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정 교육과 혁신 연구소 소장
IB 대입시험: 국어, 영어
1. IB 한국어(모국어) 시험
국내 시험이 아닌 해외의 표준화된 시험 중에도 우리의 국어가 정식 과목으로 개발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대부분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과목이지 모국어로서와 한국어 교육과정과 표준화된 시험이 개발되어 있는 곳은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와 IGCSE (International General Certificate of Secondary Education) 뿐이다. IGCSE는 고등학교 1학년 말에 보는 시험으로 중등교육 이수 자격고사의 성격이고, IB는 고등학교 3학년 말에 보는 시험으로 변별력 있는 대입 시험이다.
IB에는 모국어로서의 한국어 그룹에 문학(Korean Literature), 언어와 문학(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의 두 과목이 개설되어 있어,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1차 시험지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작품을 즉석에서 보고 해석하는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으로, 문학 작품이나 신문 기사, 편지글 등 같은 지문을 읽고 푸는 문제들이고, 2차 시험지는 지문이 따로 없는 문제들로, 학교에서 공부했던 작품을 기반으로 답을 하는 시험이다. 학교에서는 어떤 작품으로 공부했는지 미리 채점 센터에 알려야 한다. IGCSE의 한국어 과목은 한 종류이고, 1차 시험지는 ‘읽기’, 2차 시험지는 ‘쓰기’다. IB와 마찬가지로 지문은 1차 시험지에만 나온다. 여기에는 IB ‘한국 문학’ 과목의 1차, 2차 시험지, IB ‘한국어와 한국 문학’ 과목의 2차 시험지, IGCSE의 1차, 2차 시험지를 제시한다. 지면 관계상 지문은 중략하고 일부만 실었지만 문제의 성격과 특징을 파악하는 데는 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또 이 지문들은 모두 유명한 작품들이라 인터넷을 통해 전문이나 줄거리를 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 IB 한국 문학(Korean Literature) 시험
[ 1차 시험지 (2015년 상반기) ] 시험 시간: 2시간
다음 중 하나를 골라 문학적으로 해설하시오.
<1>
하나코, 그것은 그들만의 암호였다. 한 여자를 지칭하기 위한 그들 사이의 암호. 한 여자가 있었다. 물론 그 여자에게도 이름이 있었다. 그 이름은 그들의 도시적 감성에는 그다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름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 때문에 암호를 사용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하나코 앞에서 그녀를 별명으로 부른 적도 없다.
(……)
그들의 관심을 끈 것은 말이 없던 그녀보다는 가끔 재치 있는 농담도 하고, 모든 대화에서 오호! 하는 감탄사까지 유발시키는 발언을 나직나직한 목소리로 할 줄 아는 하나코였다.
― 최윤 「하나코는 없다」
<2>
입 속의 검은 잎
택시 운전사는 어두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이따금 고함을 친다, 그때마다 새들이 날아간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나는 한번도 만난 적 없는 그를 생각한다
(……)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 기형도
[ 2차 시험지 (2013년 하반기) ] 시험 시간: 2시간
다음 문제 중 한 가지를 골라 답하시오. 수업 중에 공부한 작품들 중 적어도 두 작품을 토대로 답하시오. 두 작품을 비교 분석하시오. 수업 중에 공부한 작품들에서 두 작품을 토대로 하지 않은 경우에는 높은 점수를 줄 수 없습니다.
<장편소설>
• 문체는 주제와 긴밀한 연관성을 가진다. 공부했던 두 작품 이상의 장편소설을 토대로 문체가 주제를 드러내는데 어떠한 역할을 하고 독자에게 미치는 효과는 어떠한지 비교와 대조를 통해서 논하시오.
• 공부했던 두 작품 이상의 장편소설에서 구성의 방식이 독자에게 미치는 효과는 어떠한지 논하시오.
<중단편소설>
• 공부했던 최소한 두 작가의 중단편소설을 예로 들어, 계절적 배경이 가지는 효과에 대해서 비교와 대조를 통해서 논하시오.
• 등장인물의 성격이 작품에 어떻게 드러나 있으며 그것이 가지는 효과에 대해서 공부했던 최소한 두 작가의 중단편소설을 예로 들어, 비교와 대조를 통해서 논하시오.
<시>
• 공부했던 둘 이상의 시인의 시에서 화자가 시의 분위기를 전달하기 위해 사용한 감각적심상의 특징을 비교와 대조를 통해서 논하시오.
•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형상이나 사물에 대하여 마음속으로 그려보는 힘을 상상력이라 한다. 공부했던 둘 이상의 시인의 시에서 시인의 독특한 상상력이 발휘되었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찾고 그것이 가지는 효과에 대하여 비교와 대조를 통하여 설명하시오.
<희곡>
• 주인공의 성격이 사건 전개의 필연성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 공부했던 두 작품 이상의희곡을 토대로 비교와 대조를 사용해서 논하시오.
• 공부했던 두 작품 이상의 희곡에서 배우가 홀로 관객에게 하는 대화의 일종인 독백과 방백의 효과에 대해서 비교와 대조를 통해서 논하시오.
<수필>
• 전제와 가정이 독자를 설득하는 데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는지 공부했던 수필 중최소한 두 작가의 작품을 예로 들어 비교, 대조하시오.
• 수필에서 사용된 문체와 내용의 부합성과 그것이 가지는 효과에 대하여 공부했던 수필 중 최소한 두 작가의 작품을 예로 들어 비교와 대조를 통해서 논하시오.
■ IB 한국어와 한국 문학(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시험
[ 2차 시험지 (2013년 하반기) ] 시험 시간: 2시간
다음 중 하나만 골라 답하십시오. 수업 중에 공부한 작품들 중 적어도 두 작품을 참고해서 써야 합니다. 적어도 두 작품을 논하지 않은 답은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각각의 작품을 읽을 때 글의 언어, 맥락, 구조가 어떻게 도움이 되었는지 다루어져야 합니다.
• 문학가가 글을 쓰는 이유에는 어떤 것들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여러분이 공부한 작품들 중 적어도 두 작품을 참조하여 쓰십시오.
• 문학작품에는 직유법, 은유법, 의인법, 과장법 등 다양한 수사법이 사용됩니다. 여러분이 공부한 작품들 중 적어도 두 작품을 참조하여 수사법이 사용되는 효과에 대해 논하십시오.
• 모든 사람들처럼 문학가들도 서로 상반되는 가치관을 지니고 있을 수 있고 이러한 가치관이 그들의 작품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적어도 두 명 이상 문학가의 상반되는 가치관을 그들의 작품에 반영된 대로 서술하고 여러분은 어느 입장에 동의하는지 논하십시오.
• 시대별로 각기 다른 사회적 혹은 문화적 맥락에 따라 다양한 문예사조가 나타납니다. 각 상황이 어떻게 문학 사조에 반영되었는지 여러분이 공부한 작품들 중 적어도 두 작품을 참조하여 쓰십시오.
• 독특한 문체와 개성 있는 언어 표현은 독자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는 요소입니다. 여러분이 공부한 작품들 중 적어도 두 명 이상의 문학가의 작품을 참조하여 이러한 요소들이 어떻게 나타났는지 쓰십시오.
• 여러분이 공부한 작품들 중 적어도 두 작품을 참조하여 아름다움의 가치와 태도가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논하십시오.
■ IGCSE 한국어 시험
[ 1차 시험지 – 읽기 (2013년 하반기) ] 시험 시간: 2시간
<지문(1)>
다음 글은 법정 스님의 수필 「무소유」 가운데 일부입니다.
사실,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날 때 나는 아무것도 갖고 오지 않았었다. 살 만큼 살다가 이 지상의 적에서 사라져 갈 때에도 빈 손으로 갈 것이다. 그런데 살다 보니 이것저것 내 몫이 생기게 된 것이다. 물론 일상에 소용되는 물건들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없어서는 안 될 정도로 꼭 긴요한 것들만일까? 살펴볼수록 없어도 좋을 만한 것들이 적지 않다.
(……)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물건으로 인해 마음을 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 번쯤 생각해 볼 말씀이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차지하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역리이니까.
지문(1)을 읽고 다음 질문에 모두 답하십시오. 답을 쓸 때는 가능한 지문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쓰지 말고 ‘자신의 문장으로’ 쓰십시오.
• 첫 단락에서 ‘세상에 소속됨’을 뜻하는 구절을 찾아 쓰십시오.
• 14-15줄에서 ‘그 애들’이란 누구인지 쓰고 본문에서 이와 같은 비유법을 사용한 구절 두 가지를 찾아 쓰십시오.
• 글쓴이가 난초를 소유하게 됨으로써 얻게 된 기쁨은 무엇이었는지 설명하십시오.
• 26줄에서 ‘햇빛이 돌연 원망스러워’ 진 까닭은 무엇인지 설명하십시오.
• 53줄에서 간디는 왜 ‘소유가 범죄처럼 생각된다’고 했는지 설명하십시오.
• 본문에서 난을 통해 글쓴이가 배운 ‘소유’의 부정적 측면은 무엇인지 설명하십시오.
<지문(2)>
다음은 계용묵의 단편 소설 「백치 아다다」 중 일부입니다. 전 남편과 시부모에게 버림받 은 아다다는 날품팔이 노총각 수롱과 함께 섬으로 와서 새살림을 시작합니다.
벙어리인 아다다가 흡족할 이치는 없었지만, 돈으로 사지 아니하고는 아내라는 것을 얻어 볼 수 없는 처지였다. 그저 생기는 아내는 벙어리였어도 족했다. 그저 자기의 하는 일이나 도와 주고, 아들 딸이나 낳아 주었으면 자기는 더 바랄 것이 없었다.
(……)
수롱이는, 무슨 말인지를 하려고는 하나, 너무도 기에 차서 말이 되지를 않는 듯 입만 너불거리다가 아다다가 움찍하는 것을 보더니, 아직도 살았느냐는 듯이 번개같이 쫓아 내려가 다시 한 번 발길로 제겼다. "폭!" 하는 소리와 같이 아다다는 경사진 언덕을 떨어져 덜 덜 덜 굴러서 물 속으로 잠긴다.
지문(1)과 지문(2)를 읽고 다음 질문에 모두 답하십시오.
• 두 글의 주제에 나타나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 쓰십시오.
• 두 글은 형식이 다릅니다. 두 글에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이 어떻게 다른지 쓰십시오.
• 두 글에서 소유에 대한 부정적인 측면 혹은 무소유의 긍정적 측면이 어떻게 표현됐는지 쓰십시오.
[ 2차 시험지 – 쓰기 (2015년 상반기) ] 시험 시간: 2시간
두 가지 주제를 골라 각각 350-500단어로 쓰십시오. <토론과 주장>에서 하나, <묘사와 서술>에서 하나를 고르십시오.
<토론과 주장>
• ‘인간은 마음이 평화로운 종족이다’라는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논하십시오.
• 한국에서 이중국적자의 경우 병역의무를 지지 않기 위해 한국 국적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는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개인적 결정이므로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 없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찬반의 근거를 들어 논하십시오.
• ‘독재가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라는 말에 동의합니까? 반대합니까? 논하십시오.
•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마라’와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는 말은 서로 반대의 뜻을 가지고 있는 표현입니다. 어떤 말에 동의하는지 근거를 들어 논하십시오.
<묘사와 서술>
• 오늘은 내 생일입니다. 친구들이 장난으로 내 눈을 가리고 어떤 곳으로 나를 데려갑니다. 촉각, 후각(냄새), 미각, 청각 등을 통한 느낌을 사용해서 그 곳이 어떤 장소인지 묘사해 보십시오.
• 사악한 인물 또는 친절하고 신뢰가 가는 인물(실제 또는 가상 인물) 중에서 하나를 골라 그 사람의 신체적 특징과 습관 등에 중점을 두어 묘사하십시오.
• ‘놓친 기회’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만들어 보십시오.
• 지금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을 쓰려고 합니다. 배경은 아주 오래된 건물입니다. 시간은 밤. 갑자기 불이 나가고 누군가 뛰어가는 발소리가 들립니다. 이 부분이 소설의 중요한 부분이 되게 이야기를 만들어 보십시오.
■ 우리 말과 글의 본질에 더 가까이
어떤가. 우리나라의 국어 과목 시험 문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이 한눈에 느껴질 것이다.
IGCSE 한국어 1차 시험지의 지침 ‘답을 쓸 때는 가능한 지문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쓰지 말고 자신의 문장으로 쓰시오’는 이 문제들의 특징을 잘 나타낸다. 권장사항처럼 되어 있지만, 사실상 본문의 단어를 그대로 쓰면 감점 대상이 되기 때문에(채점 가이드라인에 명시되어 있음), 학생들은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말로 써야 한다. 서술형 문항에서 본문의 내용과 토씨 하나 달라도 틀렸다고 채점하는 우리 교육 현장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런 시험문제들은 학생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도록 요구한다. 문제를 풀기 위해 학생들은 이렇게도 생각해 보고 저렇게도 생각해 보게 된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발휘해야 하는 것이다.
수능 언어영역은 모두 객관식 문제일뿐더러, 그마저도 변별력을 높인다는 이유로 지나치게 꼬여 있다. 어느 작가가 수능에 자신의 작품이 실린 것을 보고 직접 문제를 풀어 보았다가 정답을 맞히지 못했다는 웃지 못할 일화도 전해 온다. 내신시험에는 주관식 문제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단답형이고, 정답과 글자 하나만 달라도 오답이 된다.
IB와 IGCSE의 시험 문제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딱 하나의 정답만 강요하지도 않거니와, 비교적 정답이 단순하고 분명한 경우라 해도 자신이 생각하는 다른 정답을 독창적이고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면 충분히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종류의 시험 문제에 대비하는 학생들은 어떤 방식으로 공부할까. 평소 문학 작품을 깊이 있게 분석하고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필수다. 그리고 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작품을 쓰는 경험을 가져야 한다.
IB 한국어 과목에는 특정한 교과서가 정해져 있지 않고, 대신 IBO가 수업 중에 활용할 수 있는 수많은 문학 작품의 목록을 소설, 시, 희곡, 수필 등 장르별로 제공한다. 교사는 그 중에서 작품을 직접 선택해 수업 시간에 다룬다. IB 한국 문학 2차 시험지에 ‘수업 중에 공부한 작품들 중 적어도 두 작품을 토대로 답하시오’라는 지침이 있는데, 여기의 '두 작품'이 수업 중에 다룬 작품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공부했던 작품들은 학교별로 미리 채점센터에 보고되어 채점에 고려된다. 작품을 달달 외우거나 특정 문장을 그대로 암기해서 인용해야 할 필요는 전혀 없다. 그렇게 해 보았자 가산점을 주지도 않는다. 수업에서 작품을 다각도로 분석하는 훈련을 통해 키워 낸 자신만의 관점을 서술할 수 있어야 한다. 필자가 이 문제들을 보여 준 주변 사람들 중에 유명 대학 국문과를 나온 지인이 있다. 그는 국문과 전공 수업에서조차 교수의 해석을 받아들이거나 주요 비평가의 이론을 암기해야 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면서, 이렇게 생각을 유도하는 수업을 청소년기부터 받았다면 공부가 훨씬 즐거웠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우리가 직접 개발한 시험 문제보다 외국 기관이 만든 시험 문제가 더 우리 말과 글의 본질에 가까이 있다는 것. 너무도 아이러니하면서 민망하기 짝이 없는 사실이 아닌가.
<한국대학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