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 토플 등 공인영어성적 있어야만 지원 가능했던 미국 대학
유웨이, 2020년 4월 협약 체결 이후 수능 성적만으로 미국 대학 지원 가능
수험생들 “한국 대학보다 진로 설계 폭 넓어져”, 전문가 “한국 수능 공신력 인정받아”
미국 대학 졸업장 해당 분야 유용한지 확인 필요, 진로에 대한 고민 없는 유학 경계도

[한국대학신문 장혜승 기자] 수능성적만으로 미국 대학에 지원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동안 미국 대학에 지원하려면 표준 입학시험인 SAT, ACT와 TOFEL, IELTS와 같이 공인어학성적을 제출해야 했다. 유웨이가 2020년 별도의 입학시험 성적이나 토플 등의 어학성적 제출없이 수능과 내신 성적만으로 미국 대학에 지원할 수 있게 물꼬를 튼 게 계기가 됐다.

수험생들은 정시에서 실패 부담 없이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는 반응이다. 진로 설계 폭이 넓어졌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한국에서는 수명이 다했다고 평가받는 수능이 역설적으로 미국에서는 공신력을 인정받았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무턱대고 유학을 준비하기보다 본인의 진로에 도움이 될 대학을 확인해서 지원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 SAT나 토플 없이 수능 성적만으로 미국 대학 지원 가능 = 그동안 미국 대학에 지원하려면 표준 입학시험인 SAT, ACT와 TOFEL, IELTS와 같이 공인어학성적을 제출해야 했다. 수능과 내신 성적은 참고 자료로만 활용돼왔다. 유웨이에서 2020년 4월 우리나라 수능으로 해당 시험들을 대체해 지원이 가능하도록 협약을 맺으면서 수능 성적만으로 미국 대학 지원이 가능해졌다.

수능 성적만으로 지원 가능한 미국 대학은 2020년 8개에서 2022년 현재 50여 개까지 늘어났다. 송재원 유웨이글로벌 해외사업팀장은 “논의 중인 대학까지 포함하면 60위권 대학교들까지 확대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해당 협약을 추진하게 된 계기에 대해 송 팀장은 한국의 성적지상주의를 꼽았다. 그는 “우리나라 학생들은 본인이 하고 싶은 전공보다는 성적에 맞춰 대학을 진학한다. 지원 횟수도 정시는 가나다군 세 개밖에 없고 떨어지면 1년을 더 준비해야 하는 위험을 안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과 달리 ‘교차지원’의 개념이 없다는 점도 작용했다. 송 팀장은 “한국과 달리 미국에는 문이과 개념이 없어서 교차지원 개념도 없다. 문과 학생이 미국 대학 이공계열에 지원할 수 있어 선택의 폭이 보다 넓다”고 언급했다. 

수능 성적과 내신 성적의 차이를 보정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서울 외고나 자사고 학생들의 경우 내신 성적과 수능 성적의 차이가 크게는 3등급까지도 난다는 게 송 팀장의 설명이다. 송 팀장은 “내신 성적이 안 좋아 미국 대학 진학을 포기했던 학생들이 많은데 수능 성적만으로 지원 가능한 대학이 많아지면서 학생들에게도 또 다른 기회가 생긴 셈”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12월 코엑스에서 개최된 정시 대입박람회. 수험생들이 수능성적만으로 미국 대학에 지원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사진=한국대학신문 DB)
지난해 12월 코엑스에서 개최된 정시 대입박람회. 수험생들이 수능성적만으로 미국 대학에 지원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사진=한국대학신문 DB)

■ 합격자 평균 등급 ‘3등급’…수험생 “미국 대학 진학 시 진출 분야 다양해” = 그렇다면 실제 미국 대학에 수능 성적만으로 합격한 학생들의 평균 등급 컷은 어떻게 될까. 유웨이 해외사업팀의 분석에 따르면 합격자들의 수능 평균 등급은 2.5~3등급이었다. 

같은 미국 소재 대학이더라도 수능 반영 과목이 달라 학교별 선발 기준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수능 영어 난이도가 충분히 높다고 판단해 영어 1등급일 경우 성적을 제외해주는 곳도 있지만 수능에는 말하기‧쓰기 평가가 없는 만큼 등급과 상관없이 지원자에게 영어 면접이나 공인성적을 요구하는 대학도 있다. 수능 성적만으로 선발하는 대학이 다수지만 내신 일부를 고려해 선발하는 대학이 있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뉴욕주립대-알바니 △사우스다코타주립대 △테네시공과대학의 경우에는 수능 영어 2등급만 받아도 영어공인성적 제출이 면제된다. 

지원자들의 선호 전공은 국내 대학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웨이 해외사업팀 분석에 따르면 약대와 의치대, 생명공학이 가장 인기가 많았다. 그 뒤를 △화학 △생물학 △컴퓨터공학 △기계공학 △전자공학이 잇따랐다. 송 팀장은 “문과 출신 학생들의 이과 교차지원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며 “국내 대학 인기 전공이 유학에서도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수능 성적으로 미국 대학에 지원한 학생 가운데는 국내 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도 있어 눈길을 끈다. 올해 서울에 소재한 S대학 바이오생명공학과에 입학한 신모 씨(여‧20)는 미국 대학 두 곳에 지원해 대학 두 곳(약대)에 모두 합격했다. 신  씨는 국내 대학에 재학 중이면서도 미국 대학에 지원한 이유에 대해 “장래희망이 제약회사 연구원인데 한국에선 인사 분야를 많이 뽑는다고 들었다. 미국 약대에 진학하면 졸업 후 연구 쪽으로 가기가 더 쉽다고 들어서 지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 전문가 “미국 대학 수능 공신력 인정했다는 의미” “진로에 도움될 대학 지원해야” = 이처럼 한국 수능 성적으로 지원 가능한 미국 대학이 증가하는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미국 대학이 한국 수능의 공신력을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한국에서는 생명과학 출제 오류 논란으로 수명을 다했다고 평가받는 현상이 미국에서는 오히려 문제의 난이도를 인정받았다는 설명이다.

송재원 팀장은 “미국 대학에 수능 성적 지원을 제안하는 과정에서 영어와 수학 문제를 예시로 보여줬더니 대학 관계자들이 다 놀랐다”며 “일례로 한국 수능 영어 영역에서 4개를 틀리면 2등급이고 91점부터 1등급인 점수 체계를 설명했더니 미국 대학 입학처 관계자들이 한국 학생들이 이렇게 어려운 문제를 푸냐고 혀를 내둘렀다”고 전했다. 송 팀장은 또 수능 성적만으로 지원가능한 대학이 증가한 이유에 대해서도 “수능이 SAT를 안 보고 뽑아도 될 정도로 어려운 수준의 시험이란 것을 미국 대학이 깨달은 것”이라며 “출제 오류 논란이 있었던 생명과학 문제도 고등학생이 풀 수준의 문제가 아니란 점도 오히려 수능 공신력 인정에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덕난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연구관도 “조기유학과 달리 대학 단계에서 학생들이 미국 유학을 가는 현상은 개인의 진로 선택을 고려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인다”며 “미국 대학이 한국 수능의 공신력을 인정했다는 의미로 보인다”고 짚었다. 

진로에 대한 고민 없는 유학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박주호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는 “무턱대고 유학을 간다고 성공이나 취업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며 “수험생이 관심있는 분야를 확인하고 지원하는 대학이 미국에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는지와 그 대학 졸업장이 그 분야에서 유용한지도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박 교수는 “미국 대학 중에 한국 대학보다 형편없는 데도 많은 현실적 상황도 유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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