대학에서 얼마든지 석사나 박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길은 열려 있다. 모든 대학이 연구중심대학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창조권력으로서의 연구중심대학은 학벌이 아니라 학문을 위한 것이다.”

- 9개 대학을 서울대 수준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 하지만 고등교육 재정 확충은 쉽지 않은 문제다.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오랫동안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에 대한 논의가 있어 왔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어떤 형태로든 대학 주체들이 정치적으로 나서야만 가능한 일이다. 다가오는 지방선거와 교육감선거에서 지역 소멸을 막고 청년들에게 양질의 교육기회를 주기 위해 대학 주체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 혹자는 서울대 10개 구상을 듣고 대학 기관 간 수준 맞추기가 필요한지 되묻기도 한다. 대학 서열체제의 혁파가 대학 기관 간 수준차이에서만 기인하는 게 아닐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책을 열심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교육지옥의 원인과 대학서열 타파를 ‘교육 난제’로 취급하고 최대한 겸손하고 성실하게 접근해야 한다. ‘교육 난제’에 일단 머리를 숙이자. 아이들을 교육지옥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얄팍한 추측이나 경험에 의존하지 말자. 치열하게 공부하고 또 공부하자. 이 문제는 치열하게 공부해서 스스로 깨닫는 수밖에 없다. 모두 오세정 서울대 총장이나 정종철 교육부 차관 정도로 대학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치열하게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 서울대 10개 만들기 외에도, 학벌사회 타파를 위해 필요한 정책적 변화는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나.
“전국에 서울대 수준의 대학을 많이 만들고 연구중심대학, 교육중심대학, 직업중심대학 사이의 병목을 해결할 수 있게 대대적인 편입 등 교육기회를 구조적으로 확충시켜야 한다. 계급병목을 해소하기 위해서 장기적으로는 대학무상교육이 정책적으로 실현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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