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에선 대학의 사회적 책임 강조, 자율성 강화 속 지역균형 발전 강력 추진
대학을 지역사회 혁신 허브로…일자리 창출, 지역 재투자 이끄는 선순환 체계 확립돼야
기업가형 대학, ESG 선도대학 실현 등 시대적 요청…‘미래 핵심 인재’ 양성에 앞장
[한국대학신문 김준환 기자] 포스트코로나, 4차 산업혁명이라는 대전환기를 맞아 불확실성이 일상화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야할지, 어디로 나가야 할지 오리무중이다. 지난해를 돌이켜보면 방향을 못찾아 빙빙 돌기도 했고, 출구를 찾은 것 같다가도 그 길은 막혀 있었다. 이런 국면에서 한국 대학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1년후, 5년후 더 나아가 10년후 한국 대학의 생존 좌표는 어디에 찍혀 있을까.
지난해 5월 출항한 윤석열호(號)는 대내외 불확실성이 높은 거센 파도를 헤치면서 나아가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작은 정부’와 ‘시장 자율’을 핵심 정책 기조로 표방한다. 대학 정책도 ‘탈(脫)규제’라는 정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문제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는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점이다. 시시각각 급변하는 세상에서 가만히 있으면 도태된다. 정확한 좌표 설정은 어렵더라도 대학사회의 시선은 지속가능 성장과 우수인재 양성 그리고 미래사회 선도에 향해 있어야 한다.
본지는 탈규제 시대에 그동안 대학을 옭맨 규제들이 무엇이었고, 어떤 규제들이 완화되고 있는지 짚었다. 아울러 대학 교육의 사회적 가치와 역할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도 따져봤다.
■ 윤석열 정부 각 부처마다 ‘탈규제’ 본격화 = 윤석열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각 정부 부처가 탈(脫)규제에 나설 것을 강력히 주문했다. 교육·환경·노동 등 각 분야에서 발전을 저해하는 ‘모래주머니’를 없애 경제·산업 분야에서 활로를 모색하겠다는 구상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15일 제1차 국정과제 점검회의를 주재하면서 대학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고등교육은 국가 경쟁력의 발원이자 요체”라며 “다양한 국정과제 추진을 위해서는 고등교육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또 윤 대통령은 “지역균형발전의 핵심은 교육”이라고 언급하면서 지방대에 대한 권한을 지방정부에 이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특히 윤석열 정부에서는 교육부가 대학의 자율성 강화를 통해 국가 경쟁력의 기반이 될 인재를 양성하고, 대학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해 자율화의 기반을 마련할 것임을 시사했다.
고등교육기관을 총괄하는 주무부처 교육부장관인 이주호 사회부총리도 대학 규제 완화에 나설 것임을 분명히 했다. 지난달 29일 열린 출입기자단 오찬간담회에서도 이 부총리는 윤석열 정부 임기 내 규제 혁신을 끝내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 부총리는 “대학과 관련된 국이 있으면 규제가 생긴다. 대학규제혁신국을 일몰조직으로 생각하고 있다. 대학규제혁신국이 담당하는 업무를 모두 완성해 일몰하는 것까지 윤석열 정부 임기 내에 하겠다”며 “‘대학규제혁신국’이 일몰이 되려면 고등교육법, 사립학교법이 전면 개정되어서 교육부 규제가 필요 없을 정도로 되어야 규제혁신이 완성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 대학 규제 완화 시작됐지만…등록금 인상 실현 여부 ‘초미의 관심사’ = 그동안 대학을 옭아맸던 각종 규제는 시대·환경 변화에 맞지 않는 사례가 부지기수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대학을 옭아맨 규제들이 하나둘씩 풀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부가 대학 운영 시 4대 요건, 통폐합 기준, 소유 원칙 등을 완화하는 내용이 담긴 「대학설립·운영규정」 전부개정령안을 지난해 12월 30일부터 오는 2월 13일까지 40여 일간 입법 예고했다.
하지만 대학 규제 완화의 핵심 사안 중 하나인 대학 등록금 인상 문제는 ‘진퇴양난’에 빠져든 모양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초기에는 대학 등록금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 지난 2009년 처음 대학 등록금을 동결한 이후 14년간 대학 등록금 동결 기조가 이어지고 있어 사립대의 재정 상황은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한계에 봉착했다. 특히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는 상당수 지방대학들은 ‘줄도산’을 우려하는 수준에 다달았다. 정부도 재정위기를 맞은 대학 현실을 알고 있어 대학 등록금 인상 규제 완화를 시사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예상치 못했던 변수로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와 높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기조 속에 가계부담이 커지자 대학 등록금 인상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발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있다. 부산 지역의 동아대는 전국 대학 가운데 처음으로 등록금 인상 검토에 나섰다. 재정적 어려움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한 탓이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지난달 2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등록금 규제 문제를 심도 있게 검토하거나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뤄지진 않고 있다”며 “지금의 경제 상황이나 학부모, 학생 부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지금은 적절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적절한 여건이 마련되면 논의를 재개할 여지는 남겼다. 장 차관은 “정부 내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있어야 한다”며 “전반적인 경제 상황, 정부 내의 공감대, 국회와의 의견 수렴, 대학생과 학부모의 여론도 큰 변수”라고 설명했다.
고사 위기에 내몰린 대학 입장에서 고무적인 상황은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법(이하 고특회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게 됐다는 점이다. 재정난을 호소하던 대학들은 “그나마 숨통을 트게 됐다”며 반가움을 표했다. 고등·평생교육지원 특별회계 신설을 위한 법률 제·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내년부터 특별회계를 신설하고 고등·평생교육 관련 사업 예산을 편성·운용할 수 있게 됐다. 유초중등 교육에 투입될 예정이던 국세분 교육세 1조5000억 원은 고등·평생 교육에 투입된다. 이번 교육재정 개편안으로 학령인구 급감과 14년째 이어지는 등록금 동결로 대학들이 경영 위기를 극복하고 고등교육 경쟁력 제고에도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대학, 혁신의 주체로 거듭나야…“자율성 강화에는 사회적 책임 뒤따라” = 지난 정부와 달리 윤석열 정부가 교육 정책 기조를 자율적인 탈규제 방향으로, 중앙정부에서 지방정부로 정책 기조를 선회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다만 아직까지 현장의 괴리감은 여전하다. 규제 완화에 따른 문제들도 존재한다. 빠른 시대 변화에 맞춰 대학사회에 기대하는 바도 크다.
우선 학문적 성취보다 실용적 잣대에 대학의 역할을 더 강조할 경우 대학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가령 반도체 등 첨단학과 개설 및 증원하는 움직임은 같은 대학 내에서도 학과 간 격차를 심화시킬 수 있다. 인기학과와 비인기학과가 뚜렷해지면 학생들의 인기학과 쏠림 현상은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대학교육의 무게 중심이 학생 선호도와 취업률에 치중될 경우 기초학문은 고사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탈규제가 본격화되면 지방대학 소멸 문제가 더욱 심각하게 대두될 수도 있다. 수도권 대학이 첨단학과 증원, 계약학과 개설 등 정원을 늘리면 수도권과 비수도권 대학 간 격차가 오히려 더 커질 수 있는 게 국내 대학의 현주소다.
대학의 책임과 역할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주문도 있다. 마침 교육부도 대학이 지역의 혁신 허브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즉, 대학이 혁신의 주체가 되는 구조로 바뀌어야 하는 얘기다. 실제로 해외의 선진 대학의 경우 지역사회의 허브 역할을 하는 곳이 많다. ‘지역사회 발전-지역사회 회생-신산업 육성’은 대학이 혁신 허브로서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나가는 주체가 될 수 있다. 윤석열 정부는 인수위 당시 지자체에 행정 재정 권한을 위임하고, 지산학이 참여하는 ‘지역고등교육위원회’ 설치를 제시한 바 있다. 지자체 산업체 대학 및 교수사회와 시민사회가 힘을 한 데 모아 우수 인력과 혁신역량을 산출하고 지역에 투여함으로써 지역 혁신의 주체로서 역할을 기대해서다.
‘기업가형 대학’으로 대학의 체질 개선을 꾀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것도 대학의 중요한 역할로 부각된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는 대학이 보유한 기술이전 창업을 통해 수익을 내고 일자리 창출 등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기업가형 대학 생태계 구축이 보편화돼 있다.
지속가능성한 성장이 중요한 시대에 대학들도 ESG 경영 실천에 적극 나서는 기업의 움직임에 주목해야 한다. 대학 입장에서는 ESG 실현을 위한 교육과 연구 생태계 조성에도 앞장설 필요가 있다. 실제로 ESG 경영을 도입하는 대학이 여럿 있다. 가장 앞서나간다는 평가를 받는 고려대는 정진택 총장 취임 이후 ‘SDGs(지속가능발전)’ 대학경영 원리를 강조하면서 대학 최초로 ESG위원회를 설립했다. 어도선 고려대 사회공헌원장은 “SDGs(지속가능발전)와 ESG가 우리 사회의 거대 흐름으로 정착되면서 대학도 이러한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다”며 “대학도 이러한 사회적 가치 창출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신뢰받는 대학으로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2023년은 대학 정책의 지형도가 급변하는 해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자율적 혁신의 책임과 성과를 위한 공이 속속 대학으로 넘어올 것이기 때문이다. 한 교육계 원로는 “대학 스스로가 관료화돼 있는 것은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 자기 고유의 전공에 갇히지 않고 새로운 학문 분야를 개척할 수 있는 시도를 해봐야 한다”며 “대학과 대학 교수들이 혁신하지 않으면 근본적인 변화가 어렵다”고 진단했다. 대학의 규제 완화와 자율성 강화 뒤에는 반드시 강력한 사회적 책임이 뒤따른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