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정 교육과 혁신 연구소 소장

이혜정 교육과 혁신 연구소 소장
이혜정 교육과 혁신 연구소 소장

IB MOC 협상 내용

  IB MOC(Memorandum of Cooperation)의 내용은 보험 약관 수준으로 방대하고 세밀한 내용들이 많으며 엄격하게 대외비를 지켜야 한다. 다만 MOC의 핵심 내용 중 IB와 합의 하에 발표한 내용은 공개할 수 있다. 이하에서는 그간 교육청을 대리하여 IBO와 의견 조율하면서 최종 합의한 협상 내용을 타임라인, 교과목, 질 관리 방안 측면에서 간략히 정리한다.

가. 타임라인

  IBO에서 인증받은 IB 학교가 되려면 관심학교(Consideration Phase), 후보학교(Candidate Phase), 인증학교(Authorization Phase)의 과정을 거쳐야 하고 이 기간이 약 1.5~2.5년이 소요된다. 우선 교장, 교감 등이 연수를 받은 뒤 IB의 철학을 이해하고 IB 학교 인증을 지원하겠다는 판단이 들면 신청서를 작성해서 관심학교 신청을 한 뒤 안내대로 절차를 따르면 된다.

  IB 수업 시작 시점은 학교 급별로 다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경우 미리 준비가 되어 있으면 바로 인증 후보학교 신청이 가능하다. 초·중학교 프로그램은 커리큘럼(교육과정)이 아니라 프레임워크를 제공하는 것이라 인증 완료 전에도 IB형 수업이 가능하지만, 고등학교는 인증이 완료되어야만 IB 수업을 공식 시작할 수 있다. 또한 초·중학교는 인증 완료 전에는 전체 학생이 아닌 일부 학년 또는 학생만 IB 수업을 할 수도 있지만, 인증 완료 후에는 학교 전체가 IB 교육을 해야 한다. 반면 고등학교는 한 학교 내에서 일부만 IB 교육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예컨대 한 학교에서 학생들이 IB반과 수능반(국내 교육과정반)을 선택하는 것이 가능하다. 고등학교의 IB 프로그램은 2년 과정이므로 우리 학제의 고2와 고3에 운영할 수 있고, 고1 때는 IB에 없는 교과(기술·가정 등)를 포함해 필요한 교육과정을 융통성 있게 구성할 수 있다.

  현재 시도교육청들에서 IBO와 추진하고 있는 타임라인은 2024년 대입이 가능한 첫 졸업생을 배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즉 2023년 11월에 한국어화된 IB의 첫 대입 시험을 치르는 일정에 맞추어 추진하고 있다. 첫 대입에 한국어로 시험을 치르게 될 과목은 국어, 수학, 화학, 생물, 역사다. 영어 과목은 그대로 영어로 치른다. 국어와 영어는 언어 과목이므로 별도의 번역 없이 그대로 시험을 치르면 된다. 물론 첫 수험생 수는 매우 적을 것이다. 그러나 학생 수가 증가하면 한국어화할 과목도 확대되고 교원 및 채점관 양성 범위도 확대된다.

IB 프로그램 도입 로드맵
IB 프로그램 도입 로드맵

  옆의 그림은 초·중·고 학교 급별로 IB 후보학교 인증을 신청하고 수업을 시작하며 대입 시험까지 치르게 되는 타임라인의 예시이다. 편의상 2020년에 인증을 신청하는 것으로 설정했는데 인증 신청이 더 늦어지면 그에 따라 차례차례 인증 완료 시기도 늦어지는 것으로 계산하면 된다. 또한 인증 완료되는 시점도 학교마다 다를 수 있다. 1.5년~2.5년 정도 걸린다고 하지만 외국의 경우 후보학교 기간이 3년 정도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고등학교 같은 경우는 대입 시험 때문에 인증 완료가 되기 전에는 IB 수업을 인정받을 수 없고 따라서 인증 완료 시점이 늦어지는 것에 매우 민감할 수 있지만, 초등학교와 중학교 같은 경우는 후보학교 기간이 길어지는 것이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후보학교 기간 동안은 IB 교육을 운영하면서 IBO로부터 집중 컨설팅을 받는데 인증이 완료된 후에는 한동안 그러한 집중 컨설팅이 줄기 때문에, 오히려 IBO의 집중 컨설팅을 받는 후보학교 기간이 길어지는 것을 선호하는 경우도 있다. 

나. 교과목

  IB의 PYP(Primary Years Program; 초등학교 프로그램), MYP(Middle Years Program; 중학교 프로그램)은 세계 어느 언어로도 운영될 수 있기 때문에 별도의 MOC 체결이 필요하지 않다. 공개된 교사용 지도서는 개별 학교에서 번역해서 내부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IBDP(Diploma Program)는 표준화된 입시와 연관되어 있어서 번역이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고 IBO의 질 관리 체제를 엄수해야 한다. 약 50년간 영어, 불어, 스페인어로만 운영되어 오다가 2013년부터 일본어로 번역되기 시작했고 2019년 한국어로 번역하는 MOC가 확정된 것이다. 일본어 이전에 독일어로도 일부 번역되긴 했는데, 독일의 경우는 교원들이 모두 영어로 연수를 받을 수 있어서 교원 연수를 할 연수 강사 양성까지 모두 자국어로 할 수 있어야 하는 일본 및 한국과는 자국어화의 난이도가 매우 다르다. 

  한편 영어, 불어, 스페인어는 공식 언어이기 때문에 교과목 전체를 이들 언어로 운영할 수 있지만, 일본어, 한국어 등은 공식 언어가 아니기 때문에 공식 언어로 2과목을 이수하고 나머지 과목을 번역된 언어로 이수하는 이중 언어 DP(Dual Language Diploma Program)로 운영된다. 즉 전체 9개의 영역(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예술, TOK, EE, CAS) 중 7개 영역을 한국어로 이수하고 나머지 2개 과목을 영어로 이수하는 방식으로 한다. 어차피 국어와 영어는 번역할 필요가 없으니, 영어 과목을 영어로 이수하고 나머지 한 과목만 영어로 추가 이수를 하면 된다. 이때 수업은 한국어로 하되 시험만 영어로 치르는 것도 가능하다. 

  영어로 시험을 치르는 한 과목은 수학이나 예술 과목을 검토할 수 있다. 예술 과목 중 음악은 IB 외부 시험으로 지필 고사를 치르지만, 미술이나 연극, 영화 같은 과목은 IB 외부 평가 중 지필 고사가 없고 100% 수행 평가로 이루어진다. 내부 평가는 다른 과목과 마찬가지로 교내 담당 교사가 평가하고 이를 중앙 채점 센터에서 리뷰하여 조정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외부 평가에 대해서는 학생이 수행한 작품, 구두발표 등의 과제를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디지털 기록으로 사이트에 제출하여 외부자가 평가하는 방식으로 채점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확보한다. 일본의 경우 예술교과 중 연극 과목을 영어로 수강한다. 연극은 영어 과목의 수행평가 격이라 영어 능력 강화에 도움 된다고 한다. 연극과 영화 모두 영어 전공 교사가 가르치기도 한다. 즉 학생들은 9개의 영역 중 영어와 연극 혹은 영어와 다른 과목을 영어로 시험 치를 수 있다. 

Group 1 (모국어): 한국문학, 한국어와 한국문학
Group 2 (외국어): 영어
Group 3 (인문사회): 역사, 경제, 지리, 심리학, 철학, 경영, 정치
Group 4 (과학): 화학, 생물, 물리, 컴퓨터, 환경, 보건
Group 5 (수학): 수학
Group 6 (예술): 미술, 연극, 음악, 댄스, 영화(예술 빼고 사회나 과학 추가 선택 가능)
Core: TOK (Theory of Knowledge, 지식론), EE (Extended Essay, 소논문), CAS (Creativity/Activity/Service, 창의체험활동)

  IB의 수많은 교과 중 국내 학생들이 선택할 만한 과목은 위와 같다. 우선 밑줄 친 굵은 글씨(역사, 화학, 생물, 수학, TOK, EE, CAS)가 먼저 IBO와 함께 한국어화를 결정한 과목들이다. 굵은 글씨 중 밑줄이 없는 물리, 지리, 경제는 학생수가 증가하면 순차적으로 한국어화될 과목들이다. 한국어화가 된다는 것은 수업설계 가이드, 평가지표 가이드 등 모든 교사용 안내 자료를 한글로 번역하고, 한국인 교사들로 연수강사를 양성하고, 한국인 교사 혹은 교수로 채점관을 양성하고, 한국어로 대입 시험을 치르고 채점하고 그 점수를 국내외 전세계 명문대에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엄정한 질관리를 하는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고등학교 과정인 IBDP 프로그램에는 6개의 그룹 내에서 과목을 선택할 수 있는 교과과목과 TOK, EE, CAS의 필수 핵심 과정이 있다. 필수 핵심 과정은 전공 영역과 무관하게 모두가 선택해야 하는 의무 필수 과목이다. 교과는 모두 6과목을 선택하는데, 각 그룹(모국어, 외국어, 인문사회, 과학, 수학, 예술)에서 한 과목씩 선택하는 것이다. IB의 모국어 그룹에는 수십 개의 모국언어 프로그램 및 대입 시험이 개발되어 있지만 국내 공교육 학생들은 모두 ‘한국문학’이나 ‘한국어와 한국문학’을 선택할 것이기 때문에 다른 언어는 고려하지 않았다. 외국어도 역시 영어를 선택할 것이기 때문에 다른 외국어는 고려하지 않았다. 영어가 모국어인 경우는 외국어를 중국어나 스페인어 등 다른 언어를 선택한다. 모국어와 외국어 과목는 모두 해당 언어로 수업하고 시험 보기 때문에 번역이 필요하지 않다. 

  6개의 그룹별 교과목을 선택할 때는 진학할 대학의 전공 성격을 고려하여 3과목을 고급수준(Higher Level), 3과목을 표준수준(Standard Level)으로 수강한다. 고급수준은 시수, 범위, 난이도에 있어 표준수준과 차이가 있다. DP 2년 동안 고급수준은 240시간, 표준수준은 150시간 수업을 해야 한다. 간혹 일부 의욕 넘치는 학생들은 6과목이 아닌 7과목을 선택하려 하거나 혹은 고급수준을 3과목이 아닌 4과목을 신청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전세계 명문대 입시에서 더 유리한 부분은 없다. 고급수준 3과목, 표준수준 3과목을 충실하게 제대로 이수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세계적 명문대 입시에서조차 과목 수가 아니라 학생 각자가 처한 환경에서 얼마나 도전적인 과목을 우수하게 이수했느냐가 더 관건이다. 도전적인 과목이라는 것은 교과 자체의 난이도라기보다 학생이 처한 상황과 지원하려는 전공 영역에 따라 다르다. 과목 선택 예시는 다음과 같다. IB는 문·이과를 구분하지 않지만 대학에서는 전공 영역에 따라 요구 및 권장하는 수강 과목이 다르니 아래 예시도 성향에 따른 유형으로 나눠 제시한다. 

  Ex 1. 이과 성향 학생 예시 1: HL(국어, 수학, 화학), SL(영어, 역사, 연극(영어로 시험))
  Ex 2. 이과 성향 학생 예시 2: HL(수학(영어로 시험), 화학, 생물), SL(국어, 영어, 역사)
  Ex 3. 문과 성향 학생 예시 1: HL(국어, 영어, 역사), SL(수학, 생물, 영화(영어로 시험))
  Ex 4. 혼합 성향 학생 예시 1: HL(국어, 영어, 수학), SL(역사, 화학, 컴퓨터과학(영어로 시험))
  Ex 5. 혼합 성향 학생 예시 2: HL(국어, 역사, 생물), SL(수학, 영어, 미술(영어로 시험))

다. 한국어 IB 디플로마의 질 관리 방안

  IBO에서는 한국어 IB가 영어 IB와 동일한 질적 수준을 갖추어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디플로마여야 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예컨대 한국어 IB에서 40점(45점 만점)을 받았다면 영어 IB에서의 40점과 동일하게 옥스퍼드대에서도, 하버드대에서도, 서울대에서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IB에서 제시한 균등한 질 관리 정책은 세 가지다.

  첫째 -  질 관리 정책은 앞 장에서 언급한 대로, 디플로마의 필수 요건인 6개의 선택 교과와 3개의 필수 교과인 9개 영역 중에서 2개의 선택 교과를 영어로 시험을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선택 교과는 국어, 영어, 수학, 개인과 사회, 과학, 예술의 6개 영역 중에서 한 과목씩 선택하게 되어 있는데, 어차피 영어는 영어로 시험을 치르니 영어 외 한 과목을 더 영어로 시험을 치러서 영어권 채점관들에게 평가받게 하자는 것이다. IBO에서는 어차피 외국어로서 영어(Group 2) 과목의 시험을 치르게 되면 기본적으로 장문의 에세이를 쓰고 말하는 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다른 한 과목을 영어로 시험 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했다.

일본도 영어와 연극 과목을 영어로 시험을 치르고 있는데, 연극 과목을 희곡이나 문학을 전공한 영어 교사가 가르치기 때문에 이 수업이 영어 수행 평가 같은 기능을 해서 궁극적으로 영어를 두 과목 듣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우리도 이렇게 한다면 IB에서 영어와 연극은 한국의 수능이나 내신 지필 고사와는 차원이 다른 창의적이며 융합적인 영어 교육을 구현할 것이다. 그리하여 한국어화된 IB 디플로마를 받는다 하더라도 기존의 우리 학생들보다 영어를 훨씬 유창하고 자유롭게 구사할 것이다.

  둘째 - 질 관리 정책은 우리 교사들 중에서 연수 강사와 채점관을 할 수 있는 정예 요원을 양성하는 것이다. IB 교원 연수는 MOC 체결 전까지 한국에서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 IB 한국어화가 되면 국내에서 IB 교원을 양성하고 운영하는 생태계를 구축해야 하므로 IB 교원 연수가 한국어로 가능해야 한다. IB 교육을 하려면 단순히 교수법뿐만 아니라 철학과 개념을 정확히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단순 통/번역만으로는 교육 철학이 제대로 전달될 수 없다. 따라서 IBO와 교육청들은 초기에 국내 교사들 중 교과별로 영어가 가능한 교원들을 차출하여 수개월에 걸쳐 집중 훈련해 정예 요원으로 양성하는 데 합의했다. 단계별로 여러 집중 연수에 투입되어 양성 과정을 이수해 연수 강사로서 전문성이 충분히 갖추어지면 이들이 한국어로 진행되는 국내 일반 교사들을 위한 연수에 투입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2019년 상반기부터 훈련에 들어갔고 2021년부터 한국어로 연수가 진행되고 있다. 

  IBO는 이들 중에서 채점관 후보도 선발하여 추가 훈련을 더 받게 한 뒤 자격이 되면 채점관으로 활동하도록 하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채점관은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교사들 뿐 아니라 사범대 교과교육 교수들도 참여할 수 있다. 초기에 정예 요원으로 양성된 교과별 교사들 및 교수들이 채점관 훈련을 성공적으로 이수하면 실제 영어권 대입 시험의 채점에 투입할 계획이다. 거기서 무사히 검증된 채점관들을 2023년 11월에 진행될 한국어판 대입 시험 채점에 투입하여 영어판 IB와 한국어판 IB의 채점을 균질하게 하겠다는 것이 IB의 방침이다. 그리하여 한국어화된 IB가 기존의 영어판 IB와 다른 버전이 아닌, 교육 내용도, 학생들의 실력도, 교사들의 채점도 질적으로 완전히 동일한 생태계를 구축하고자 한다. 

  한국어 IB를 공교육에 도입한다는 것은 단순히 교과서나 시험 문제를 번역하는 일을 뜻하지 않는다. 물론 초기에 대대적인 번역 작업은 이루어져야 한다. 번역 작업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교사용 안내서다. 교육과정, 교수법, 평가 기준, 대입 시험 가이드 등에 대한 번역이 1차적인 작업이 된다. 그러나 IB는 초·중·고 전체에 정해진 교과서가 없기 때문에 교과서 번역은 공식적으로 하지 않는다. 교과서 자유 발행제에 따라 참고서 격으로 나온 자료들을 개별적으로 번역할 수는 있을지라도 IBO와 계약에 의해 번역하는 작업에는 교과서 번역이 포함되지 않는다. 일본도 교과서 번역이 없었고 기존의 국정, 검인정 교과서를 그대로 사용했다. 각종 교과서들은 학습의 소재 또는 자료의 하나로 활용될 수 있다.

  IB의 한국어화는 이런 번역 작업은 물론이고, 한국인 교사가 한국어로 연수를 받아 한국어로 수업하고, 대입 시험과 내신 시험을 모두 한국어로 치르고 엄정하게 채점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시험 문제의 내용은 어느 언어로 이루어지든 동일하다. 답안 역시 어느 언어로 작성하든 동일한 수준으로 채점되어야 한다. IB의 한국어화는 영어판 IB와 동일한 수준의 한국어판 채점이 가능하도록 한국인 채점관을 양성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를 위해 한국에서 IB 공식 연수를 한국어로 진행하는 것도 포함한다.

  셋째 - 질 관리 정책은 IB 한국어화가 진행되는 동안의 질 관리 책임 주체가 IBO라는 것이다. 미국의 수능 시험이 한국에 도입되면서 왜곡되었듯이, IB도 한국에 도입되면서 갖가지 측면에서 왜곡되지 않겠냐는 우려가 간혹 제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수능의 경우는 미국식 수능의 시험 형태만 도입해서 시험 과목이나 문항 등을 모두 한국식으로 새로 개발했기 때문에 과목도, 형태도, 달라지게 되었던 것이다. IB의 경우는 형태만 도입해서 우리 식으로 새로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영어판으로 개발되어 있는 전체 시스템을 수년에 걸쳐 그대로 한국어화하여 국내 공교육에 기술 이전 및 생체 이식 하는 것이다. 즉 IB 학교 인증, IB 교원 양성, IB 연수 실시, IB 채점관 양성 및 관리, IB 시험문제 출제, IB 채점 기준 등 IB 체제의 모든 요소들에 대해 IBO가 질관리 주체이기 때문에 한국식으로 왜곡될 우려는 할 필요가 없다.

일각에서는 한국어판 IB는 아무래도 기존의 영어판 IB보다 퀄리티가 떨어지지 않을까 우려하기도 하는데, IBO에서는 이미 동일한 프로그램 전체를 영어, 불어, 스페인어로 각각 운영해 온 노하우가 50년 동안 축적되어 있고 최근에는 일부 과목들을 독일어, 일본어로 운영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한국어판 IB의 질관리에 대해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에 대해서는 IB의 Siva Kumari 총재와 Ashish Trivedi 아태본부장도 거듭 확인한 바 있다. 

  다만 모든 질 관리 주체가 IBO라면 우리 국가교육과정의 내용이나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경우도 있는데, 시험 문제를 살펴 보면 그러한 걱정이 기우(杞憂)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과학이나 수학 같은 과목은 어차피 서양에서 들어온 과목이기 때문에 지식 내용 자체는 큰 차이가 없다. 평가하는 항목이 단순 지식 숙지를 넘어서 스스로 해석하고 추론할 수 있는 사고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차이 뿐인데 이는 우리의 2015 교육과정에서 추구하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 이러한 수학/과학 과목보다 특히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기를 수 있는 가장 결정적인 과목은 국어와 역사인데, 국어는 전적으로 우리 문학/비문학 작품을 대상으로 하고 있고, 역사는 전세계에서 치르는 시험이라는 성격에 맞게 각 지역의 역사 속에서 역사적 사고력을 기를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 다만 각 역사 사건들에 대한 해석은 시대마다 지역마다 관점마다 다르기 때문에 특정 관점을 얼마나 잘 숙지했는지를 평가하지 않고 어떤 관점으로 해석하든 간에 그것을 얼마나 논리적으로 설득력 있게 기술했는지를 평가한다. 따라서 IB 역사 교육은 전세계 어느 나라든 그 나라의 지역별 역사에 충분히 충실하게 이루어질 수 있어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고취에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한국어화된 IB의 시범 도입은 시범학교 외의 교사와 학부모에게도 여러 파급 효과를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IB 시범학교에서 ‘한국어화된 IB’로 수업하기 시작하고 이를 위한 교원 연수가 한국어로 체계적으로 진행되면, IB 학교가 아닌 일반 학교 교사들도 새로운 종류의 평가, 수업, 교수법을 접할 연수 기회를 어느 정도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일반 학교 학생은 물론 학부모도 공립학교를 다니는 옆집 아이가, 자신의 자녀가 다니는 학원을 다니지 않고 자신의 자녀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숙제를 하고 다른 종류의 시험을 보는데도 국내 대학에 잘 입학하는 사례를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객관식 상대평가만이 가장 공정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선진화된 수능과 내신의 필요성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변화가 대한민국 교육의 패러다임을 혁신할 수 있는 씨앗이 될 것이다. 교육 패러다임 변화의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대한민국도 머지않은 시점에 우리 맥락에 맞게 우리 식으로 한국형 바칼로레아 체제를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게 될 것인데, 그때 IB 교육을 한국어화하여 생체 이식하는 동안 배운 여러 노하우와 전문성은 한국형 바칼로레아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매우 유용한 자산이 될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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