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꿈 ‘예술가’…부모의 반대, 사회적 편견 있었지만 포기 안해
늦깎이 미대 신입생으로 꿈 이어가…덕후에서 독보적 전문가 반열 올라
‘동양의 디즈니’ 토에이 애니메이션에서 국내 유일 웹툰 컨설팅 자문
국내 웹툰 연간 매출액 1조 원 돌파…한국 웹툰 전 세계 시장 이끌어
“후학에 아낌없이 주고파” “웹툰 시장의 미래 밝다” “웹툰은 세계인이 즐기는 문화”

김정영 연성대 웹툰만화콘텐츠과 학과장.(사진=김정영 교수 제공)
김정영 연성대 웹툰만화콘텐츠과 학과장.(사진=김정영 교수 제공)

[한국대학신문 이중삼 기자] 학창시절 ‘네 꿈이 뭐냐’라고 누군가 물어보면 그 당시 답은 어김없이 ‘예술가’였다. 주위에서 그림에 소질이 있다는 말에 이 길이 천직이라고 여겼다. 김정영 연성대 웹툰만화콘텐츠과 교수의 팽이 같은 인생은 이렇게 출발했다. 

예술가가 되기로 결심한 김 교수였지만 부모님 반대에 가로막혀 꿈을 잠시 내려놨다. 그는 1966년생으로 학창시절만 해도 만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썩 좋지 않았다. “그 당시만 해도 만화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았다. 만화방에 주로 학교를 안가는 불량청소년들이 자리했고 심지어는 그림을 그리면 굶어 죽는다는 인식도 있었다”며 “이런 상황에 아들이 예술가가 되겠다고 하니 어느 부모도 좋아할리 없었다”고 회상했다. 

예술가라는 꿈을 품고 미대 진학을 원했지만 부모라는 커다란 벽에 부딪힌 그는 어차피 예술가가 못될 바엔 차라리 이른 사회생활을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공고를 선택했고 대학 대신 취업해 직장생활을 했다. 하지만 예술가의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군대를 제대하고 다시 연필을 잡았고 26살 늦은나이에 홍익대 미대 신입생이 됐다. “고교 졸업 후 대학을 바로 가지 않았다. 군대를 제대하고 제일 잘 하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다가 역시 그림밖에 없다는 판단이 섰고, 다시 공부해 홍익대 미대에 들어갔다”고 털어놨다. 

‘나에게 웹툰이란?’ 기자의 질문에 ‘끝없는 도전’이라고 답한 김정영 연성대 웹툰만화콘텐츠과 교수를 지난 14일 전화 인터뷰로 만났다.  

■ 후학 양성 뜻 가져 전문대학 교수 길 걸어 = 예술가의 길로 접어들고 만화의 조형성과 대중성 그리고 메시지가 가지는 미학적 현상에 주목하면서 만화에 대한 학문적 연구를 병행했다. 예술가와 만화 덕후로서의 삶을 단단히 구축해나간 그는 대학 졸업 후 꾸준히 문화기획자와 컨템퍼러리 아티스트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특히 일본 애니메이션 기업 ‘토에이 애니메이션’에서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웹툰 컨설팅 자문위원직을 맡으며 독보적인 전문가 반열에 올랐다. 참고로 토에이 애니메이션은 1956년 설립된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로 △원피스 △드래곤볼 △슬램덩크 △은하철도999 △마징가Z △미소녀 전사 세일러문 등 다양한 애니메이션 IP를 보유한 ‘동양의 디즈니’라고 일컫는 세계적인 회사다. 

이외에도 △한국만화애니메이션학회 논문 심사위원 △한국수출입은행 콘텐츠 심사위원 △한국기초조형학회 논문 심사위원 △NCS 국가직무능력표준 만화애니분야 개발전문위원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만화애니분야 중앙교육위원회 경기·인천·강원지역위원장 △한국문화콘텐츠만화대상 심사위원 △가문의 영광·7인의 새벽·조폭 마누라2(영화미술감독) △(전)청강문화산업대 웹툰만화콘텐츠과 교수 등 수많은 대내외 활동을 섭렵해 웹툰 분야의 ‘베테랑’으로 꼽힌다. 

20여년 전에도 만화계에서 이미 이름난 기획자로 활동하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청강문화산업대 만화과 교수가 됐다. 일반대학이 아닌 전문대학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당시에는 만화교육이 전문대학 인력 양성 시스템에 최적화된 전공이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전문대학 만화과 교수가 됐다. 당시 4년제 대학은 관련학과가 거의 없었다”며 “초창기부터 교수가 돼야겠다는 마음은 없었지만 만화가 지지고 있는 다양한 문화적 발전 가능성에 주목하고 전문지식과 노하우가 쌓일수록 우수한 콘텐츠 인력 양성에 대한 사명감으로 지금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 한국의 웹툰이 전 세계서 통하는 이유 = 김 교수에 따르면 웹툰의 시작점은 특정돼 있지 않다. 자연발생적으로 시작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한국 역사를 보면 웹툰의 시작은 20년 내외로 보고 있다. 개인적으로 작가 강풀이 본격적으로 활동하던 시기가 웹툰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며 “웹툰은 원래 ‘디지털만화’로 불렸다. 꼭 웹툰이라고 하지 않고 디지털이 일상화되고 만화가 온라인으로 옮겨지면서 웹툰이라는 용어가 자연스럽게 정리됐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일례로 팝이 K팝이 돼서 한국 대중음악이 세계시장을 점령했듯이 디지털분야에서 한국의 디지털만화는 웹툰이라는 단어로 정리되고 이 단어가 세계화가 되면서 일반화됐다고 보면 이해하기 쉽다”고 덧붙였다. 참고로 웹툰의 사전적 정의는 인터넷을 의미하는 ‘웹(Web)’과 만화를 뜻하는 영어 ‘카툰(Cartoon)’의 합성어로 한국에서 처음 사용됐다. 

그는 웹툰이 전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이유를 두고 ‘온라인’과 ‘적응력’을 꼽았다. “먼저 네이버와 카카오 등 포털에서는 전략적으로 접근했다. 아마 이들도 처음에는 웹툰 산업이 크게 성장하지 못했을 것으로 내다봤지만 레진코믹스에서 유료화 서비스에 성공하면서 돈이 된다는 인식이 자리잡았다”며 “특히 웹툰은 스토리가 탄탄하다 보니 드라마와 게임 더 나아가 영화까지 성공을 거두면서 업계의 화두로 떠올랐다”고 강조했다.  

이어 “과거에는 나라마다 문화의 경계가 존재했다. 언어의 장벽과 문화의 차이로 해외문화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온라인이 세대다. 다시 말해 전 세계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비슷한 정서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며 “이는 한국 콘텐츠가 해외의 동시대 사람들에게도 비슷하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의미하며 문화의 경계가 사라졌다는 것을 말한다”고 했다. 

실제로 2020년 12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공개한 ‘2020 만화산업 백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웹툰 시장 규모는 지난해 1조 원을 돌파했다. 2013년 1500억 원에서 6년만에 약 7배 가까이 성장했다. 웹툰 시장은 매년 평균 20% 이상 성장해나가고 있다. 특히 글로벌 웹툰 시장을 합치면 7조 원 규모에 육박한다.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적응력이다. “미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은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면서도 정착하기까지 시간이 오래걸린다. 호흡이 길다는 얘기다. 반면 한국은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며 “빠른 적응력에 한국의 흥망성쇠가 전부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빠른 시간 내에 웹툰 산업구조를 잘 구축하고 탄탄하게 성장시켜나가고 있다. 여기에 웹툰을 소비하는 독자들과 웹툰작가들도 빠르게 적응하는 게 한국이 웹툰 강국이 될 수밖에 없는 특징이라고 보면 된다”고 확언했다.

웹툰작가 양성 대학이 더 늘어날 수만 있다면 = 그는 앞으로 웹툰 시장의 미래는 밝다고도 단언했다. “웹툰이 세계 시장에 통할 것이라고 상상을 못했듯이 미래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현 기조나 세계인의 기호를 보면 웹툰의 미래는 밝다”며 “과거에는 콘텐츠를 좁은 지역에서만 소비했다면 이제는 아예 글로벌 시장을 염두해두고 제작한다. 이런 시스템과 창작능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한국이 독보적이다. IT와 결합된 디지털콘텐츠는 한국이 전 세계에서 선도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웹툰은 세계인이 즐기는 문화가 됐다”고 부연했다.

끝으로 그는 웹툰을 한마디로 ‘끝없는 도전’이라고 일컬었다. “제 삶이 계속 도전이었다. 초창기에 만화를 공부할 때만 해도 모두가 반대했다. 격 떨어진다는 얘기까지 들어봤다. 하지만 고정관념을 탈피해 공부에 매진했고 지금은 행복하다”며 “청강문화산업대에서 연성대로 옮긴 이유도 도전이었다. 청강문화산업대는 사실 웹툰작가 양성소라고 일컬어진다. 하지만 웹툰작가를 양성하는 곳이 한 곳이라도 더 늘어난다면 산업계는 우수 인력을 더 공급받을 수 있다. 앞으로도 나에게 웹툰은 계속 도전일 것이다”고 인터뷰를 끝맺었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