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교육법상 각종학교로 분류된 ‘한예종’…대학으로 지위 변경, 대학원 설립하는 특별법 발의
한예종, “실기 중심 예술교육 포기가 아닌 심화된 예술교육, 창의적 예술가 양성 위한 노력”
반대 피력하는 예술대 교수들 “실기 중심 한예종에 이론 심화 연구 대학원 맞지 않아” 타당성 의문 제기
서울 소재 16개교 대학원 신입생 충원율 86%대 그쳐…한예종 대학원 설치는 일반대 대학원과 중복 ‘특혜’?

게 한예종도 일반대 대학원처럼 석‧박사 학위과정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안’(이하 한예종 설치법)이 발의돼, 한예종의 설립 취지와 맞지 않는 특혜법이라는 반대 의견이 나오고 있다. (사진 = 아이클릭아트)
게 한예종도 일반대 대학원처럼 석‧박사 학위과정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안’(이하 한예종 설치법)이 발의돼, 한예종의 설립 취지와 맞지 않는 특혜법이라는 반대 의견이 나오고 있다. (사진 = 아이클릭아트)

[한국대학신문 허지은 기자] ‘한국예술종합학교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안’(이하 한예종 설치법)이 발의된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법이 통과되면 한예종도 일반대 대학원처럼 석‧박사 학위과정을 운영할 수 있게 되는데, 한예종의 설립 취지와 맞지 않는 특혜법이라는 반대 의견이 제기된 상황이다.

지난해 11월과 올 3월 한예종 설치법이 연달아 발의됐다. 발의자와 발의 시점에는 차이가 있지만, 두 법안 모두 한예종을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국립학교로 변경하고, 석사와 박사 학위과정의 대학원을 두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현재 한예종은 고등교육법상 각종학교로 분류돼있다. 고등교육법상 각종학교는 대학(산업대‧교대‧산업대‧전문대‧방송대 등)과 유사한 교육기관이다. 하지만 대학과 유사한 명칭을 사용할 수 없고, 고등교육법상 대학들이 설치할 수 있는 대학원을 둘 수도 없다.

한예종에서 취득한 학점으로 예술사 학위를 받으면 학사 학위로 인정되지만 정확히는 학사학위를 직접 수여할 수는 없게 돼 있다. 한예종의 ‘예술 전문사 과정’을 이수한 사람도 일반대학원의 박사과정에 진학할 수는 있지만, 예술 전문사 과정 이수 자체는 석사나 박사 학위로 인정되지 않는다. 한예종 설치령보다 상위법인 고등교육법에 의해 한계가 설정된 것이기에, 한예종에 석‧박사 학위과정을 두려면 설치법을 별도 제정하는 것이 사실상 유일한 방안이다.

예술대학들은 한예종에 대학원을 둘 수 있게 하는 한예종 설치법에 반발하고 있다. 문제를 삼고 있는 것은 석‧박사 과정을 두는 것이 한예종의 설치 목적과 상충되고, 지금까지 대학에 비해 규제에서 자유로웠던 한예종에 형평성에 어긋나는 조치라는 점에서다. 

이러한 맥락을 이해하려면 한예종의 특수성을 먼저 알아야 한다. 한예종이 각종학교로 분류돼있는 것은 설립 목적과 관계가 있다. 한예종은 실기, 대학은 이론을 강조한다. 한예종은 설치령에 따라 예술영재교육, 예술실기교육을 통한 전문 예술인 양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고등교육법에서 대학을 학술이론과 그 응용방법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곳으로 정의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이대영 전국예술대학교수연합회 회장(중앙대 예술대학원장)은 한예종 설치법을 반대하는 이유로 “한예종의 대학원 설치는 일반대 대학원과 중복의 문제가 있다”며 “학문과 이론 위주의 일반대가 실기에 약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한예종과 같이 실기 중심의 문화예술인 양성 기관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대학으로 존재하는 한국전통문화대학교는 종합대학의 예술대학과 교육 분야로도 구분이 되지만, 한예종과는 교육 분야의 구분은 크지 않고 이론과 실기라는 차이점으로 특성화 된 곳”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한예종은 “대학원 설치는 실기 중심 예술교육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한예종이 기존보다 더 발전되고 심화된 예술교육을 하기 위한 자기 혁신의 과정이자 창의적 예술가 양성을 위한 노력”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백정하 한국대학교육협의회 고등교육연구소장은 “석사와 박사과정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이론과 학문 중심의 과정임을 전제하는데, 이는 실기를 강조한 한예종의 설립 취지와는 맞지 않다”며 “대학원을 설치한다 하더라도, 이론과 학자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박사 과정까지 설치하도록 하는 것은 한예종의 설립 취지와 더더욱 맞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 대학 정원감축 기조 속,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한예종만 정원 자율 조정 특혜? = 한예종 설치법이 일종의 특혜라는 주장은 정원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 우선 한예종과 대학, 일반 대학의 대학원은 운영 부처가 다르다. 대학이 교육부의 관리‧감독을 받는 것과 달리 한예종은 문화체육관광부의 관할 아래 운영된다. 따라서 교육부의 관리와 제재로부터 한예종은 비교적 자유롭다. 이로 인해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가 발생하는 점이 바로 정원 관리다.

대학의 학생정원은 대학설립운영규정에 따라 정해진 범위 내에서 정해야 하고, 심지어 교육부 장관이 정원 감축, 학과 폐지, 학생 모집정지 등의 조치를 내릴 수 있다.

대학원 역시 사회적 인력 수요와 인력 수급정책, 법적 기준 등에 따라 정원을 포함한 세부 사항은 교육부 장관이 정하도록 돼 있다. 기본적으로 대학원 학과 정원 조정은 대학이 자율 결정하게 돼 있으나 입학정원을 늘리려면 교육부의 사전 심의와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현재 교육부는 대학원 정원 동결 또는 감축 기조를 유지하고 있어 사실상 대학원들의 정원 증원은 막혀있다. 이는 교육부의 2022년 대학원 정원조정 및 설치 세부기준 안내에도 명시된 사항이다.

실제로 교육부에 따르면 대학원들은 최근 5년간 석사 입학정원과 박사 입학정원 모두 줄이고 있는 추세다. 2016년 석사 입학정원은 10만5125명, 박사 입학정원은 2만5667명이었으나 2020년에는 각각 10만3734명, 2만5377명으로 감소했다.

반면 한예종 설치령에 따르면 한예종은 정원을 학칙으로 정할 수 있다. 한예종 설치법이 통과되더라도 한예종은 정원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학칙으로 정할 수 있다. 대학 정원의 ‘범위’를 한정하는 것과 다른 것이다. 또한 한예종 설치법에서는 이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승인을 얻도록 하고는 있으나 교육부 장관의 승인을 얻을 의무는 강제하지 않았다. 문화체육관광부의 허가만 있다면 한예종은 정원을 마음껏 늘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서울 소재 한 예술대학 교수는 “한예종이 대학원을 운영하게 될 경우, 일반대 학부와 대학원 모두 인재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 우려된다”며 “한예종은 국립 교육기관으로 정부에서 풍부한 지원을 받고 있고 정원도 마음대로 늘릴 수 있어 일반대와 다른 출발선상에 놓여있다. 여기에 학위 수여 권한도 갖게 된다면 이는 더 큰 혜택을 받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진 = 아이클릭아트)
(사진 = 아이클릭아트)

■ 서울 소재 주요 대학원 충원율도 미달인데…추가적 석·박사 입학정원 늘려야 하나 = 고등교육 전체로 봤을 때, 추가적인 석‧박사 입학정원을 늘리는 일이 필요한가도 살펴봐야 할 지점이다.

한예종은 설치법을 제정해 대학원을 운영해야 하는 이유로 “한예종 학생들이 각종학교 지위로 인해 사회적으로 공인되는 학위를 받지 못하는 피해를 보고 있다”며 “예술 전문사를 거친 학생들이 학교지위를 이유로 합당한 학위를 수여받지 못하는 불공정한 규제를 해소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대영 전국예술대학교수연합회 회장은 “이미 한예종에서 실기로 예술 교육을 받고 이론과 학문적으로 심화된 연구를 하고 싶은 이들은 일반대 대학원에 진학하고 있다”며 “추가적으로 대학원을 신설할 필요가 크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만약 한예종 설치법이 통과돼 한예종에도 대학원을 두게 되면 우리나라 대학원 입학정원은 한예종 대학원 정원만큼 늘어나게 된다.

하지만 현재 국내 대학 대학원은 입학생을 100% 채우지 못하고 있다. 교육부가 현재 대학원 정원을 규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2016~2020년 대학원 충원율’에 따르면 이 기간의 서울 소재 주요 16개 대학의 대학원 신입생 충원율은 평균 86.1%에 그쳤다. 비교적 학생 선호도가 높은 서울 소재 16개 대학의 대학원들도 학생 미달을 겪고 있다는 의미다.

구체적으로는 △2016년 87.4% △2017년 85.9% △2018년 84.8% △2019년 84.4%로 매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 기간 서울대 일반대학원 신입생 충원율 역시 △2016년 85.7% △2017년 84.3% △2018년 79.2% △2019년 77.2%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은 건국대‧경희대‧고려대‧광운대‧동국대‧서강대‧서울대‧서울시립대‧서울여대‧성균관대‧숙명여대‧숭실대‧연세대‧중앙대‧한국외대‧한양대 등 총 16개 대학이다.

(사진 = 아이클릭아트)
(사진 = 아이클릭아트)

■ 한예종 “대학 간 교류협력 활성화 기대” vs 타 예술대학 “학교 지위 변경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가능” = 한예종이 설치법 제정의 근거로 들고 있는 ‘대학 간 교류’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예종은 “교육부의 통제 하에 현 전문사(석사과정) 정원을 유지하면서 학교의 지위만을 각종학교에서 대학으로 변경하는 것으로, 타 예술대학과 동등한 지위에서 학점교류제, 공동학점제, 공동워크숍, 교수·강사·학생 교환 등 다양한 교류협력이 가능하게 된다면 예술교육의 질적 향상과 해외 유학생 유치를 도모할 수 있어 한예종과 타대학이 함께 상생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대영 회장은 “굳이 학교의 지위를 변경하지 않더라도 교류는 충분히 가능하다”며 “한예종이 이미 4년제 종합대학과 교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한예종 설치법이 발의되기까지 대교협과 예술대학 관계자들의 의견 수렴을 거치지 않은 점도 논란거리다. 이대영 회장은 “법률안이 발의되기 전 관련 기관의 의견 수렴을 거쳐야 하는데, 한예종 설치법은 그렇지 않았다. 발의가 된 후 쟁점이 있다는 것이 확인되자 국회가 교육부에 의견을 구했고, 그제서야 교육부를 통해 예술대학도 의견을 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이들은 교육부를 통해 한예종 설치법 통과 반대 의견을 전한 상황이다.

대교협 관계자 역시 “해당 법안에 대해 의견 회람을 요청받은 적이 없다”며 이번 본지 취재를 통해 해당 사실을 처음 접했다고 설명했다.

한예종 설치법은 현재 국회 소관 위원회인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법안심사소위원회에 회부돼 있지만 통과 전망이 불투명하다. 한예종 설치법이 이미 같은 이유로 발의됐으나 무산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5년 역시 한예종에 대학원을 설치하는 것을 골자로 한 ‘한국예술학교 설치법’이 발의됐으나 예술대학 교수들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당시에도 한예종의 설립 취지와의 정합성 등이 도마 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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