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정 교육과 혁신 연구소 소장

이혜정 교육과 혁신 연구소 소장
이혜정 교육과 혁신 연구소 소장

각국의 대입 시험, 무엇을 측정하나?
우리의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추구하는 인재상은 ‘바른 인성을 갖춘 창의 융합형’ 인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세계의 미래학자들도 21세기에 필요한 역량으로 ‘비판적 사고력, 창의력, 의사소통 능력, 협업 능력-4Cs, Critical thinking, Creativity, Communication, Collaboration- 등을 강조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수능과 내신 시험으로는 이런 능력을 기를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이러한 역량은 ‘집어넣는’ 교육만으로는 결코 기를 수 없다.

 외국에서는 어떻게 할까? 세계 각국은 어떤 교육을 하고 어떤 능력을 시험으로 평가할까? 해외 각국의 교육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교육은 너무나 많은 요인과 변수들의 상호작용이기 때문에, 어쩌다 한번 방문해서 수업을 참관하는 것으로 그 나라의 교육 전체를 이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각국의 교육과정 등 교육과 관련된 각종 문서를 분석하는 것으로는 그 나라 교육을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 직접 그 나라에 살면서 학생, 학부모, 교사, 교육정책 개발자 등의 입장에서 살아보지 않는 한 그 나라의 교육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어느 면을 보든지 단면만을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면만을 봐야 하는 현실에서 그나마 그 나라가 추구하는 교육의 가치, 기르고자 하는 역량, 교육의 결과 등을 가장 효과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 방법은 각국의 대입 시험 문제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것만 보아도 그 나라가 학생들에게 어떤 능력을 기르고 있는지, 교실 수업은 어떤 모습일지, 학생들은 어떤 방식으로 공부하고 있을지, 한 눈에 비교된다.

 이 장에서는 타당성과 공정성이 수십 년간 검증된 영국의 에이레벨,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독일의 아비투어, 미국의 AP·SAT·ACT, 국적이 없는 IB를 비교·분석해 본다. 각 대입 시험마다 총 몇 과목을 선택해야 하는지, 시험 기간과 시간은 얼마나 되는지, 내신 반영 비율은 어떻게 되는지, 누가 주관하는지 등에 약간씩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기르고자 하는 학생들의 능력에는 상당히 일관된 유사점이 있다. 몇 개의 기출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영국의 시험 - 에이레벨
에이레벨(A-LEVEL)은 Advanced Level의 줄임말로, 영국의 국가 교육 과정 및 대입 시험이다. 이 시험은 고2 말에 치르는 AS(Advanced Subsidiary) 시험과 고3 말에 치르는 A2 시험으로 구성된다. 영국은 중등학교 졸업 자격시험 GCSE(General Certificate of Secondary Education)을 고1 말에 보게 되어 있고, 일반적으로 이 시험을 통과하면 에이레벨을 치를 자격이 주어진다. 최근에는 에이레벨 총점에서 AS의 비중을 줄이고 A2를 강화하는 추세다.

 에이레벨의 역사 시험 문제를 아래에 제시한다. 아래 문항 중 10점짜리 문제 하나와 20점짜리 문제 하나를 골라서 90분 동안 쓰는 시험이다. 에이레벨은 전 과목이 논·서술형 절대 평가로 선다형 객관식 시험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대입 시험에서 모두 이런 방식의 시험을 보기 때문에 고교 교실에서는 당연히 이런 시험에서 고득점을 받을 수 있도록 수업을 한다. 문제 출제는 케임브리지대학 등 공인된 기관에서 주관하고 채점은 교사 중에서 차출해서 진행한다.

● 산업화는 중산층에 왜 그렇게 큰 영향을 미쳤는가? (10점)
● 1912년 대선에서 루스벨트는 왜 패했는가? (10점)
● 19세기 말까지 정치 구조에 산업화가 왜 그렇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지, 2개 국가의 사례를 들어 그 이유를 평가하시오. (20점)
● “히틀러의 대외 정책은 독일의 1차 대전 패배를 복수하고 싶은 원한에 기반했다.”라는 주장에 대해 당신은 얼마나 동의하는가? (20점)

영국은 이 장에서 소개하는 다른 서구 선진국들과 달리 다방면을 많이 아는 제너럴리스트보다 전문가, 즉 스페셜리스트를 기르고자 하는 교육 철학이 강하다. 그래서 옥스퍼드, 케임브리지를 비롯한 영국 대학들은 교양 과정 없이 전공 과정으로만 3년 동안 공부하게 되어 있다. 영국 대학들은 부전공이나 복수 전공 혹은 전과를 거의 허용하지 않는다. 처음 입학할 때 지원한 학과의 전공과목만을 심층 공부하는 형식으로 커리큘럼이 짜여 있다.

이러한 교육 철학이 대입 준비 과정인 에이레벨에도 반영되어 있다. 다른 선진국들의 교육 과정에 비해 에이레벨은 선택해야 할 과목 수가 적다. 에이레벨에는 내신이 포함되지 않으며 영역과 무관하게 3과목만 선택해도 명문대 진학이 가능하다. 예컨대 공대를 지원하는 학생은 수학, 물리, 화학만 선택하고 언어나 사회 과목을 전혀 선택하지 않아도 대학에 갈 수 있다. 선택 과목이 적은 대신 그만큼 그 과목에서는 매우 심도 깊은 수준을 요구한다 (과목의 선택과 집중은 고2, 고3에만 해당된다. 고1학년 말에 치르는 중등학교 졸업 자격시험에는 과목이 많다.) 학생 입장에서 보면 과목 수가 적은 것이 편할 수도 있지만, 교육의 관점에서 보면 고등학교 과정까지는 한쪽으로 치우치기보다 균형 잡힌 역량을 기르고 평가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지적되기도 한다. 

 그런데 몇 과목을 선택하든 에이레벨에는 객관식 시험이 전혀 없다. 전 과목이 절대 평가로 논·서술형이다. 내신은 상관없이 입시인 에이레벨 점수로만 대학 입학이 결정되지만, 입시 문제 자체가 전 과목 논·서술형이기 때문에 학교에서 고2와 고3 내내 입시 대비만 하는데도 토론, 논술, 프로젝트 중심의 ‘꺼내는’ 수업을 한다. 대학 입학시험에서 이를 궁극적으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영국은 자국의 훌륭한 에이레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2021년 5월 현재 IB 학교가 131개교(초등학교 7개교, 중학교 20개교, 고등학교 중 디플로마 프로그램 운영 학교 96개교, 고등학교 중 직업 교육 프로그램 운영 학교 47개교 등 학교 급별 총 170개교)가 있고, 그중 55개교(중학교 9개교, 고등학교 중 디플로마 프로그램 운영 학교 23개교, 고등학교 중 직업 교육 프로그램 운영 학교 38개교 등 학교 급별 총 70개교)가 국·공립이다 (IB 본부 홈페이지 실시간 검색). 그런데 이마저도 2008년의 230여 개교에서 약 절반 가까이 감소한 것이다.

 IB 학교가 감소한 가장 큰 이유는 2008년부터 케임브리지대학에서 IB를 모방해, ‘케임브리지 Pre-U’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후 이 프로그램으로 이동한 학교들이 생겼다. 우리로 치면 한국형 바칼로레아가 만들어져서 IB 학교들이 그쪽으로 이동한 격이므로, 이는 영국 국내 입장에서는 바람직한 변화라 볼 수 있다. 다만 IB 학교 수가 10년 동안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음에도, 영국 내의 IB 학생 수는 3,000명(2008년)에서 4,830명(2018년)으로 늘었다는 것은, 여전히 IB가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것으로, 케임브리지 프로그램의 분발을 촉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우리가 한국형 바칼로레아를 구축할 때 참고할 만한 부분이다.

프랑스의 시험 - 바칼로레아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는 대입 시험이기 이전에 고등학교 졸업 자격시험이다. 시험 문제를 출제하는 데에만 1년 이상 걸린다. 교육부가 전국 각 교육청에 시험 문제 출제를 의뢰하면 각 교육청에서는 출제 위원회를 구성한다. 교육부와 교육청의 담당자가 공동 위원장을 맡고 고등학교 교사들이 위원으로 차출되어 문제를 출제하는데 여러 문제 후보 중 최종 문제는 교육감이 선택하고 공동 위원장이 승인하는 형식으로 결정된다. 즉, 주관 및 관리는 교육부와 교육청이 함께하고 출제 및 채점은 교사들이 담당하는 것이다. 바칼로레아 시험의 예시를 아래에 제시한다.

1) 인문학
● 철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 역사는 인간에게 오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에 의해 오는 것인가?
2) 자연 과학
● 현실이 수학적 법칙에 따른다고 할 수 있는가?
● 생물학적 지식은 일체의 유기체를 기계로만 여기기를 요구하는가?
3) 사회 과학
● 권리를 수호한다는 것과 이익을 옹호한다는 것은 같은 뜻인가?
● 권력 남용은 불가피한가?

시험 시간은 대부분 3~5시간이다. 바칼로레아 역시 전 과목 논·서술형 절대 평가로 객관식은 없다. 대입 시험뿐 아니라 평소 내신에서도 이러한 시험 문제를 풀고 이에 대한 수업을 한다. 2017년에 총 71만 8,890명이 시험을 치렀으며, 그중 일반계가 53%, 기술계가 19%, 직업계가 28%였다. 전 과목 논·서술 시험이라 당연히 우리의 수능처럼 하루에 치를 수 없다. 2017년 바칼로레아 시험은 2주 동안 전국 4,411개 고사장과 국외 141개 고사장에서 치러졌고, 전국 교사들 중에 17만 명이 차출되어 교육 훈련 후 채점관으로 투입되었다.

 답안지는 모두 스캔하여 온라인 시스템에서 채점하게 되어 있으며 공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채점을 위한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구축되어 있다. 채점 결과에 대한 이의 제기는 발표일로부터 2개월 내에 할 수 있으며, 답안지는 재채점을 고려하여 1년간 보관한다. 비용은 2017년의 경우 총 15억 유로(약 2조 원)의 예산이 쓰였다(주프랑스한국교육원 http://educoree.fr). 

 일반 대학 진학 시에는 내신 없이 바칼로레아 시험 점수만 제출하고 입학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20점 만점인 바칼로레아에서 10점 이상이면 대학에 갈 수 있다. 그러나 입학이 쉽다고 해서 졸업까지 쉬운 것은 아니다. 또한 입학이 쉽다고 해서 대학이 평준화되어 서열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오해다. 프랑스의 경우 ‘대학’이라고 불리는 고등 교육 기관은 평준화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학 외에 상위권 학생들이 진학하는 고등 교육 기관인 프레파와 그랑제콜도 있기 때문에 프랑스의 고등 교육 입학 체제를 논할 때 대학만 이야기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

 내신 상위 15~20%의 상위권 학생들은 그랑제콜에 입학하기 위해 입시 교육 기관인 프레파에 진학하려고 매우 치열한 경쟁을 한다. 프레파에 입학할 정도면 바칼로레아 점수가 17점 이상은 될 수준이지만, 프레파는 바칼로레아 점수가 아니라 내신 점수로 심사를 받아 입학한다. 프레파에서 2~3년간 공부한 학생들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프랑스의 지도층을 양성하는 그랑제콜에 입학한다. 또한 프레파가 아닌 ‘대학’에 바로 진학한다 해도 의대와 공대처럼 인기 있는 학과는 1학년 후에 절반 이상 탈락하고 2학년 후에 나머지 중 또 절반 이상이 탈락하는 등 중도 탈락자가 많아서 졸업 시에는 입학생의 10%만 남기도 한다. 대량 탈락이 우리 나라처럼 대학 입시 시점에 일괄 일어나지 않고 대학 연차별로 분산되어 있을 뿐, 프랑스도 결코 경쟁이 없는 것이 아니다.

 마크롱 정부가 들어선 이후 바칼로레아를 포함한 교육 개혁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는 결코 바칼로레아식 평가와 교육 내용을 질적으로 바꾸겠다는 것이 아니다. 현재는 대학 입학 지원자가 많을 경우 추첨을 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대학 1학년 후 탈락률이 60%에 달하는 사회적 비효율이 발생하고 대학의 경쟁력이 약화된다는 비판이 오랫동안 있었다. 이를 고려하여 시험 과목 수를 조정하고 내신을 반영하여 대학에 입학생 선발권을 주는 등 좀 더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것이다. 즉 평가가 아닌 선발 정책을 개혁하려는 것일 뿐, 시험 문항 자체의 ‘꺼내는’ 교육의 질적 패러다임은 변함없이 유지한다.

독일의 시험 - 아비투어
독일의 대입 시험인 아비투어(Abitur)는 영국의 에이레벨이나 프랑스 바칼로레아와 달리 내신이 주요한 비중으로 아비투어 총점에 포함된다. 내신이 3분의 2, 수능 같은 외부 시험이 3분의 1 반영된다. 내신의 경우 답안지가 A4로 16장씩 되기도 해서 시험 시간이 3~4시간 이상 걸린다. 외부 시험도 일선 교사들이 출제하는 문제 중에서 선정하기 때문에 학교 교육 과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채점은 해당 학생의 담당 교사가 1차로 채점하고 다른 교사가 2차로 채점하는 교차 채점을 하는데, 지금까지 교사의 채점 부정 사례가 제기된 적은 거의 없다.

 독일은 일찌감치 고교 학점제와 문·이과 통합을 실현해 왔다. 아비투어 시험에서는 총 4~5과목을 선택하며, 한 주에 한 과목만 시험을 치르기 때문에 시험 기간이 한 달가량 된다. 독일은 대학이 평준화되어 있어서 입학이 어렵지 않아 보이지만, 인기 학과는 당연히 경쟁이 치열하고 재학 중에 탈락하는 학생도 많다.
아비투어 역시 전 과목 논술형 절대 평가로 객관식 선다형은 존재하지 않는다. 외부 시험은 전 과목 논술 시험이고 내신은 논술형 및 수행 평가로 이뤄지는데 둘 다 절대 평가라는 점은 공통적이다. 아비투어는 문제의 난도가 우리나라 수능보다 훨씬 높고 특히 수학과 과학은 매우 깊게 공부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일은 유럽 국가들 중에서도 국민들의 평균적인 영어 구사력이 매우 뛰어난 편이다. 독일이 외국어로서 영어를 어떻게 교육하는지 시험 문제를 통해 살펴보자. 아비투어 외부 시험의 외국어(영어) 과목은 270분 동안 여러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여기에서는 택일하여 쓰는 작문 문제 일부를 제시한다.

● 교육부 장관을 인터뷰하려고 한다. ‘학교는 어느 정도로 우리의 인생을 준비해 주고 있나?’라는 주제에 대해 인터뷰 문안을 작성해 보시오. 인터뷰 문안은 직접 묻는 질문이나 제안을 모두 포함할 수 있다.
● 유럽 의회 대표에게 당신과 당신 세대가 걱정하는 이슈들에 대해 편지를 써보시오. 가능한 해결책도 제안해 보시오.
● 학교 폭력은 지난 몇 년 동안 증가해 왔다. 유력 일간지에 그 원인과 효과를 분석하는 신문 기사를 써 보시오.
● ‘부모는 성인의 나이에 이른 자녀의 의사 결정에 어느 정도로 관여할 권리 혹은 의무가 있는가?’에 대하여 쓰시오.

위의 질문에 대해 모두 ‘영작’하는 것이 외국어로서 영어의 외부 시험이다. 독일에서도 내신이든 외부 시험이든 어떠한 평가에도 객관식 정답찾기나 상대 평가는 없고, 전 과목을 절대 평가 논술형 시험과 수행 평가로만 평가한다.

미국의 시험 - SAT, ACT, AP
미국의 대입 시험에는 SAT(Scholastic Aptitude Test), ACT(American College Test), AP(Advance Placement)가 있다. SAT는 1년에 7회, ACT는 1년에 6회 볼 수 있다. 모두 자격 고사화되어 있는 시험이다. SAT는 미국의 대학 관계자들이 만든 비영리 민간단체인 대학위원회(College Board)에서 출제하고 ETS(Educational Testing Service)에서 채점하는 시험이다. SAT와 같은 기능을 하는 ACT는 같은 이름의 비영리 단체에서 주관하고 있다.

 SAT, ACT 모두 몇 번을 봐서 잘 나온 점수를 선택할 수 있으며 둘 중 하나의 점수만 있으면 된다. 시험 문제는 주로 선다형 객관식이지만 에세이 시험이 별도로 있다. 주요 대학들은 에세이 시험이 포함된 점수를 선호한다. SAT, ACT, AP 모두 절대 평가다. 다만 SAT와 ACT는 연간 시험 횟수가 여러 번이다 보니 매 시험마다 난도가 약간씩 차이 날 수 있어서 조정 과정을 거친다. 그래서 오답 개수가 같더라도 점수는 동일하지 않을 수 있다.

 AP는 대학위원회에서 주관하는, 대학 과정의 선이수 인증 시험이다. AP에서 일정 점수 이상을 받으면 대학에서 학점으로 인정해 준다. SAT, ACT, AP는 유럽 국가들의 시험과 달리 긴 논술형 시험이 아니라 객관식과 단답형 및 짧은 에세이로 이루어지는데, 방대한 문제 은행에서 출제되기 때문에 문제를 많이 풀어 보면 점수가 올라가는 구조다. 그 때문에 사교육 훈련을 받으면 효과를 보기도 한다. 또한 모두 교육 과정 이수에 대한 의무 없이 볼 수 있는 ‘시험’이다. 즉 학교 수업을 듣지 않고 그냥 혼자 공부하거나 온라인 강좌를 수강해서 준비를 해도 시험을 치르는 아무 문제가 없다. 과정을 평가하지 않고 시험으로만 평가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미국은 유럽 국가들과 달리 땅이 매우 넓고 주마다 다른 가치와 특색을 지니는 연방 국가이다 보니 혼자서 공부하거나 홈스쿨링을 하는 사람들도 불리하지 않도록 ‘과정’을 평가받지 않아도 단독으로 치를 수 있는 ‘시험’을 제도화한 것이다.

 다만 앞서 말했듯 미국 대학 입시에서는 SAT, ACT, AP 점수 외에 내신 점수와 각종 비교과 활동이 매우 중요하다. 내신 평가는 유럽 국가들과 같이 대부분 논술 및 수행의 절대 평가로 이루어진다. 특히 최상위권 대학에서는 내신과 비교과 활동이 SAT, ACT 점수보다 훨씬 결정적이다. 따라서 미국 대입 시험들이 선다형 위주라고 해서 미국의 학교 수업도 우리나라같이 객관식 정답 찾기 중심일 것이라고 생각하면 크게 오해한 것이다. 미국은 대입에서 매우 중요한 내신의 대다수가 논술형 평가와 수행 평가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수업 자체는 유럽 학교들과 비슷하게 집어넣는 교육을 넘어 꺼내는 교육을 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식 시험에 익숙한 관점으로 보기에는 AP 시험의 에세이나 IB 시험의 에세이가 큰 차이가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미국 현지에서는 AP와 IB의 패러다임적 차이가 크게 다른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일례로 미시간주 앤아버의 휴런고등학교는 일반 공립학교인데 2014년부터 AP 교육과정에서 IB 교육과정으로 변환을 시도했다. 변환 과정에서 학생들의 선택권을 존중하기 위해 모든 학생들에게 AP도 선택할 수 있고, IB 전체 디플로마 프로그램도 선택할 수 있고, IB의 일부 과목만 선택하는 수료증 과정도 선택할 수 있는 등 자유로운 선택권을 주었다. 그런데 백인들은 성적의 높낮이와 무관하게 IB를 선택하는 경향이 컸던 반면, 한국 유학생의 경우는 성적의 높낮이와 무관하게 AP를 선택하는 경향이 높았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이유로 한국인 학부모들은 “AP는 시험이라서 학원의 도움을 받으면 성적을 향상할 수 있지만, IB는 과정이라서 학원의 도움이 별 소용이 없다”고 응답했다.

 AP는 학교에서 개설된 수업을 듣고 시험을 보는 것을 권장하지만 의무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학교 수업을 듣지 않고 혼자 공부하여 시험을 치르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다보니 학교 수업과 무관하게 학원 수업만 듣고도 시험을 치를 수 있다. 반면 IB는 프로그램 자체가 교사의 내부 평가를 최종 총점에 반영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IB 학교에서 개설된 과목을 수강하지 않고 학생 혼자 공부하여 시험만 치르는 것 자체가 허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미국의 한국인 학부모들은 AP는 시험으로, IB는 과정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국적이 없는 IB(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
IB는 국적이 없다. 어느 한 국가의 교육 과정이나 대입이 아니다. 스위스에 법적 본부를 두고 네덜란드에 실무 본부를 두며 영국에 채점 센터를 두고 전 세계에 지역별 본부를 둔, 비영리 민간 교육 재단에서 개발해 운영하고 있는 교육 과정 및 대입 시험이다. IB의 고등학교 프로그램인 디플로마 프로그램은 1968년부터 개발·운영되어 왔는데 교육적 우수성과 채점의 엄정성이 널리 알려져서 전 세계 주요 대학들은 대입 시험으로 오랫동안 인정해 왔다. IB는 UN 등 국제기구가 많은 스위스 등에 주재원들의 자녀가 청소년기에 적절한 양질의 교육을 받지 못하고 대입에 제대로 준비하기 어려운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국제기구 주재원 혹은 해외 상사 주재원들의 자녀가 양질의 교육을 받고 세계 어느 나라의 대학에도 입학할 자격을 갖출 수 있도록 국제 공인 교육 프로그램 및 대입 시험을 만들자는 취지로 개발되었다. 

 45점 만점으로 구성된 IB 대입 시험은 고급 수준 3과목, 표준 수준 3과목에 더하여 소논문(EE; Extended Essay), 지식론(TOK; Theory of Knowledge), 창의·체험·봉사 활동(CAS; Creativity, Activity, Service)을 필수 요소로 이수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고급 수준 과목들은 미국 대학 진학 시 AP처럼 학점으로 인정해 준다. 전 과목이 논술형 시험으로 수행 평가가 포함되며, 아비투어처럼 총점에 내신 점수가 포함(과목별로 비율은 다름)되어 있다. 내신과 외부 시험 모두 절대 평가다. 표준화된 45점 중에 내신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내신 부풀리기 등의 영향이 없도록 내신 평가 중 일부를 무작위로 검토하여 부풀리기 등이 발생했다고 판단되면 그 학교 전체 내신 점수를 내리는 방식으로 조정한다.

 IB 프로그램 및 시험의 형태를 살펴보면, 영국의 에이레벨,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독일의 아비투어 등 유럽 각국의 대입 시험 중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들을 선별하여 반영하였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IB는 학교생활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수행 평가와 논술형 과정 평가인 내신이 총점에 함께 반영된다는 점에서 프랑스 바칼로레아와 내용이 전혀 다르다. 프랑스 바칼로레아는 내신이 전혀 반영되지 않고 마지막 시험 점수만 제출하게 되어 있다. 또 프랑스 바칼로레아는 20점 만점으로 철학이 필수인 반면, IB는 45점 만점으로 철학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며 그 대신 지식론, 소논문, 창의·체험·봉사 활동이 필수이다. 

 앞서 언급한 다른 대입 시험들은 국가 차원에서 운영되기 때문에 대입에 시험 점수 외에 무엇을 얼마나 반영할지 국가별로 패턴이 있다. 하지만 IB는 특정 국가의 교육 과정이 아니기 때문에 이 점수가 어떻게 대입에 반영되는지는 국가별, 대학별로 상이하다. 예컨대 대입에서 에이레벨 점수만 심사하는 영국 대학의 경우, IB 점수만으로 학생을 선발하기도 하지만, 내신과 각종 비교과 활동을 중시하는 미국 대학의 경우는 IB 점수와 함께 학생들의 비교과 활동을 추가로 제출해야 한다. 다만 IB에는 에이레벨과 달리 소논문이나 창의·체험·봉사 활동 같은 비교과 활동이 교육 과정에 필수로 들어가 있기 때문에 학생이 비교과 활동을 학교 밖에서 별도로 준비할 필요 없이 학교에서 한 것들을 그대로 제출할 수 있다.

 즉, 평가 제도로만 보면 IB는 비교과 없이 내신과 수능으로만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대입의 기본인 단순성, 명료성, 일관성을 확보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의 학교생활기록부종합전형(학종)에서 추구하는 여러 가치 있는 비교과 활동과 평가가 내신에 정규 과정으로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처럼 원하는 일부 학생만 하는 것이 아니라 IB 교육 체제하에 있는 모든 학생에게 기회가 주어진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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