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16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고용노동부 직장갑질 신고 건수 1만7342건 달해
“X발 죽여버린다!” 등 입에 담지 못할 폭언 듣기도
직장 내 성희롱도 절반 가까이가 ‘상사’로부터
Z세대, 회사 회사 분위기로 직장 선택

[한국대학신문 이중삼 기자] #사장이 말끝마다 “X발 죽여 버린다”라고 욕을 하고 갑자기 다가와 손을 들고 때릴 것처럼 위협한다. “야, 너 이 바닥 좁은 거 알지? 내가 가만 둘 것 같아?”라고 협박한다. 스트레스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다가 용기를 내 노동청에 사장을 신고하면서 사장이 욕했던 녹음 내용과 카톡을 증거로 보냈다.

#상사가 저를 불러 다른 업무에 대해 물어봐서 확인하고 말씀드리겠다고 하면서 더 급한 업무를 마치고 하겠다고 말하자 상사가 책상을 잡더니 제 쪽으로 넘어뜨려 컴퓨터와 사무용품에 맞았다. 상사가 “야, X발 내가 너 없으면 일 못할 것 같아? 이 X발X아, 내가 너 눈치보며 일해야 하냐”고 소리쳤다.

#파견회사 소속으로 입사 후 회식 자리에서 인사부장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너무 수치스러워 대표에게 신고했다. 그러자 인사부장은 “짐 싸서 나가”라고 했고 파견회사로부터 해고를 당했다. 노동청에 직장 내 성희롱을 진정했고 경찰에 가해자를 강제추행으로 고소했다. 직장 내 성희롱은 인정됐지만 강제추행은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결정이 났다. 그러자 인사부장이 무고로 고소했고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다행히 법원에서 손해배상이 기각됐다.

직장갑질119에 제보된 직장 내 괴롭힘 사례 일부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7월이면 시행 3년이 다 되어 가지만 여전히 상사의 갑질과 괴롭힘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이 넘쳐난다. 작년 12월 직장갑질119가 공개한 ‘사례와 통계를 통해 본 갑질금지법 시행 2년 5개월’ 보고서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2년 5개월간 고용노동부에 접수된 직장 내 괴롭힘 신고는 1만7342건이었다. 유형별로 보면 폭언이 35.7%로 가장 많았고 인사조치(15.5%), 험담·따돌림(11.5%) 순이었다.

직장갑질로 신고했지만 개선 지도가 이뤄진 건은 10건 중 2건에 불과했다. 신고해도 가해자가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나가거나 피해자가 2차 피해를 입는 등 피해자를 보호해주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점이 있기 때문이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2019년 7월 16일부터 이 법이 개정되기 전인 작년 10월 13일까지 접수된 사건 1만2997건 가운데 개선 지도가 이뤄진 사건은 23.8%에 불과했다. 검찰에 송치된 사건은 겨우 1.2%였다. 반대로 사건이 취하되거나 기타로 분류된 건은 74.9%에 달했다. 직장갑질119는 “신고된 사건 10건 중 7건 이상이 단순 취하되거나 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 등으로 단순 행정종결처리되고 있다”며 “이는 5인 미만 사업장, 간접고용, 특수고용 등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많고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아도 고용노동부의 소극행정으로 제대로 처리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수치다”고 설명했다. 

직장갑질로 신고했지만 개선 지도가 이뤄진 건은 10건 중 2건에 불과했다.(직장갑질119 제공)
직장갑질로 신고했지만 개선 지도가 이뤄진 건은 10건 중 2건에 불과했다.(직장갑질119 제공)

■ 직장갑질 신고했지만…‘부메랑’처럼 돌아온 보복갑질 = 노동자들은 지는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 노동청에 신고를 하고 기나긴 재판 과정을 거치더라도 결국 직장 내 괴롭힘·성희롱을 인정받지 못한 사례도 많기 때문이다. 심지어 신고를 했다는 이유로 상사에게 찍혀 2차 가해에 계속 시달리다 결국 퇴사를 선택하는 이도 있었다.

직장갑질119가 작년부터 올해 3월까지 접수된 이메일 제보(신원 확인) 중 205건의 직장 내 성희롱 제보 메일을 분석한 결과 이를 신고한 피해자는 100명에 달했다. 하지만 이중 법적 의무사항(피해자 보호, 가해자 징계) 이행을 보장 받은 피해자는 10명뿐이었다. 신고를 이유로 보복갑질을 당하는 경우도 83명이나 됐다. 10명 중 8명꼴로 보복갑질을 당한 것이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A씨는 “회사 대표에게 직장 상사가 성희롱 발언을 많이해 고민이 많다고 털어놨다. 해결해준다고 했는데, 3일 뒤에 해당 상사에게 ‘너 맞을래?’라는 폭언을 들었다. 직원들 앞에서 책상을 내리치는 등 욕설을 동반한 폭력적인 행동도 일삼았다”고 털어놨다.

실제 지난달 28일 한국여성노동자회가 발표한 ‘2021 평등상담사례집’에 따르면 직장 내 성희롱을 당한 피해자 상당수가 성희롱 피해를 입고 2차 피해까지 시달리고 있었다. 피해자의 46.4%가 직장 내 성희롱을 거부했거나 신고한 후 불리한 처우를 경험했다. 한국여성노동자회는 “상당수의 피해자는 2차 피해에 처하며 2차 피해의 유형 또한 해고나 퇴사하게 만드는 분위기 조성 등으로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다”며 “2차 피해가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회사가 직장 내 성희롱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기 때문이다. 직장 내 성희롱을 해결하기 위해선 회사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조사를 하고 행위자를 징계하며 재발 방지 대책을 세워야 한다.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조치도 수반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실 남성보다 여성이 당하는 직장갑질은 상상을 초월한다. 한국여성노동자회에 따르면 작년 접수된 3388건의 여성상담 사례 가운데 작장 내 성희롱 상담이 차지하는 비율이 1003건(29.6%)에 달했다. 이는 2020년 대비 6.1% 오른 수치다. 특히 가해자 중 직장 상사가 49.8%에 달해 상사에 의한 성희롱 피해가 극심했다. 뒤이어 사장(16.7%), 동료(11.4%), 법인대표(7.7%)가 뒤를 이었다.

이처럼 직장에서 마주하는 불공정하고 부정한 사례들은 너무 흔한 일이 되버렸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B씨는 “직장 상사 중 성희롱이라는 용어를 모르는 것 같은 상사가 있다. 성희롱 발언을 하루에도 몇 번씩 일삼지만 그게 잘못된 건지 모른다”며 “웃긴 건 다른 상사에게 어려움을 토로했는데 바뀐 건 없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중소기업에 다니는 C씨는 “직장 선배에게 ‘한번 더 실수하면 죽여버린다고 했지?’라는 말을 들었다. 여자 후배였다면 이런 말도 하지 않았겠지만 남자 후배라고 안일하게 생각한 것 같다”며 “혹시 몰라서 녹취를 해 둔 상태다. 한 번 더 심한 말을 하면 노동청에 신고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직장 내 괴롭힘·성희롱을 해결하기 위해선 조직의 분위기와 소통방식 그리고 문화의 발본적인 쇄신이 필요해 보인다.

20대의 직장 내 성희롱 상담 비율이 다른 연령층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한국대학신문DB)
20대의 직장 내 성희롱 상담 비율이 다른 연령층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한국대학신문DB)

■ Z세대 직장 선택 기준…‘연봉’보다 ‘회사 분위기’ =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취지는 인간다운 환경에서 일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측면이 크다. 특히 Z세대는 직장 내 괴롭힘·성희롱에 민감하다. 한국여성노동자회에 따르면 20대의 직장 내 성희롱 상담 비율이 다른 연령층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20세~24세는 53.7%, 25~29세는 63.4%가 직장 내 성희롱 등 상담을 받았다. 한 Z세대 청년은 “회사 과장이 또라이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역겹다. 머리향이 좋다면서 머리카락을 만지려고 한 적도 있다. 미친X인 줄 알았다”며 “현재는 퇴사 후 이직할 곳을 찾고 있는데, 연봉보다 꼰대가 없는지, 회사 분위기가 좋은지를 더 확인하고 지원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최근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20대와 50대가 생각하는 직장 내 괴롭힘·성희롱 기준이 달랐다. 먼저 ‘회식 자리에서 분위기를 띄우려면 직원들이 장기자랑을 해야 한다’는 질문에 대해 20대는 갑질로 느낀 정도가 84.8점에 달했다. 반면 50대는 66.9점에 그쳤다. 이외에 ‘급한 일이 생기면 업무시간이 아니라도 일을 시킬 수 있다’의 경우 20대가 76.7점, 50대가 64점이었다. 이는 20대가 ‘괴롭힘’으로 느끼는 일도 50대는 ‘이 정도는 괜찮다’고 느꼈다는 의미다. 30대 직장인 D씨는 “업무를 하면서 상사에게 ‘라떼는 말이야’ 야근도 불사하고 일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며 “야근하라는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러면서 자기 딸은 공공기관 다닌다고 자랑하면서 정시퇴근해서 놀러다닌다고 말했다. 한 대 치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Z세대는 회사를 지원할 때도 이런 부분을 고려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갑질이 없는 직장 분위기가 좋은 곳을 선호했다. 최근 취업플랫폼 잡코리아가 Z세대 대학생·취준생 1923명에게 ‘취업할 기업에 대해 가장 궁금한 점’을 설문조사한 결과 2명 중 1명이 ‘조직 문화’가 궁금하다고 답했다. 복지 제도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잡코리아는 “Z세대는 취업할 기업을 선택할 때 연봉 수준보다 조직 문화나 복지 제도 등 근무 환경과 워라밸에 영향을 주는 요인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또한 직원 평균 퇴사율과 사무실 인테리어, 직원 근무 만족도와 같은 부분도 회사 선택 시 중요한 기준으로 나타났다”고 강조했다. 

이는 Z세대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들은 연봉보다 나에게 맞는 환경과 분위기가 잘 갖춰졌는지, 괜찮은 복지가 있는 기업인지 따진다. 또한 직장 내 괴롭힘을 가하는 상사가 있는지도 회사 선택 시 중요하게 본다. 잡코리아는 “요즘 사회초년생 사이에서는 원하는 직장을 찾을 때까지 퇴사를 불사하는 특징을 보인다. 어렵게 취업하고도 조직 문화나 연봉, 워라밸 등의 요인으로 회사를 떠나는 이들이 적지 않다”며 “취업을 준비할 때 더 많은 기업 정보를 취득해 사전에 이를 예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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