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정 교육과 혁신 연구소 소장
5회. 일본의 IB 공교육 도입
“그간 일본 교육에 대한 개혁 요구가 적지 않게 있어 왔지만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를 몰랐습니다. 그런데 IB가 도입되면서 개혁 방법에 대해 눈뜨게 되었습니다. IB는 일본 교육 대개혁의 방향과 방법에 대한 롤모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IB가 일본 교육 대개혁의 전부는 아니지만 핵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일본에서는 IB를 19세기에 개항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던 미국 페리 제독의 흑선이라고 봅니다. 흑선은 일본에서 외부 충격을 기회 삼아 내부 혁신을 성공시킨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1853년 미국 페리 제독이 흑선을 끌고 도쿄만에 나타나서 개항을 요구했고 이를 계기로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흑선이 오지 않았다면 일본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상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단시간 내에 개혁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IB는 현 일본 교육의 대개혁을 성공시킬 수 있는 흑선입니다.”
이쿠코 츠보야 위원은 일본 문부과학성 교육재생실행회의 자문위원을 맡고 있고 IB 일본 대사로 IB를 일본 공교육에 도입하는 전반적 계획을 추진하는 책임을 맡아 왔다. 이쿠코 츠보야 위원은 일본 교육 대개혁에 IB가 미친 영향을 두고 메이지 유신을 가능하게 한 흑선에 비유한다. 그만큼 교육 문제에 대한 일본의 위기의식이 크고, 그 변화의 동력으로서 IB에 대한 기대도 크다는 뜻이다.
기존의 주입식·획일식 교육으로는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더 이상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는 절박함 속에서 일본에서는 국가 경제 재건을 위해 인재 재건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대두되었다. 이에 2012년 말 아베 신조 총리는 집권하자마자 ‘경제 회생’과 ‘교육 재생’을 정권의 최우선 과제로 선언하고, 교육 개혁을 국가 재건을 위한 핵심 전략으로 추진했다. 아베 총리는 2013년 1월 총리실 산하에 국가 차원의 ‘교육재생실행회의’를 설치하고 “세계 최고 수준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모든 국민이 눈을 뜨고 그 교육 기회를 갖는 것”을 목표로 국가 교육 재생을 추진했다. 2013년 6월에는 우리의 수능에 해당하는 ‘센터 시험’을 2020년에 폐지할 것을 선언했다. 그와 동시에 IB 교육 과정을 자국어로 번역해 공교육에 도입하여 교육 개혁의 모델로 확산시키기로 결정했다. 교육 개혁의 수단으로 IB를 택한 것이다.
주목할 점은 이것이 교육을 담당하는 문부과학성의 결정이 아니라 ‘각의’(국무회의)의 결정이라는 것이다. 일본은 교육 개혁을 단순히 교육계 차원이 아니라 국가 전체 차원의 미래 전략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었다. 변화하는 일본 교육이 추구하는 가치는 학습자 주도(Active learning)의 꺼내는 탐구 학습(Inquiry-based learning)이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2020년까지 공교육에 IB 인증 학교를 200개 도입하자는 것을 2013년에 국무회의 결정으로까지 발표한 것이다. IB 학교가 되기까지는 생각보다 시간이 걸리는데, 특히 공립학교의 경우 지자체가 결정을 하기 전에 공청회 등 지역 주민들의 의견 수렴 절차가 필요해서 공립의 경우 시간이 더 걸렸다. 그래서 2017년 말에 200개 도입 목표 달성을 2020년에서 2022년으로 연장한 상태이다. 2021년 현재 167개교가 IB 학교로 변환한 상태이다.
그런데 속도가 처음 계획보다 늦어지더라도 어쨌든 같은 방향으로 교육개혁은 계속 추진하고 있었는데, 2020년 수능인 센터시험을 폐지하고 새로운 대입시험으로 바꾸는 작업을 2019년 말에 갑자기 보류를 했다. 일본의 사례에서 우리는 시사점은 배우고 시행착오는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이 글에서는 일본의 교육개혁의 방향에서 배울 점을 찾아보고, 방법론에서의 시행착오를 살펴보기로 한다.
1. 일본의 교육개혁 방향의 시사점
우리나라처럼 일본에서도 IB는 연간 수천만 원씩 학비를 내는 국제 학교나 외국인 학교에서만 운영되던 교육 과정이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경제 격차가 교육 격차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라면서 IB 교육 과정 전체를 자국어로 번역해 공교육에 무상 또는 저비용으로 확산시키는 중이다.
일본 정부의 궁극적인 목적은 단지 IB 인증 학교 수를 늘리는 데에 있지 않다. 일본 공교육에는 약 2만 개의 초등학교, 1만 개의 중학교, 5,000개의 고등학교가 있다. 이 모든 학교를 IB 인증 학교로 만드는 것은 일본의 목표가 아니다. 2017년 일본 정부에서 공식 발표한 「IB를 통한 글로벌 인재 육성 방안 전문가 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IB를 도입하는 기본 이유 중 첫째가 “초·중·고 공교육 도입의 롤모델 형성”이다. 일본 공교육 전체 개혁을 위한 모델 학교의 역할로서 200여 개만 전략적으로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47개의 각 교육청 권역별로 IB 인증을 받은 시범 학교가 설립되면 주변 학교들은 이 시범 학교로부터 배우면 된다. IB 학교에서 4~5년가량 근무하고 나면 베테랑 교사가 된다. 그 교사가 다른 학교로 가서 IB 교육을 퍼뜨릴 수 있고 수정·보완해서 더 업그레이드할 수도 있다.
IB 교육은 주입식 교육보다 선진적이기 때문에 한번 이 교육에 익숙한 교사가 되면 다시 기존의 주입식 교육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렵다. 일본의 IB 교사들도 기존 교사가 IB 교사로 변할 수는 있어도 그 반대는 어렵다고 말한다. 일본은 여러 학교에서 IB 시범 학교를 참관하고 연수를 받음으로써 많은 학교가 이런 방식의 교육으로 변화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연간 약 1만 달러의 IB 관리 비용을 지불하는 인증 학교를 만들어도 주변 학교에 파급 효과가 상당하기 때문에 오히려 비용 면에서도 효율적일 수 있다.
일본 문부과학성에서는 IB 도입을 위해 우선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했다.
① IB 본부와 제휴
② 초·중·고 전 교육 과정 번역
③ 교사 연수
④ 채점관 양성
⑤ IB 인증 학교 졸업생들의 대학 입학 허용
⑥ IB 교육 과정을 국가 교육 과정으로 인정.
이 과정을 통해 실제로 현재 많은 IB 인증 학교가 만들어졌다. 초기에는 IB 인증 학교 중에 사립이 공립보다 많았는데, 이는 사립 학교가 상대적으로 인증 신청을 빨리 할 수 있는 의사 결정 구조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립 학교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설명회, 공청회 등을 열어 의견을 수렴하는 한편 의회를 설득하고 예산을 승인받는 절차까지 거쳐야 해서 사립학교보다 시간이 더 걸린다. 하지만 현재 여러 교육청에서 이미 공립 학교 인증 신청에 돌입했다.
다음 그림은 일본의 IB 학교 증가 추이를 보여주고 있다. 1979년~2013년 동안 27개교는 주로 국제학교나 사립학교였다. 2013년 문부과학성의 IB 공교육 도입 결정 이후 급증하는 모습인데, 문부과학성은 2021년 6월 현재 IB 인증이 완료된 학교를 초등학교 50개교, 중학교 26개교, 고등학교 59개교이며, 인증 과정을 진행 중인 후보학교를 총 32개교로 발표하고 있다. 공식 인증 완료 학교가 96개교로 표시된 것은 한 학교에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같이 있거나 초중고가 같이 있는 경우 한 학교로 세는 방식으로 표현된 것이고, 한국처럼 초/중/고를 구분하면 총 135개교가 인증을 마쳤고 32개교가 인증을 진행 중인 후보학교라서 총 167개교가 IB 식으로 교육이 변화한 상태이다.
IB는 향후 일본 대입 시험에도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면서 도입되었다. 사실 IB 과정 자체는 일본에서 승인된 지 꽤 오래 되었다. 영어판을 1979년에 일본 정부가 공식 인정한 바 있다. 당시 문부과학성은 국립과 사립을 불문하고 일본의 모든 대학에 18세에 도달한 IB 디플로마 프로그램 졸업생들은 대학 입시 자격을 갖춘 것으로 통보했다. 1990년에 문부과학성이 새로운 대입 국가시험인 센터 시험을 도입하면서 많은 학생이 이 점수를 받아야만 대학에 갈 수 있었는데, IB 디플로마를 받았다면 이 시험을 보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데 그때까지는 모두 영어판 IB였다. 영어판이 아니라 일본어판으로 IB 시험을 치를 수 있게 되면 당연히 IB 학생은 증가하게 된다. 일본은 2013년에 일본어로도 IB 시험을 볼 수 있는 이중 언어 디플로마 프로그램를 도입하기로 결정한 후 일본어로 시험을 치르는 IB 학생들은 센터 시험 없이 대학에 입학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2017년부터 일본어판 IB 졸업생이 대학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앞으로 그 수는 점점 증가할 것이다. 일본어판 IB는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 어느 대학에서도 동일한 질적 수준을 인정받는다는 것을 IB 본부가 공식 보증했다.
일본이 자국의 국가 교육 과정을 개혁하는 모델로 IB를 선택한 것은 수많은 심의와 검토 후에 내린 결론이다. 전 세계의 우수하다는 교육 과정과 평가를 모두 검토한 후, 일본이 추구하는 ‘학습자 중심의 꺼내는 교육’을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모델이 IB라고 판단한 것이다. IB가 특정 국가의 교육 과정이 아니라는 점도 고려했을 것이다. 영국의 에이레벨,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독일의 아비투어, 미국의 AP, SAT, ACT 시스템 모두 해당 국가에서만 운영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다른 언어로 번역되어 확산된 적이 없다.
IB는 국적이 없기도 하지만, 이를 운영하는 공식 언어가 영어, 불어, 스페인어로 3개이고, 그 외 다른 언어로도 일부 번역되어 활용되고 있다. 즉 다양한 언어로 확장이 가능한 시스템이다. 게다가 IB는 과목 수가 너무 적은 영국의 A레벨 같은 문제가 없고, 내신을 고려하지 않는 프랑스 바칼로레아 같은 문제도 없으며, 객관식이 다수인 미국의 AP, SAT, ACT의 문제도 없다. 학교 밖 외부인들이 교차 채점한다는 점에서 해당 학교 교사가 1차적으로 채점하는 독일의 아비투어보다 채점의 공정성과 엄정성도 더 인정받고 있다. 일본은 단순히 시험 문제를 벤치마킹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와 대입 평가의 운영 시스템을 참고하는 데에는 IB가 더 적절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IB는 기존 대입시험과 내신의 공정성과 타당성 문제를 혁신하면서도 다양한 미래 담론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IB 도입을 통한 교육 개혁에 쏟는 일본의 강한 의지는 2017년에 열린 학술 대회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그해 3월 29~31일, 요코하마에서 일본 교육 혁명의 서막을 알리는 국제 학술 대회가 열렸다. IB의 세계 학회를 일본에서 개최한 것이다. 33개국에서 1,500여 명이 참여했는데, 이 자리에 왕실에서 나와 축사를 했다.
일본에서 매해 열리는 수많은 국제 학술 대회 중 일개 교육 과정 학회에 왕실이 축사를 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이 자리에서 아키시노노미야 왕자는 IB 교육 과정에 대한 신뢰와 일본 도입에 대한 기대를 강조했고, 이어서 문부과학성에서 IB의 공교육 도입을 200개 학교를 넘어 지속적으로 확산할 것을 선언했으며, 주최 지역 지자체장은 IB 교육 과정이 일본 교육 혁명의 초석이 될 것임을 역설했다. 일본의 문부과학성 관계자들은 연간 수천만 원의 학비를 내야 하는 국제 학교에서나 받을 수 있었던 우수한 교육 과정을 국가가 나서서 공립 학교 학생들이 무료로 교육받게 한 것을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당시 기조 강연을 한 아라이 노리코 교수는 인공 지능 로봇이 도쿄대 입시에 도전하는 ‘도다이 로봇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으로 널리 알려진 수학자다. 아라이 교수는 2010년에 컴퓨터가 인간의 직업을 빼앗아 갈 것임을 예견하는 책을 냈는데, 출간 직후 서점에서 그 책이 비즈니스 코너나 IT 코너가 아닌 SF(공상 과학 소설) 코너에 있는 것을 보고 공포를 느꼈다고 한다. 4차 산업 혁명의 거대한 쓰나미가 몰려오는데 그 엄연한 ‘현실’을 SF로 바라보는 국민들의 인식이 너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 일이 2011년부터 도다이 로봇 프로젝트를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아라이 교수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인공 지능에 대한 경각심과 함께 인공 지능에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는 교육을 혁명해야 한다는 인식을 확산시키고자 했다. 이제는 향후 10~20년 이내에 인공 지능 로봇이 도쿄대, 베이징대, 아이비리그 등 세계적인 명문대에 합격하겠느냐는 질문에 일본 국민 80% 이상이 그렇다고 답할 만큼 인식이 바뀌었다. 그래서 아라이 교수도 프로젝트를 끝냈다. 그 무렵, 인공 지능 로봇은 일본 전체 대입 수험생 중 상위 25%와 동등한 실력을 갖춘 상태였다.
물론 변화에는 언제나 저항이 있기 마련이다. 특히 일본의 수능인 센터시험도 우리의 수능과 비슷하게 전과목 객관식 선다형 문제이다. 그러니 전과목 논술형 시험인 IB 교육에 대해 걱정과 우려 혹은 저항감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를 어떻게 해결했느냐는 질문에 문부과학성 관계자는 IB 위원회를 만들었는데 후지사키 이치로를 위원장으로 했더니 정계, 관계, 학계, 재계에서 위원으로 들어와서 국민들의 신뢰를 얻었다는 답변을 했다.
후지사키 이치로는 교육과 전혀 상관 없는 주미 대사를 지낸 사람이지만, 모친이 이토 히로부미의 증손이다. 우리에게 안중근 의사가 영웅이듯이 일본에서는 이토 히로부미가 영웅이다. 일본 국민들에게는 이토 히로부미의 가문에서 하는 일은 일단 나라를 위한 일이라는 정서가 있다.
그래서 후지사키 이치로가 IB 자문위원회의 위원장이 되자, 교토대 총장, 동경대 이사, 와세다대 부총장, 게이오대 상임이사 등 최상위권 대학의 주요 인사들이 위원으로 들어오고, 경단련(한국의 전경련과 유사)이나 소니 수석상무 같이 재계에서도 들어오는 등, 정계, 재계, 관계, 학계 모두 IB 자문위원회를 지원하는 모습을 갖췄다. 이런 상황이니 일본은 IB 교육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논의하는 단계는 쉽게 넘어갔다. 이러한 면면의 인사들이 IB를 지원하고 있으니 IB 교육은 당연히 해야 하는 우수한 교육이라는 신뢰가 생기고 이미 국민의 관심은 어떻게 현장에 잘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방법론 논의로 넘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중앙에서 이러한 정책적 구조로 심리적 저항을 신뢰로 해소시킨 노력도 있지만, 현장에서 경험을 통해 걱정과 우려가 확신과 신뢰로 확산되기도 했다. 우리와 비슷하게 순응적 교육문화가 있는 일본의 경우에도 IB와 같은 교육을 환영하는 입장도 있지만 저항하는 입장도 있다. 이에 대해 이쿠코 츠보야 위원은 이렇게 말을 한다.
“세계 어느 곳에서나 IB 교육에 열광하는 집단이 있고 변화에 저항하는 집단이 있습니다. IB 학교 교사들은 IB를 매우 선호합니다. 교사의 가르치는 자율성을 보장해 주기 때문이죠. 그러나 세세하게 안내해 주는 수업지도안에 익숙한 교사들은 스스로 수업을 설계하고 준비할 수 있는 자유를 번거롭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떠먹여 주는 수업지도안에 익숙한 교사들은 수업 설계를 직접 해야 하는 것이 일이 많다고 불평할 수 있지요.
IB는 근본적으로 교사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해 줍니다. 물론 그 자유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교사의 몫입니다. IB의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교사가 스스로의 교육권을 찾는 것에 있어 교장의 리더십이 특히 중요합니다. 그리고 대도시보다는 읍면지역 공립학교에서 더 적극적으로 도입하려고 합니다. 대도시의 사립학교들은 아동 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공립학교에 우수한 교육 프로그램이 신규 도입되는 것을 원치 않기도 합니다.”
이쿠코 츠보야 위원은 변화에는 언제나 진통이 따르게 마련이지만 가장 핵심인 교실에서의 변화를 직접 확인하면 개혁의 끈을 늦출 수 없다고 일갈한다.
“삿포로에 있는 한 공립 중등학교에서 IB를 진행하고 있는데 며칠 전에 수업 참관을 했어요. 굉장히 특이한 것이 외부 장학 참관자가 오면 학생들이 보통 긴장하고 조용한데 이 학교 학생들은 참관자가 와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이들은 토론하는 것에 몰입하고 여러 활동으로 소란해서 참관자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기존의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질문을 하면 조용하고 서로 먼저 말하지 않으려고 눈치를 보는데, 이 학교 학생들은 서로 "저요! 저요!" 하면서 너나 할 것 없이 발언을 하려고 헀습니다. 또한 기존의 상대평가 시스템에서는 상위권 애들은 상위권끼리만 팀을 짜려고 하고 하위권 학생들이 팀에 들어오는 것을 꺼려 했는데, IB 수업에서는 상위권과 하위권이 서로 팀을 만들어 과제하는 것을 거리낌 없이 자연스럽게 합니다.
제가 삿포로중학교의 최상위권과 최하위권 학생 두 명에서 학교 교육에 원하는 건 없는지 질문을 했는데요. 두 명의 학생 모두 수학시간이 적으니 늘려 달라 했습니다. 믿어지시나요? 저는 중학교 때 수업이 어떻게든 줄어들면 좋겠다 생각했지 수학시간을 늘려 달라고 요구한다는 건 상상도 못했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나 못하는 학생이나 모두 수학에 재미를 느끼고 있었고 그 재미있는 시간이 적으니 늘려 달라고 했다는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교육의 변화가 이미 실현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편, 일본에서도 IB를 자국어로 번역하여 공립학교에 도입을 결정하기 전까지는 국제학교, 외국인학교, 값비싼 사립학교에서만 운영되던 교육이었다. 당연히 귀족교육, 엘리트교육의 인식이 있었다. 일본의 IB 교육 전문가들은 IB 교육이 부자들만, 혹은 상위권에게만 적용될 수 있는 교육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교육이라는 확신을 갖고 이러한 인식을 확산시키려는 노력을 전방위적으로 하고 있다.
4차 산업 혁명, 인공 지능 시대에 어떤 직업이 생겨날지 누가 정확히 알 수 있을까. 이런 세상에서 살아갈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은 지금은 없는 새로운 직업을 발굴하고 만들어 내는 능력을 키워 주는 교육이다. 그러자면 ‘결과’를 가르치는 교육에서 ‘과정’을 가르치는 교육으로, ‘문제 해결력’이 중심인 교육에서 ‘문제 발굴력’이 중심인 교육으로, 그리하여 ‘지식 소비자’가 아닌 ‘지식 생산자’를 기르는 교육이어야 한다. 인공 지능이 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상상과 통찰을 해내며 인공 지능과 공존해 나가는 인재를 길러야 한다.
아베 신조 총리는 메이지 유신을 주동한 집안 출신이다. 그래서 19세기에 전 세계적으로 밀려오는 근대화의 쓰나미를 먼저 읽고 메이지 유신에 성공하여 한 세기 이상 아시아를 선점해 온 일본의 역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백 수십여 년 전 우리보다 먼저 시대를 읽었던 일본이, 4차 산업 혁명과 인공 지능이라는 또 다른 쓰나미가 밀려오는 작금의 시대를 읽고 신메이지 유신을 하겠다며 교육 혁명에 착수했다. IB의 공교육 도입과 대입 시험 개혁을 이미 수년 전부터 추진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 교육 당국의 한 수장이 일본에 다녀온 후 일본 공교육에 도입된 IB 학교가 200개 학교‘밖에’ 안 되기 때문에 걱정할 것 없다 했단다. 이것은 임진왜란 직전이나 구한말 때와 같은 안이한 시각이다. 일본의 IB 공교육 도입은 200개 학교‘밖에’로 볼 것이 아니라 200개 학교‘씩이나’로 봐야 한다. 우리는 칼과 창이 2만 개 있는데 저들은 총이 200개밖에 없다고 무시하는 것 같은 어리석음이다. 시대의 역량을 기르는 교육은 칼과 총의 차이처럼 전혀 차원이 다른 힘이다.
임진왜란 직전 선조의 명으로 일본을 다녀온 후 황윤길은 전쟁이 날 것 같으니 대비하자 했고 김성일은 전쟁 날 가능성이 없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고 했다. 선조는 후자를 믿고 방심했고 우리는 처참하게 임진왜란을 겪었다. 구한말에는 전쟁 없이도 나라를 잃었다. 작금의 시대와 일본의 변화를 우리는 어떻게 읽어야 하겠는가.
<한국대학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