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입 20년’ 공학교육 인증제도, 좋은 취지에도 불구 한계도 뚜렷
일반대 이탈 가속화와 반대로 전문대 ETAC 도입 목소리 잇따라
전문가 “전문대 상황에 적합한 인증체계 유연화 노력 있다면 승산”

동양미래대학교에서 전문대학 혁신지원사업으로 추진한 동양 로봇 경진대회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계 없음. (사진=한국대학신문DB)
동양미래대학교에서 전문대학 혁신지원사업으로 추진한 동양 로봇 경진대회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계 없음. (사진=한국대학신문DB)

[한국대학신문 김의진 기자] 최근 몇 년 사이 국내 학령인구 급감으로 대입을 치르는 지원자 수보다 대학 모집정원이 더 많게 되면서, 대학들의 시름이 깊어지는 가운데 특히 공학계열 전문대가 더 큰 타격을 받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예년보다 낮아진 경쟁률에 대학을 쉽게 갈 수 있다는 수험생 심리와 수학·과학 등을 어려워하는 학생들이 공학계열 진학을 기피하는 경향이 뚜렷해진 탓이다.

이 같은 위기·불안 요소를 안고 있는 공학계열 전문대 사회에서 최근 돌파구로서 ‘공학기술교육인증(ETAC, Engineering Technology Accreditation Criteria)’을 다시금 주목하는 모양새다. 한때 전문대 공학교육의 새로운 시스템을 열어줄 것이라 기대를 받았지만, 학교 부담만 높이고 학생 실효성도 없다는 비판 속에 잊힌 공학기술교육인증제. 최근 인증제를 국내 상황에 맞게 개선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인증제가 이전 단점을 보완하고 전문대 공학계열 재도약의 발판이 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29일 교육계에 따르면 전국 공학계열 전문대 10개교가 ‘공학기술교육인증제’를 도입하기 위해 한국공학교육인증원과 인증기준 개발에 협력하기로 했다. 이는 최근 위기에 빠진 전문대 공학계열이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국제 기준에 맞춘 공학·기술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 침체된 학과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방침이다.

이번 공학기술교육인증제 도입은 대학 내에서 공학계열이 주축이 되는 전문대 10개교가 주도하고 있다. 서울 동양미래대를 비롯해 수도권 대림대·연성대·인하공전, 충청권 아주자동차대, 호남권 조선이공대, 영남권 경남정보대·동의과학대·영남이공대·울산과학대 등이다.

이들 대학 10개교는 ‘디지텍(DigiTact)고등직업교육협의회’를 구성, 지난달 11일 정기총회에서 이재용 영남이공대 총장을 회장으로 추대했다. 이재용 총장은 “입학자원 감소, 산업구조 급변에 따른 전문대 공학계열의 어려움을 ‘공학기술교육인증’ ‘대학 간 공유·협업’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조홍래 울산과학대 총장은 “공학계열 고등직업교육 선도 모델을 수립하고 뿌리산업 진흥에 필요한 종합적인 시책 마련, 우수 공학계열 인재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대적 요구가 맞물려 공학교육 인증제 도입을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국공학교육인증원은 지난 7월 공학계열 전문대 10개교가 모인 디지텍고등직업교육협의회와 전문대 공학기술교육 발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사진=한국대학신문DB)
한국공학교육인증원은 지난 7월 공학계열 전문대 10개교가 모인 디지텍고등직업교육협의회와 전문대 공학기술교육 발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사진=한국대학신문DB)

■ ‘도입 20년’ 공학교육인증제…좋은 취지 갖지만 한계도 명확 = ‘공학교육인증제’는 한국공학교육인증원(ABEEK)에서 요구하는 국제적 수준의 공학·기술 교육 기준을 도달했다고 인증하는 제도다. 공학교육인증(EAC)와 컴퓨터·정보(공)학교육인증(CAC), 공학기술교육인증(ETAC) 등 3가지로 나뉜다. 주로 EAC와 CAC는 일반대가, ETAC는 전문대가 중심이 돼 도입되고 있다.

공학교육인증제는 공학계열 졸업생들이 실제 산업현장에서도 실무에 효과적으로 투입될 수 있도록 도입됐다. 인증을 도입한 학과에서 기준에 도달한 전공 과정을 이수한 졸업 학생이라면 국제적·전문적 수준의 공학 현장 실무 능력을 갖췄다는 점을 보증한다.

하지만 이 같은 공학교육인증의 좋은 취지와는 반대로 현장에선 볼멘 목소리가 나온다. 공학교육인증이 학교에는 부담만 가중시킬 뿐, 학생에게는 실효성이 그리 많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서울 소재 대학의 토목공학과에 재학 중인 학생 A씨는 “먼저 취업한 선배들의 말을 들어보면 취업할 때 얻는 혜택이 전혀 없다”며 “커리큘럼도 학교 마음대로 정하는데 이게 나중에 회사에서 유용하게 쓰일지 전혀 믿음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 이 같은 이유 때문에 최근 상당수 대학들이 공학교육 인증제도 이탈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대와 연세대를 비롯해 국립대인 금오공대에서도 인증제 탈퇴를 선언한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 관계자는 “현행 공학교육인증은 4차 산업혁명 등 시대에 걸맞은 커리큘럼으로 변화하기에 너무 경직된, 유연성이 떨어지는 한계가 명확하다”며 “애초에 미국 제도를 국내 상황에 맞게 개선해 들여왔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점이 문제의 근본 원인이라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다른 대학 관계자도 “현 인증 체계는 근본적인 관점에서 손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계에 따르면 일반대가 중심인 EAC를 신규 도입하는 대학은 감소세다. 지난 2018년 공학교육인증제를 신규 도입한 대학 수는 6개교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듬해인 2019년과 2020년에도 각각 5개교씩 신규 도입에 그쳤고, 지난해에는 2개교에 불과했다. 지난 2001년 제도가 도입된 이후 신규 도입 대학이 가장 많았던 2008년(29개교)과 비교하면 10년 새 신규 도입 대학 수가 반의 반 토막이 난 셈이다.

공학계열 전문대가 중심인 ETAC의 사정도 비슷하다. ETAC의 첫 도입이 시작된 지난 2010년 신규 대학 수는 11개교였지만, 이듬해인 2011년 4개교로 급감했고 2018년 1개교 신규 도입 이후로는 아예 자취를 감춘 상태다.

수도권 전문대 관계자는 “공학기술교육인증에서 요구하는 전공과목 강화, 수학·과학·컴퓨터(MSC) 중요성 강조 등 국제 인증기준이 국내 전문대로선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며 “국가직무능력표준(NCS)과 중복되는 문제에서도 운영에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인하공업전문대학 전경 (사진=한국대학신문DB)
인하공업전문대학 전경 (사진=한국대학신문DB)

■ ‘입시한파’ 공학계 전문대 “시스템 유연하게 바꾸면 명약(名藥) 될 수도” = 공학교육인증은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국내 환경에 맞지 않아 한계가 명확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 같은 이유가 계속된다면 현재의 일반대 EAC 탈퇴 움직임, 그동안의 전문대 ETAC 부진은 계속될 것이라는 목소리도 여전히 나온다.

하지만 최근 공학계열 전문대가 중심이 돼 다시금 ETAC 카드를 꺼내게 된 것은 국내 입시 환경에 비춰 다소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학령인구 감소 여파로 전문대가 신입생 충원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과거에 명성을 날렸던 공학계열 학과가 갈수록 인기를 잃어가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부산지역 한 전문대 관계자는 “과거엔 성적 상위권 학생이 인서울·수도권 진학, 중상위권은 지방대, 하위권이 전문대에 원서를 냈다”며 “학령인구가 줄면서 하위권도 일반대에 입학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 때문에 취업에 유리한 학과가 아니라면 전문대 진학을 선택하지 않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전지역 고등학교 교사는 “전문대에서 취업이 잘 되는 ‘전화기(전기·화학·기계)’ 관련 학과는 여전히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편”이라면서도 “‘전화기’를 제외한 공학계열의 경우 수학·과학 등 이과 공부를 어렵게 느끼는 학생들이 ‘전문대까지 가서 어려운 공부를 해야 하나’라는 생각 때문에 진학하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공학계열 전문대는 이에 ETAC 도입을 통해 국제적 기준을 만족하는 교육을 대외적으로 인정받고, 국내 기업체가 채용 시 이를 우대하는 등 취업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이를 위해 그간 ETAC 부진 요인으로 지목돼 왔던 한계·문제점을 개선해야 하는 것은 풀어야 할 숙제다.

송태한 대덕대 교수는 “대학에서 부담스러워 했던 인증기준과 평가 방식을 국내 상황에 적합하게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전문대 교육현장 의견을 인증에 반영하고, ETAC 인증 분야 인력 양성을 지원하는 국고 사업 마련 등도 절실히 요구된다”고 조언했다.

한국공학교육인증원 관계자는 “우수 공학계열 전문대가 더욱 유능한 공학·기술 전문직업인력을 양성할 수 있도록 인증체계를 개선할 계획”이라며 “공학계열 전문대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ETAC 개선, 교육프로그램 인증기준 개발, 전문인력 양성 사업 추진 등에 대학들과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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