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단체·학부모 등 해당 정책 거센 비판…졸속 추진 논란에 대통령실까지 진화 나서
‘만 5세 입학’ 일파만파…시도교육감·학부모 간담회 개최 등 뒤늦게 공론화 나선 교육부
국책연구기관 전문가, “만 5세 입학은 유·초 연계 강조한 현 정부 국정과제와도 상충”
유아교육 학계·현장 “영유아 정서발달 무시, 유아교육과 초등교육은 완전히 달라”

[한국대학신문 이중삼 기자] 교육부가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6세에서 5세로 1년 앞당기는 학제 개편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데 대한 후폭풍이 거세다. 학계·시민단체·학부모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자 박순애 교육부 장관은 시간을 갖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자 대통령실도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다.

안상훈 대통령실 사회수석은 지난 2일 서울 용산 청사 브리핑룸에서 “(취학연령 하향을) 공식화한 것은 아니다”고 입장을 밝혔다. 안 수석은 “취학연령 하향조정 문제는 정책 방향성에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며 “아무리 좋은 개혁정책 내용이라도 국민의 뜻을 거스르고 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 안 수석의 이같은 발표는 사실상 교육부의 취학연령 하향 조정 방침에서 한발 물러선 것으로 보여진다.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정책은 지난달 29일 박순애 교육부 장관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한 사안이다. 초등학교 입학연령을 현행 만 6세에서 만 5세로 1년 앞당기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학계·시민단체·학부모들이 돌봄 공백 문제와 정서발달 문제 등을 앞세우며 반발해 정책 발표 초기부터 도마에 올랐다. 사회적 공론화를 거치지 않은 점도 반발을 키운 원인으로 지목된다.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자 박 장관은 시도교육감·학부모 간담회를 잇따라 열고 뒤늦게 공론화에 나섰다. 지난 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전국 시도교육감들과의 영상회의 모두발언에서 “교육과 돌봄을 통합하는 방식으로 아이들의 안전한 성장과 학부모 부담을 경감시키려는 목표였다”며 “이는 어디까지나 이런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이어 “우리 아이들이 조기에 양질의 교육을 받음으로써 모두가 같은 선상에서 출발할 수 있도록 국가가 책임지고 지원하기 위한 하나로 논의를 시작하기 위한 취지였다”며 “사회적 논의의 시작 단계였으며 앞으로 시·도 교육감들과 긴밀히 협의하고 지속적인 사회적 논의를 거쳐 추진 방향을 결정할 예정이다”고 발언했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도 같은 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유치원 학부모 간담회를 열고 해당 정책에 대한 목소리를 들었다. 간담회에 참석한 학부모들은 “만 5세에 초등학교 과정을 받기에는 발달상 어려움이 크다”며 “해당 연령 아이들을 가르치기에는 공교육과 돌봄 서비스의 질이 낮다”는 입장을 전했다. 장 차관은 “연말까지 의견 조사와 공론화 과정을 거쳐 내년 상반기까지는 결론이나 대안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이루겠다”고 밝혔다.

지난 5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주최로 박순애 교육부 장관 사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사진=전국교직원노동조합)
지난 5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주최로 박순애 교육부 장관 사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사진=전국교직원노동조합)

■ 뿔난 학계·시민단체, 정책 철회될 때까지 ‘투쟁’ =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정책이 대통령에게 보고된 후 이를 반대하는 정책 철회 촉구 기자회견이 사회 곳곳에서 열렸다. 지난 1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비롯해 30여 개 교원·학부모단체가 모인 ‘만 5세 초등취학 저지를 위한 범국민연대(이하 범국민연대)’는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과 집회를 열고 해당 정책 철회를 촉구했다. 이들은 이번 정책이 공론화가 없었다는 점을 크게 질타했다. 해당 문제는 영유아교육·보육계는 물론 초등교육계까지 큰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기 때문에 사전 논의가 충분히 이뤄졌어야 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정책이 철회될 때까지 총력을 기울여 투쟁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4일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는 범국민연대와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등 46명 의원들이 공동주최한 ‘윤석열 정부의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추진 철회를 위한 토론회’가 개최됐다. 강득구 의원은 “윤석열 정부의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추진에 대해서 즉각적인 철회를 촉구하고 전 국민을 패싱한 졸속행정으로 국민적 대혼란을 야기한 윤 정부의 책임 있는 사과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박창현 육아정책연구소 미래교육연구팀장은 “개인별 발달차가 큰 취학 전 영유아들에게 학령기로의 전이는 매우 큰 발달적 과업이라 천천히 초등학교로 이행시키는 것이 필요한데 만 5세 입학은 유·초 연계를 강조한 현 정부 국정과제와도 상충한다”고 지적했다. 

이튿날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주최로 박순애 장관 사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들은 “박 장관이 해당 정책을 포함한 교육부 업무계획을 대통령에게 보고한 이후 교육계는 물론 전국민적 반발 여론이 들끓고 있다”며 “누리과정에 따라 놀이 중심 교육을 받던 만 5세 유아에게 교과 중심의 초등교육과정을 가르치겠다는 비교육적 발상에 놀라움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덧붙여 “이 정책은 취업 시기를 1년 앞당기려는 경제적 목적만을 위해 유아의 발달 권리를 일방적으로 희생시키는 아동학대다”며 “교육도 없고 경제 논리만 남은 만 5세 초등취학 정책은 지금 당장 철회돼야 한다”고 첨언했다.

학계에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한국전문대학교유아교육과교수협의회(회장 손혜숙)는 지난 1일 ‘유아발달 특성 무시한 만 5세 초등취학 절대 반대! 철회하라!’라는 제하의 성명서를 내고 “만 5세의 발달 특성을 철저히 무시한 잘못된 정책이며, 아이들의 건강한 발달권리와 요구를 박탈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윤복희 한국영상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영유아에 있어 한 해는 굉장한 발달이 이뤄지는 시기다. 만 5세부터는 아이들이 친구들과의 관계도 깊어지고 의사소통 방법에 대해서도 배운다”며 “영유아교육은 놀이중심이다. 놀이를 통해 자기주도성은 물론 문제해결능력과 창의력까지 키워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윤 교수는 “이 중요한 시기에 교실에 앉아서 수동적으로 수업을 들어야 하는 것은 아이들 입장에서는 힘들 수밖에 없다”며 “학습에 대해서도 흥미를 잃게 된다. 놀이로 나와 의견이 다른 친구들을 이해하는 능력도 넓힐 수 있다. 사회적인 공론화 없이 이런 식으로 발표하는 건 광징히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첨언했다.

최현주 인천재능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취학 연령 하향 방침과 같은 설익은 정책에 대해 질타했다. 최 교수는 “누가 어떻게 왜 어떤 경로로 이런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를 냈는가에 대해 정말 궁금하다. 교육과정을 개편할 때도 몇 년 간 연구가 이뤄지고 사회적으로 공론화를 거쳐 완성되는 것이다”며 “이번 정책 발표는 엄청난 일이다. 사회적인 합의와 전문가 연구 등 없이 아무렇지 않게 공표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일례로 대체휴일을 지정할 때도 경제·상업적 등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해 지정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아이들이 1년 일찍 초등학교에 진학한다는 것은 인생이 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순서가 잘못됐다”며 “일례로 초등교사는 교육대학에서 초등교육을 배우고 교사가 된다. 만 5세들 가운데 한글을 모르는 아이들이 태반이다. 만 5세 입학을 시키고 싶으면 교육대학의 교육과정을 전면 바꿔야 한다. 유아교육과 초등교육은 완전히 다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1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비롯해 30여 개 교원·학부모단체가 모인 ‘만 5세 초등취학 저지를 위한 범국민연대’는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과 집회를 열고 해당 정책 철회를 촉구했다.(사진=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제공)
지난 1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비롯해 30여 개 교원·학부모단체가 모인 ‘만 5세 초등취학 저지를 위한 범국민연대’는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과 집회를 열고 해당 정책 철회를 촉구했다.(사진=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제공)

■ 학부모·유아교육과 재학생도 “1년 격차 어마어마…이해할 수 없는 정책”= 이번 정책 발표에 대해 학부모들의 반발 여론이 들끓는다. 경기도 김포에서 2세 영유아를 키우고 있는 이지영 씨는 “유아학습과 초등학습은 다르다. 연령에 맞는 학습이 중요하지, 아이들을 1년 빨리 노동인력으로 만드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만 5세 입학을 추진하겠다는 발상은 개인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세종시에서 5세 자녀를 키우고 있는 김모 씨는 사교육 문제가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를 표했다. “8세에 초등학교를 입학하기 전 6세~7세부터 사교육을 하는 학부모들이 상당수 있다”며 “1세가 더 낮춰지면 학부모들의 사교육 부담은 더 커질 것이다. 아이들은 1년 차이가 어마어마하다. 영유아교육과 초등교육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토로했다. 

4세 유아를 둔 또 다른 학부모도 “교육부 장관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만 5세는 엄연히 유치원에서 어린이집에서 신나게 놀아야 할 나이다”며 “국가가 아이들을 볼모로 삼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유아교육과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도 이번 정책 발표에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인천재능대 유아교육과에서 공부하고 있는 이재영(여·24) 학생은 “유아교육은 만 3세~만 5세까지 3년 동안 교육을 하는 것을 말한다. 연령별로 교육과정에 조금씩 차이가 있다”며 “초등교육과 유아교육은 큰 차이가 있다. 발달상태부터 정신·정서발달까지 천차만별이다. 특히 만 5세 아이들이 초등교육으로 넘어가면 초등교사들도 만 5세에 대한 인지도가 낮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병설유치원으로 실습을 간 적이 있다. 실제 만 3세~만 5세 연령별로 발달이 다르고 심지어 언제 출생했는지에 따라서도 차이가 났다”고 설명했다.

한국영상대 유아교육과에 재학 중인 이하니(여·31) 학생은 “정부가 학부모와 교사 아이들의 의견을 듣지 않고 터무니없는 정책을 냈다. 유치원 원장의 입장을 보면 일차적으로 원아 수가 급감하는 문제가 발생할 것 같다. 이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격이다”며 “아이들이 스스로 배울 수 있는 환경에서 주입식 교육으로 들어가면 아무리 교육이 진행된다고 해도 제대로 배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고 언급했다. 덧붙여 “아이들은 몇 개월, 한 달 차이에도 발달하는 속도나 정서 지능이 제각각이다”며 “초등교육으로 가면 낙오되는 아이들이 발생할 것이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새로운 지식도 습득하고 정서지능도 발달하는데 이를 고려하지 않는 정책은 아이들의 권리를 빼앗는 처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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