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정 교육과 혁신 연구소 소장

이혜정 교육과 혁신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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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IB 과학 시험

■ 실제로 과학자들이 사고하는 방식대로

 IB 교육과정에서 과학 교과군(G4)에 속하는 것으로는 생명과학, 화학, 물리학, 컴퓨터 과학, 디자인 테크놀로지, 스포츠·운동·건강학이 있다. 각 과목별로 시험지는 다르지만 시험 문제의 개수나 구성은 유사하다. IB 과학 시험에는 특이하게도 객관식 문제가 등장한다. P1은 4지 선다형 객관식 문제 40개로 이루어져 있고 이를 한 시간 동안 풀어야 한다. 아무래도 과학 과목의 특성상 기본적인 개념이나 이론을 숙지해 두지 않으면 이해가 힘들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P1 외에 나머지 시험지는 역시나 서·논술형이다. 대체로 객관식 P1은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낮고, 상위권의 변별은 P2, P3의 탐구형 서·논술형 문제에서 이루어진다.  정답을 암기하는 대신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하면, 국어나 역사 같은 소위 문과 쪽 과목들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와 달리 과학 과목은 이미 정답이 다 나와 있지 않느냐는 반문이 나온다.

 2015년 KBS 「명견만리」에 출연한 적이 있다. 제작진들은 『서울대에서 누가 A+를 받는가』의 연구 결과를 재현해 영상으로 내보내고 싶다고 했다. 필자는 촬영팀과 오랜만에 서울대 관악 캠퍼스를 방문해 학생들을 인터뷰했다. 그때 이공계의 최우등생들은 “자연과학에는 정답이 정해져 있잖아요. 그런데 굳이 비판적으로 다른 생각을 해야 할 필요가 있나요?”라고 말했다. 몇 년 전 필자가 심층연구 과정에서 들었던 말과 전혀 달라진 것이 없었다.

 과학 분야에서는 기본적 지식들을 어느 정도 숙지해야 한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래서 IB 과학 시험에도 객관식 문제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학에 가기 전까지는, 또는 대학원에 가기 전까지는 암기만 하면 된다? 이것은 결코 아니다.

 학습은 위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수용적 학습이 선행되어야 비판적 창의적 학습이 가능하다는 것은 편견이다. 신체의 근육을 기르는 것도 오랜 기간 꾸준히 훈련을 해야 하듯,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것도 오랜 기간 꾸준히 비판적 창의적 학습을 해야 한다. 수용적 학습을 하다 보면 언젠가 비판적 창의적 학습을 해도 되는 때가 오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 창의적 학습과 수용적 학습과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앞에서 본 과학 시험 문제들의 출제 의도는 학생들이 실제로 과학자처럼 분석적으로 사고하고 데이터를 해석할 수 있는지 판단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IB 과학 수업도 그러한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학생들은 실험과 현장학습을 하며 과학을 체험하고, 스스로 주제를 정해 과학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끊임없이 생각하고 토론한다. 비교적 정답이 분명한 이론을 배울 때도, 교사는 학생들에게 정답을 알려 주고 외우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해 정답을 찾아가게 하는 안내자 역할을 한다.

 필자가 미국에서 연구하는 동안 함께 있었던 둘째 아이가 귀국 후 한국학교에서 한 달 정도 지내고 나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엄마, 한국학교에는 왜 그렇게 망한 실험이 많아요?" 무슨 영문인지 자세히 캐물어 보니, 한국학교에서도 과학실험이 있는데, 예컨대 실험결과가 보라색이 나와야 하는데 보라색이 아닌 다른 색이 나오면 애들이 실험을 "망했다"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그리고는 원래 예측했던 보라색을 결론으로 해서 보고서를 어떻게든 맞추어서 쓰더라는 것이다. 미국에서 다니던 학교에서는 예상했던 보라색이 안 나왔으면 왜 안 나왔을까 생각하며 그에 대한 타당하게 이유를 쓰면 훌륭한 보고서로 평가받기 때문에 어떠한 경우든 "망한" 실험도 없고 거짓 보고서를 쓸 일도 없었다는 것이다.   

 과학에는 아직도 끝없는 미지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그 세계에 들어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도구는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다. 그렇다면 시험에서도 바로 그 능력을 판단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 아닌가.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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