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 통해 정시 확대 강제하면서 대학의 학생 선발권 규제하는 교육부
2025년부터 전면시행될 고교학점제와 배치되는 정시 확대 기조 20대 대선에서도 이어져
미래 인재 양성 초점 맞추고, 자율성‧공정성‧투명성 담보할 입시 제도 절실

# 윤석열 정부에서 추진하는 고등교육 개혁이 어떤 식으로 추진될지 교육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동안 정부가 추진한 고등교육정책의 기조를 보면 결과적으로 대학의 자율성을 억제하고 정부의 영향력을 강화했다는 측면에서 대학가의 비판을 줄곧 받아왔다. 하지만 내달 10일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에서는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치며, AI혁명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혁신 생태계 허브로서 기능해야 할 대학이 중요한 역할을 해주기를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케이정책플랫폼은 ‘대학혁신을 위한 정부개혁 방안’을 주제로 ‘K-Policy 브리프’를 발표했다. 핵심은 대학의 자율성 확대, 네거티브 규제체제로 전면 개편, 교육부의 기능 재편 등이다. 이에 본지는 정책 제언에 참여한 고등교육 전문가들과 함께 △규제개혁 △재정개혁 △연구·혁신·평생교육 △입시제도 등을 중심으로 대학혁신을 위한 정부개혁 방안을 짚는 연재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주>

[한국대학신문 장혜승 기자]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감옥에 돈을 쏟아붓는 격이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의 일갈처럼 한국의 입시 제도는 과거에 머물러 있다.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이라는 시대적 파고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밑바탕에는 일생을 결정짓는 수능 성적 때문에 한 해 4명의 수험생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입시 제도’가 자리한다. 현행 입시 제도는 많은 학생을 실패자로 만드는 낡은 교육 모델의 산물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대학입시 제도가 자율성을 확대하는 방향에서 국민적 합의를 통해 개편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고교교육 정상화와 공정성 제고도 놓치지 말아야 할 가치다. 미래인재 양성을 위한 대학입시제도 구축이 과제로 제시된다. 지능정보사회로 대표되는 교육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수능의 절대평가와 자격고사화 △수시와 정시 비율 자율 조정 △학교생활기록부와 자소서에 대한 대학 자율성 부여가 구체적 방안으로 거론된다.

■ 대학의 학생 선발권 옭아맨 정부…대학의 자율성은 어디로 = 대학의 자율성은 헌법이 보장한 가치임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대학의 학생 선발권을 규제해왔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이다.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은 대입전형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고 합리적으로 대입전형을 운영해 정상적인 고교 교육의 여건을 조성하는 데에 기여한 대학에 정부가 재정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지난 2018년과 2019년 정부의 대입정책 기조가 ‘정시 확대’로 선회하면서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도 정시 확대를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재정비됐다.

사업의 참여 조건은 ‘정시 수능 선발 확대’다. 지난해 교육부가 발표한 ‘2021년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 기본계획’에 따르면 2022학년도 대입에서 수도권 대학은 정시 수능위주전형을 30% 이상, 지방 소재 대학은 정시 수능위주전형 또는 학생부교과전형을 30% 이상으로 하겠다는 전형 조정 계획서를 제출하도록 규정했다. 특히 교육부가 지정한 △건국대 △경희대 △고려대 △광운대 △동국대 △서강대 △서울시립대 △서울대 △서울여대 △성균관대 △숙명여대 △숭실대 △연세대 △중앙대 △한국외대 △한양대 등 서울 소재 16개 대학은 2023학년까지 정시 수능위주선발 비율을 40% 이상으로 확대하도록 했다. 

정시 확대 기조는 지난 20대 대선에서도 이어졌다. 2025년 전면 시행 예정인 고교학점제 제도와 배치되는데도 모든 대선 후보는 정시 확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고교학점제는 고등학생이 대학교처럼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 듣고 일정 학점을 채우면 졸업하게 하는 제도다. 그러나 학생의 선택과목이 수능 과목에 들어가지 않으면 자연스레 공부를 소홀히 하게 돼 오히려 수능 과목에 대한 사교육을 부를 수 있다. 애초 수능 자격고사화, 학생부종합전형(이하 학종) 강화와 짝을 이루는 제도로 설계됐지만 ‘조국 사태’가 터지면서 제동이 걸렸다.

학종의 반영 요소 중 하나인 자기소개서를 폐지한 것도 대학의 선발권을 옭아맨 사례로 지목된다. 지난해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이 발표한 ‘2024학년도 대학입학전형기본사항’에 따르면 학종 전형의 평가 요소에서 자기소개서가 제외되고 학교생활기록부와 면접 위주로 평가가 이뤄진다. 학생부에서 주요 비교과 영역으로 꼽히는 △자율동아리 활동 △개인 봉사활동 실적 △교외 수상 실적도 대입에 반영되지 않는다. 이는 교육부가 지난 2019년 11월 발표한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방안’에 따른 조치다. 입학 심사관들의 주관적인 평가가 반영되기 쉬운 항목들을 배제하자는 취지다.

교육부가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을 통해 대학의 선발권을 규제해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2022학년도 수능을 치르는 학생들. (사진=서울시교육청)
교육부가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을 통해 대학의 선발권을 규제해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2022학년도 수능을 치르는 학생들. (사진=서울시교육청)

■ 차기 정부 입시제도는 ‘자율성‧공정성’ 조화 이뤄야 = 입시제도는 미래 인재 양성에 초점을 맞추고 자율성과 공정성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케이정책플랫폼의 ‘대학혁신을 위한 정부개혁 방안’에서 “대학입시는 학생의 신뢰보호 차원에서 현 제도를 당분간 유지하되 장기적으로 △대학의 자율성 확대 △고교교육 정상화 △공정성 제고 관점에서 국민적 합의를 통한 보완적 개편안을 도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는 △수시와 정시 비율 자율 조정 △수능의 절대평가와 자격고사화 △학교생활기록부와 자소서에 대한 대학 자율성 부여의 방안을 제시했다.

먼저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측면에서 수시와 정시 비율 자율 조정 필요성이 제기된다. 정제영 교수는 “장기적으로 수시와 정시 비율에 대한 정부의 강제 조정을 철폐하고 대학에 자율적 선택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교육법학회의 <대학입시 공정성 확보를 위한 법적 고찰> 논문에서도 “대학 입시를 ‘고등학교와 대학의 협력에 의해 완성되는 작업’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며 “헌법은 이를 대학의 자율성과 교육제도의 국회에의 위임이라는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시와 정시 비율에 대한 명료한 법적 근거 제시가 어려우나 현행 약 30%의 정시를 50% 정도까지 확대시키는 것이 교육의 제공자보다는 교육의 수요자를 더 고려함과 동시에 대학입시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방안”이라고 덧붙였다.

한번의 시험으로 대입 결과가 결정되는 수능의 영향력을 약화하는 방안도 함께 거론된다. 정제영 교수는 “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를 하면서 수능을 연 1회 이상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인생의 중요한 시험을 한번밖에 못 보는데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점수 1점 차이로 인생이 좌우된다는 건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의 중요성도 언급했다. 정 교수는 “영어를 절대평가로 바꾸니까 수학 사교육이 증가하는 풍선효과가 생겼다. 덩달아 정시에서 수학의 반영 비율도 높아졌다. 전 과목을 절대평가로 바꾸고 수능이 자격고사화되면 지금과 같은 심한 경쟁도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도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배 교수는 “수능은 학생을 일렬로 줄세울 수 있다는 점에서 경제적이긴 해도 교육적으로는 타당하지 않다”며 “정부는 수능을 가급적 자격고사화해서 학생들이 기본 수학능력이 있는지 점검하는 기회로 삼도록 하고 대학도 교육적 책무성 차원에서 대입에 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교생활기록부와 자소서에 대해 대학의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제영 교수는 “학생부와 자소서 형식이나 활용의 한계를 교육부가 정하고 그밖의 구체적 활용은 대학에 맡겨야 하는데 무작정 폐지한다면 입시전형의 근거가 없어져 대학의 선발권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이어 “학생부와 자소서가 폐지되면 학생부교과전형과의 차이가 없어지는데 사실 내신성적만 반영해서 뽑게 된다. 학생의 다양성을 평가한다는 측면에서 부적합하다”고 덧붙였다. 
 
대학 입시제도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전형 요소 발굴 노력도 강조된다. 배상훈 교수는 “학종이 무조건 불공정하다고 판단해 제거해버려선 안된다”며 “학습은 교수와 학생, 교사와 학생 사이에서 일방적으로 이뤄지는 전달이 아니고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일어나는 성장에 관련된 모든 총체적 활동이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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