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정 교육과 혁신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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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IB 영어(외국어) 시험

IB는 국제적으로 치러지는 시험인 만큼 외국어 과목도 그 종류가 굉장히 다양하다. 교육과정이 마련되어 있는 외국어 수가 무려 80개에 달하고, 그 중에는 한국어는 물론이고 라틴어와 고대 그리스어까지 있다.
앞에서 보았던 모국어 시험과 비교해 보면, 외국어 시험의 특징을 잘 알 수 있다. 문학 작품에 대한 분석력이나 문학적 상상력보다는, 실제 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언어 구사력을 평가하는 데 조금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외국어의 종류는 달라도 문제 형태와 구성은 모두 같다. 1차 시험지에는 지문이 등장한다. 신문기사, 안내문, 인터뷰 등 실용적 성격이 강한 글로서, 시험용으로 따로 작성한 것이 아니라 모두 현실에서 실제로 발표되거나 사용된 것들이다. 2차 시험지의 문제들은 모두 서술형이다. 대체로 1차 시험지는 독해 능력, 2차 시험지는 쓰기 능력이 중심이다. 이 장에서는 외국어로서의 영어 과목 시험지를 번역해서 실었는데, 지면 관계로 1차 시험지는 싣지 않고 2차 시험지만 실었다. 영어일 경우 250~400단어 분량으로 써야 하는데, 한국어일 경우는 500~800자의 분량으로 쓰게 되어 있다.
이 시험에는 말하기 능력을 보는 문제는 없다. 대신 내신에서 말하기 능력을 평가한다. 학생이 교사가 지정한 두 가지 주제 중 하나를 골라 20분 동안 생각한 후, 교사에게 그 주제에 대해 설명하고 이어서 교사와 일대일로 자유롭게 토론과 대화를 하는 방식이다.

■ IB 외국어 시험
[ 2차 시험지 (2015년 상반기) ] 시험 시간: 1시간 30분
다음 중 하나의 문제를 골라서 250~400단어의 분량으로 글을 쓰시오.
(문제) 문화적 다양성
당신은 주인공들이 서로 언어가 통하지 않는데 함께 협력해서 일하는 영화를 보았다. 그 캐릭터들이 서로 어떻게 소통을 하는지 기술하고 언어를 공유하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고찰하는 내용을 교내 잡지 기고문의 형식으로 쓰시오. 
(문제) 관습과 전통
다른 전통들을 기념하기 위해 당신의 시 의회는 전통복장을 입고 참여하는 파티를 개최한다. 당신의 친구에게 당신이 어떤 의상을 선택했고 왜 그것을 선택했는지 기술하는 이메일을 쓰시오.
(문제) 건강
우리 동네에 젊은 사람들이 보조식품(보디빌딩 보조식품, 다이어트 보조식품 등)에 너무 많이 의존하는 경향이 증가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교장선생님이 당신에게 교내 학우들에게 연설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 이슈의 심각성을 논하고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제안하는 연설문을 쓰시오.
(문제) 여가
당신의 학교 이사회는 오락을 통한 학습을 강조하는 대안적 교육프로그램을 도입하려고 계획하고 있으며 학생들의 제안들을 새로운 프로그램에 반영하기를 원한다. 새로운 프로그램에 대한 당신의 제안을 진술하고 학생들에게 어떠한 이점이 있는지 설명하는 제안서를 작성하시오.
(문제) 과학과 기술
최근 당신은 21세기에는 자연과학(화학, 생물학, 물리학 등)이 사회과학(경제학, 역사학 등)만큼의 이로움을 주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기사를 읽었다. 그 주장에 대해 논하고 당신의 의견과 근거를 제시하는 블로그 글을 쓰시오.
다음에 제시된 글을 근거로 하여 여러분 자신의 의견을 쓰고 그 의견을 뒷받침하는 글을 150~250 단어(한국어일 경우 300~500자) 분량으로 쓰시오. 글의 양식은 수업 시간에 배운 어떤 것(편지, 일기, 논설문, 설명문, 연설문, 보도자료 등)이라도 가능.
(문제)
어떤 사람들은 행복이란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받아들여져야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행복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것을 배울 때에 이루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 시험용 외국어가 아닌, 진짜 외국어
 이 시험 문제들이 평가하고자 하는 것은 쓰기 능력이다. 하지만 그 근간에는 역시나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특정한 표현을 외운다고 답을 쓸 수 있는 문제들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해야 답을 쓸 수 있는 문제들이다. 물론 그 답이라는 것도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다.

 우리나라 국가교육과정에서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영어 수업이 시작된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10년 동안 영어를 배우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공교육에 한정된 것이고, 실제로는 영어 유치원, 영어 학습지 등을 통해 더 일찍부터 영어를 배운다. 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영어를 배운 학생들이 과연 앞의 시험 문제들에 제대로 답할 수 있을까.

 필자가 미국에서 연구활동을 하는 동안 둘째 아이는 미국 초등학교를 다녔다. 원어민처럼 유창하게 말하고 쓸 수 있게 되었고 영어 과목에서 곧잘 A를 받기도 했다. 그러다 한국에 돌아와 다시 한국 학교를 들어갔다. 영어 과목만큼은 한시름 놓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웬걸, 오히려 영어 과목에서 맥을 추지 못했다. 중학교에 입학한 다음에는 더더욱 힘들어했다. 정답인 표현이 하나뿐이라는 것에 적응하지 못했다.

 외국 생활 경험이 있는 다른 학부모들이 한국식 내신 영어 학원을 가야 한다고 충고했다. 둘째 아이도 답답했는지 스스로 한국식 영어 학원에 다니겠다고 했다. 내신성적 올려 준다고 소문 난 학원에 다녀온 첫날, 아이는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애들이 한마디도 안 해요. 선생님 말씀을 듣기만 하고, 그냥 암기한 거 시험 보고, 점수 잘 나올 때까지 재시험 보는 게 다예요.”

 IB 외국어 수업에서는 그 언어를 배우면서 문화부터 역사, 그리고 과학 기술까지 여러 주제를 다룬다. 학생들은 다양한 상황에서 쓰일 수 있는 표현들을 폭넓게 익히면서 실생활에서 이를 구사하는 연습을 한다. 시험을 위한 외국어가 아니라 실제로 사용하기 위한 외국어를 배우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리 유창하게 읽고 듣고 말하고 쓸 줄 알아도 학교 시험을 위해서는 다른 종류의 영어공부를 해야 해서 유창하던 말하기와 쓰기 실력은 점점 쇠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우리나라의 영어 공부는 공교육에서 끝나지 않고 성인이 되어서도 이어진다. 그 비용을 다 합하면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하지만 그렇게 시간과 돈과 노력을 투자하고도 영어에 자신 있다는 사람은 드물다. 얼마나 비효율적인가. 새로운 시험을 도입하는 것이 당장은 여러모로 힘들겠지만, 시야를 넓혀 보면 그것이 오히려 이 비효율적인 상황에서 우리 모두가 벗어날 수 있는 길이다.


■ 국내 수능 영어의 ‘간접 말하기’, ‘간접 쓰기’ 평가
지난 4월 30일 서울대학교에서 "교육과정과 학교평가의 대안 탐색: 국제바칼로레아(IB)와의 비교를 중심으로"라는 주제의 포럼이 열렸다. 최근 대구교육청과 제주교육청에서 먼저 국공립학교에 시범 도입한 IB 교육에 대해 서울대학교에서도 본격적으로 연구를 착수하고 이에 대한 공개 논의의 장을 처음으로 연 것이다. IB는 1968년 스위스에서 UN 등 국제기구 주재원 자녀들이 어느 국가에서든 양질의 교육을 받고 세계 어느 대학에도 지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개발된 국제 공인 교육프로그램 및 대입 시험이다.  

서울대 교수진들이 작년부터 진행해 온 연구 주제는 “대입 논술형 수능 체제 설계를 위한 평가 시스템 및 교원양성 프로그램을 위한 기초 연구: IB 사례를 중심으로”이다. 교육부가 2028학년도 대입부터 논술형 수능 적용을 검토하겠다고 선언했지만, 기존의 정답 맞히기 객관식 수능 패러다임을 그대로 둔 채 논술 몇 문항 추가하는 수준으로 왜곡될까 우려되어, 서울대 교과교육 전공 교수들이 교과별 교육과정과 대입시험을 비교 분석하여 논술형 수능에 대한 전문적 모델을 제안해 보고 서울대학교에 이를 준비할 교원양성 프로그램 도입을 검토해 보려는 것이 연구의 목적이다. 지난 30일 포럼에서는 이를 위해 교육과정 분석 결과를 먼저 1차적으로 발표했고 논술형 수능과 교원양성 관련 내용은 조만간 2차 포럼에서 공개할 예정이라고 연구책임자인 서울대 물리교육과 송진웅 교수는 밝혔다.

 포럼 내용 중 서울대 영어교육과 소영순 교수가 발표한 우리 대입 시험인 수능과 IB 대입 시험을 비교 분석한 내용이 흥미롭다. 우리나라 국가교육과정이나 IB나 외국어로서의 영어 교과의 목표는 말하기, 쓰기, 읽기, 듣기의 네 영역에서 의사소통 역량을 키우는 것으로 동일하다. 그런데 이러한 역량을 최종적으로 평가하는 대입 시험은 매우 다르다. 

우리 교육과정도 말하기, 쓰기, 읽기, 듣기를 모두 측정한다고 되어 있지만, 수능에서 말하기와 쓰기 문제는 대화나 문장의 빈 칸 채우기 유형인데 그것도 실제 쓰기나 말하기도 아니고 선다형 보기 중 정답 고르는 “간접 쓰기”, “간접 말하기” 형식이다. 당연히 실제 말하기, 쓰기 능력을 측정하지 못한다. 

 

그림 . 우리 수능의 “말하기” 평가 문항 (소영순(2021). 우리나라와 IB의 고등학교 평가 비교(외국어). 2021년 제1차 서울대학교 교육종합연구원 교육포럼) 

 

그림 . 우리 수능의 “쓰기” 평가 문항 (소영순(2021). 우리나라와 IB의 고등학교 평가 비교(외국어). 2021년 제1차 서울대학교 교육종합연구원 교육포럼)


반면 IB 대입 시험은 예컨대 “친구가 낮은 성적에 상심하여 밤낮 공부를 하는데 병이 날까 걱정이다. 친구에게 걱정하는 이유와 함께 지혜롭게 대처하도록 제안하는 이메일을 써 보시오.” 혹은 “학생들이 SNS 사용의 장단점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학교 홈페이지에 게시할 ‘SNS 사용 가이드라인’을 작성해 보시오.” 와 같은 문제 여럿 중 하나를 골라 90분간 영작하는 것이다. 말하기는 지필 평가가 불가하기 때문에 학교에서 교사 앞에서 제한된 시간 내에 주어진 주제로 직접 말하고 답하는 시험을 녹음한다. 1차 채점은 교사가 하지만 채점의 공정성을 위해 중앙채점센터에서 교사의 채점을 일부 검토하여 부풀리기를 했다면 전교 학생들의 점수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내부평가를 외부평가와 병행하여 최종점수를 산출한다.

 우리 영어교육에서 말하기와 쓰기를 제대로 기르지 않는다는 것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그럼 읽기만큼은 제대로 기르고 있나? 소영순 교수가 가장 최근의 수능 영어 기출문제와 IB 영어 기출문제 지문을 비교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국제 공인 대입 시험인 IB의 외국어로서의 영어 대입 시험에서 가장 고난이도 독해 지문은 영어 원어민 9학년(중3) 수준인 반면, 우리 수능에서 고난이도 독해 지문은 원어민의 16.3학년 수준(대학원)으로 어려웠다. 내용도 IB 지문은 전문 지식이 없어도 이해할 수 있는 성격인 반면, 우리 수능은 지문의 출처가 대학원 수준의 전문 서적이어서 영어 능력뿐 아니라 해당 분야의 배경 지식이 있어야 이해할 수준이었다.

 즉 우리 영어는 말하기/쓰기는 제대로 기르지 않으면서 읽기는 지나치게 어려워 결국 목표하는 의사소통능력을 기르지 못한다. 상대평가가 절대평가로 전환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평가되지 않는 능력은 길러지기 어렵다. 왜 우리 교육은 목표한 대로 평가하지 않는가. 기르고자 목표하는 능력은 평가하지 않으면서 우리 교육은 왜 모두를 엉뚱한 방향으로 전력질주 시키고 있는가.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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